을의 입장
그날은 아침에 일어났는데 이유 없이 기분이 안 좋았다. 전날 일로 약간에 마찰이 생겨서 화가 난 상태로 잠이 들었고, 자고 나면 풀릴 줄 알았지만 그렇게 풀어질 기분이 아니었나 보다. 또한 그날은 일주일 전부터 K 씨와 약속을 잡아놓고 만나기로 했었던 날이었다.
아침에 일이다. 미국에서 친구가 왔는데 나와 함께 가고 싶은 축제에 티켓을 미리 끊어왔다. 나는 친구에게 화를 냈다. 내게 티켓값을 요구한 것도 아니고, 단지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은 마음에서 준비한 선물이었는데 왜 내게 말을 하지 않고 마음대로 티켓을 끊은 거냐고 버럭 화를 냈다. 가끔은 하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하게 되는 일이 있다. 또 하고 나서 다시 한번 그러지 말았어야 했어 라고 후회하는 일도 있다. 그중 대표적인 게 기분이 태도가 되는 일인 것 같다. 그렇게 집을 나왔다. 생각해 보니 뭘 해도 안됬던 날이 그 날이었기도 하다.
바로 일을 하러 가야 했다. 나한테 돈을 주는 사람한테는 내 기분 내키는 대로 행동할 수 없으니 걸으면서 생각하기로 했다. 아이러니한 게 나한테 뭔가 보상을 해주지는 않아도 그 자체로 내 편인 사람 속은 불편하게 긁어놓고 나오면서 '일은 이렇게 하면 안 돼' 하고 상한 마음을 다듬게 된다.
편하지 않은 상태지만 최대한 드러내지 않고 미팅을 시작한다. 상대측에게 지금 내 위치는 일개의 프리랜서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내가 움직이지 않으면 일을 얻을 수 없고, 권력이 분명하게 존재하는 회사를 상대하려면 필요한에서 자존심도 내려놓고 아쉬운 소리도 해야 한다. 내 실력을 보여줄 수 있는 기회를 잡기 전까지는 상대를 '갑'이상으로 대우해줘야 하는 그런 위치에 있다.
한국 사회층은 잘 살면 인성 같은 거 없고, 한국에서 더 돈 많이 벌고 사는 잘난 한국 사람들은 이기적이다. 잘난 사람들은 또 그 사람들보다 잘난 사람들의 권력의 힘으로 살살 긴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 인성은 '을' 한테 필요한 매너다. 하지만 이건 선택이다. 그래서 잘 나가는데 인성이 좋으면 존경받지만, 인성이 좋지 않아도 잘나서 어쩔 수 없는 게 된다. 대체할 수 없으니까 아쉬운 사람이 기는 거다.
일이 정말 하기 힘들면 자르는 게 맞지만, 해볼 만하면 그게 싫어도 대접해 주는 척이라도 잘해야 한다. 그러면 나한테도 무례하게 굴지 않는다. 또한 나의 근거 있는 자신감이 한국에서는 거만함으로 보이는 경우가 대다수라 잘해도 그러지 않은 척을 해야 한다. 그래서 동아시아 문화권은 존버 장인정신이 존경받지만 동시에 be modest, humble 해야 하는 게 지향해야 하는 가치라고 배우나 보다. 사회가 그러니까 어쩔 수 없이 배우게 된다. 어쨌든 그날도 난 그런 척을 하면서 살아남았다.
기분이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다. 늘 일을 마치고 나오면서 '이렇게 까지 해야 하나' 하고 바닥을 수도 없이 치는 과 동시에 덤덤한 척 겉에 포장을 한다. 지금은 내 나름대로 완성된 합리화로 포장을 너무 두껍게 해 놨더니 안을 제대로 들여다보기 힘들다.
갑의 입장
지난번에 엄마가 어린이 뮤지컬에 당첨되어 구경을 갔어요. '무지개 물고기'라는 이름인데 무지개 물고기가 예쁜 비늘을 가지고 있어서 엄청 자랑했더니 친구들이 달라고 해요. 그래서 싫다고 했더니 친구들이 그때부터 왕따를 시켜요. 나중에는 자기가 가진 걸 나누어 주고 나서야 친구가 되죠. 전 좀 경악한 게요. 무지개 물고기가 예쁜 건 노력일 수고 있고 타고날 수도 있는데 그 사람이 가진걸 모두 빼앗고서 똑같아 지니까 친구가 되는 것처럼 보여서 경악했어요. 무지개 물고기가 예쁘지만 다른 물고기한테도 너는 너대로 예쁘다고 하는 게 아니라 능력이 있으니까 그 존경받는 게 당연하고 나눠 갖는 거야 노블레스 오블리주지만 똑같아질 필요 있나 싶더라고요.
뭔가 이중 모순이지 않아요?
- 잘난 사람을 질투하고 가진 걸 요구해도 된다. 응하지 않으면 왕따 시킨다.
- 잘난 사람은 잘났다고 자랑해도 된다. 그렇지만 자랑한 만큼 나눠줘야 한다.
저는 이 뮤지컬이 전하는 암묵적인 메시지를 이해할 수 없었어요. 이 사회는 타고난 천재 또는 능력자가 있으면 내버려 두지 않아요. 사회에 희생을 강요하고 끊임없이 심판대에 올리죠.
- 나의 한국 친구 S으로부터
한국은 sensitive 한 사람이 살기에 힘든 곳이다. 내가 반응하는 게 예민한 게 아니라 상대방이랑 interactive 하게 의사소통을 하는 사람이 한국에서 살기 힘든 것 같다. 나는 all ears 하고 있는데 남은 그냥 해보는 말 던지는 말 짜증 푸는 말 하고 싶은 말들을 한다. 상대방에게 어떻게 들릴지는 상관하지 않는다.
이동하는 시간이 길어서 점심도 건너뛰고 다음 미팅으로 왔다. 그 사이 K 씨에게서 문자 한 통이 도착했다. 사실 어젯밤에 일정 문제로 약속을 취소할 목적으로 전화를 했는데 받지 않아서 그대로 잠이 들었다. 늦게 까지 일을 하고 있어서 받지 못했다는 답장에 미팅에 들어간다는 짧은 문자를 남겼다. 속도 좋지 않고 두통이 좀 있다. 하지만 나를 돌볼 여유 같은 건 없다.
지금 내 위치는 면접관이다. 전 미팅에서는 '을'의 입장이었다면 현재는 '갑'의 입장에 놓여있다. 새 프로젝트에 합류하게 될 번역팀의 일원을 뽑는 자리에 와 있다. 나이는 서른여섯 5년 이상의 경력자인 남자 한분이 내 앞에 앉아 있다. 근데 이 남자 면접 보러 온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태도가 불량하다. 내 데이터에 따르면 이 사람은 면접을 보러 왔지만 겉모습으로 보이는 내 모습에서 굳이 긴장감을 조성할 필요 없다고 느낀 것으로 파악된다.
이미 우위에 있다. 보이는 불량한 태도를 넘어설만한 능력이 있을까 싶어서 몇 차례에 걸쳐 질문을 했다. 보아하니 상대에 대한 존중도 없고 인성 부분을 커버 칠만한 그만한 실력도 없어 보였지만, 자존심상 경력과 나이가 있으니 대우는 받아야겠고, 본인이 생각하는 알량한 권력 앞에 살살 기면서 나와 일을 하긴 싫은 것이다.
이것도 아이러니하다. 내가 겪어본 국내 대 다수의 기업은 상면 하복의 군대 문화가 이어지고 있었고, 권위에 복종하는 것을 당연시 여긴다, 잘못된 권위의식인 줄 알면서도 강요하는 문화가 한국 내 조직 사회 아닌가, 설사 본인보다 나이가 어리고, 여자여도 알량한 권력이라도 쥐고 있는 건 내 쪽인데 권위가 가지고 있는 영향력을 필요할 때만 보려고 하니 아무래도 군대를 다녀오지 않았나 보다 라고 생각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일을 하다 보니 K 씨랑 만나기로 한 약속 시간이 다 되어간다. 아직 일을 다 마치지 못했는데, 내가 있는 곳에서 만나기로 한 약속 장소인 '용산역'까지 이동하는 시간을 계산해보면 적어도 1시간은 여유를 두고 움직여야 한다. 현실적으로 두 마리에 토끼를 다 잡을 수는 없으니 일단은 하던 일을 뒤로하고 지하철을 타러 나왔다.
나의입장
퇴근시간이라 그런지 지하철 안은 사람들로 가득하다. 평소엔 아무 생각 없는데 간혹 한 번씩 출근길과 퇴근길에 지하철을 타면 눈으로 수십 명의 사람과 동시에 대화를 하는 듯하다.
용산역에 다 닿을 때쯤 우리가 만나기로 한 약속 시간은 6시 30분인데 30분을 남겨두고 늦을 것 같다며 K 씨에게서 문자 한 통이 왔다. 가끔은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느낌이란 게 존재하는데 보통은 좋지 않은 예감이 들 때다. 미국에서는 speaker-oriented라고 말하는 사람이 중심이 되는 문화가 있다. 말하는 사람이 충분히 설명해 줄 의무가 있다고 보는데 반대로 한국에 서는 'listener-oriented' 듣는 사람 중심 문화다.
말하는 사람이 충분한 설명과 상황에 설득을 하지 않아도 눈치껏 알아 들어야 한다. 설사 못 알아 들어도 크게 동요하지 않고 넘어간다. 넓게 봤을 땐 아시아 특유의 집단 문화인 개인으로 생각하기보다는,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집단이 다 비슷하게 행동하고 말해야 한다는 일종의 암묵적인 행위가 서로에게 통한다. 나는 이게 개인으로 봤을 땐 크게 문제가 된다고 생각 히지만, 집단 문화에 익숙해져 있는 K 씨 에게는 그다지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아 보였다.
사람은 누구나 각자의 우선순위가 있다고 생각한다. 일이라는 건 언제든 불시에 급한일이 생길 수 있고, 그러다 보면 의도한 것과는 다르게 상황이 흘러갈 때가 있다. 상대방과 내 생활 방식에 차이는 존중해줘야 한다 라는 걸 의식하면 어느 정도는 이해해 줘야 한다고 생각해서 우선은 괜찮다고 알겠다고 답장을 했다. 하지만 기다리게 하는 자체가 상대가 나를 그만큼만 생각하고 있다는 증거가 되니까 기분은 좋지 않았다.
그건 그거고 일단은 알겠다고 했는데 30분을 일찍 도착하는 바람에 중간에 시간이 붕 떠버려서 뭘 할까 생각하다 서점에 들어갔다. 책을 고르고 자리에 앉아 기다리면서도 마음은 어딘가 불편하다. 7시가 다 되어서 K 씨에게 다시 문자 한 통이 왔다. 오기 전에 부탁한 서류가 하나 있었는데 그것만 전해주고 다시 들어가 봐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황당했다. 아무리 일 때문이 라지만 짧은 문자 한 통으로는 설득이 되지 않았다. 화가 났다. 안 되겠다 싶어서 됐으니 오던 길 돌아가시면 될 것 같다고 답을 쓰고 있는 도중에 K 씨가 전화를 걸어왔다. 대뜸 전화해서 하는 말이 가관이다. 왜 화를 내고 그러냐고 웃으면서 묻는다.
마치 화를 내지 않아도 될 상황에 화를 내는 내가 overly sensitive 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이 상황에 화 안 낼 사람 있나요? 하고 따졌지만, 화가 난다고 감정적으로 굴기엔 상대방에 상황도 들어봐야 하니까 일단은 만나서 얘기하자고 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사이 시간은 7시 30분이 넘어가고 있었고, 기존에 약속하고 만나자 했던 시간에서 1시간이 지난 후에야 K 씨를 만날 수 있었다.
여전히 상황에 따른 설명은 없고 그에 따른 사과도 없고 서로 기분 나쁜걸 다 알고 있는 찝찝한 상태에서 여차 저차 하다 저녁까지 먹게 되었는데, 주문을 하고 음식이 나온 지 몇 분도 안되어서 가봐야겠다고 한다. 내 그릇은 아직 반절도 못 비웠는데 얼마나 일이 급하면 저럴 까 하다가도, 또 다른 한편으로는 나는 이래도 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구나 가 느껴져서 들고 있던 숟가락을 놓고 식당을 나왔다.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 줄 안다. 관계에서도 갑과 을은 존재한다. K 씨는 미안한 기색 하나 없이 '프리랜서라서 좋겠다'라는 말을 흘리고 회사로 돌아갔다. 나는 프리랜서란 개인적으로는 1인 기업이라고 생각하지만, 보통 사람들의 인식으로 봤을 때 아직까진 자기 시간을 마음대로 쓸 수 있는 직업 이라고만 생각하는 것 같다. 틀린 말은 아니다. 단편적으로는 회사 시스템에 맞춰 루틴이 정해져 있는 회사원과 비교했을 때 프리랜서는 자율적으로 시간을 쓸 수 있는 장점이 있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 시간의 활용은 내가 쓰는 것이고, 어디에 쓰고 말지는 내가 정한다. 그 말이 상대가 마음대로 쓸 수 있다는 권한을 주진 않는다.
K 씨 에게 아침부터 기분이 좋지 않았다고 했었는데 '그럼 이건 내 잘못이 아니네'라는 말이 머릿속을 스친다. K 씨는 이 무례한 상황을 단순하게 내 기분이 좋지 않아서 그렇게 받아들이는 거라고 말하고 있었다. 왜 본인이 한 잘못된 행동에 대한 책임 전가를 내게 하는 걸까. 기본적인 배려도 예의도 없는 경솔한 행동을 보고 느낀 내 감정이 예민하다고 치부해 버리는 걸까.
내 인생에 3분의 2를 해외에서 보냈던 경험과 현재 생활이 더해져 내가 자라온 배경에는 여러 문화가 뒤 섞여 있다. 보통 생활하는 데는 큰 어려움이 없지만 아무래도 일을 하는 환경이 전반적인 사회적 분위기가 한쪽으로 크게 기울져 있고 그로 인해 곤란한 상황을 겪기도 한다.
크게 보아 문화의 차이라고 넘길 수 있지만 문화적인 측면과 내 개인적인 성향을 보태어 보면, 모든 면에서 받아들이기 힘든 부분도 있고 이해조차 어려운 부분도 사실 존재한다. 하나의 상황을 두고 여러 방향으로 사고하는 게 무의식 적으로 습관화가 되어있는데, 이 문제는 애당초부터 그럴 만한 사고를 필요로 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