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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개의 인간 Aug 14. 2019

한국말은 한국사람만 하고 영어는 외국인만 하나요

사람들은 내가 영어로 어렵게 말하면, 못 알아 들어도 내가 영어를 잘한다고 한다. 반대로 쉬운 단어와 문장을 써서 말하면 사람들은 너무 쉽게 들리는 영어가 어이없다는 듯이 '영어로 말하는 거 별거 아니네' 하고 태도가 바뀐다. 하지만 알아듣고도 말을 못 하면, 사람들은 좌괴감을 느낀다. 또한 가끔은 한국어를 구사하는 것보다 영어로 구사하는 게 더 편해 보이는 나를 보면서 '부럽다', '나도 외국에서 자라면 너처럼 할 수 있었을 텐데'라고 질투 섞인 동경을 한다.


한국 사람들의 행복이란 비교와 경쟁에서 나온다.


사람들은 영어 하는 게 별거 아니네라고 무시하면서 자기를 높이려고 한다. 내가 알아듣게 말해주면 자기 스스로가 나쁘지 않다고 자만한다.


내가 한국에서 한국말을 못 하는 건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사람들은 나를 볼 때 한국인이 영어를 잘하는 게 멋있어 보이지만, 100% 한국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내가 영어를 잘하든 못하든 이중잣대를 들이댄다.


얼마 전 미국에서 오랜 유학생활을 접고, 한국으로 오신 현직 영어 선생님 한 분을 만났다. 그녀는 내가 한국어를 할 줄 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말을 할 때 한국어 30% 영어 70%를 섞어 말했다. 그녀가 하는 말은 한국어, 영어 모두 듣기에 불편한 언어였다.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들이 많았고, 나와 대화를 하자는 건지 그녀의 영어실력을 자랑하고 싶어 하는 건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심지어 그녀는 내 영어 발음을 지적하기도 했다. 그녀는 내게 '어디 출신이세요?'라고 물었다. 경상도 사람이 서울말 쓰는 사람한테 발음을 고쳐주는 것처럼, 미국에서는 나 같이 발음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고 비아냥 거렸다.


그녀가 생각하는 미국인의 영어 발음은 무엇일까, 내가 백인이 아니라서 비꼬는 건가, 발음과 억양 하나만으로 나를 판단하는 건가, 내가 어디 출신이라고 하면 그녀는 나를 받아 드릴까 궁금했다.   


내게는 다양한 국적의 친구들이 있다. 프랑스, 영국, 캐나다, 미국을 비롯해 중국, 베트남, 필리핀, 태국, 인도, 콜롬비아, 남 아프리카, 멕시코, 아르헨티나 등 이 들 중에는 이민 2세대 인 한국계 미국인도 있고, 중국계 캐나다 인도 있고, 프랑스계 미국인, 베트남계 영국인도 있다.


우리가 대화할 때 언어는 각자의 모국어와 영어를 섞어 쓴다. 다양한 국적만큼 이나 발음 또한 특색 있다. 같은 단어를 두고 말해도 전혀 생각지도 못한 발음이 나올 때가 있고, 내가 알고 있지만 억양 차이로 인해 발음이 다르게 들리는 경우도 있다. 특히 베트남, 태국, 인도 친구들 같은 경우에는 모국어에 억양 자체가 강해서 영어에도 강한 억양이 있다. 대화를 하면서 못 알아듣는 경우가 태반이지만, 발음을 지적하거나 출신을 들먹거리지 않는다.  


가끔 내 SNS의 친구들과 찍은 사진이 올라오면 사람들은 말한다. 영어를 잘하니까 외국인 친구들도 많이 사귀고 좋겠다고 부럽다고 한다. 하지만 내 친구들이 한국말을 할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한다.


내가 만났던 한국 사람들 중엔, 내가 자라온 배경을 보고 나서 대뜸 '영어 해봐'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고양이한테 야옹_해봐 하는 거랑 다를 게 없어 보였다. 내가 그 자리에서 영어를 하지 않으면 '영어 못하는 거 아니야?'라고 하거나, 말을 뭉그려서 하면 '발음이 왜 그래?'라고 묻는다. 강아지한테 멍멍_해봐 했는데 강아지가 멍멍_이 아닌 망, 몽, 뭉 하면 그럼 그건 그들에겐 강아지가 아닌 건가, 한국 사람한테는 '한국어 해봐'라고 하지 않으면서 왜 내게는 저런 질문을 당연하게 하는 걸까.   


그런 사람들의 머릿속에는 미국은 백인만 가득한 것 같다. 초등학교 영어 교과서에 동양인 이름은 철수와 미나만 있고, 샐리가 없듯이 거기에 영어 하는 애들은 다 백인으로 묘사하듯이 한국말은 한국 사람만 하고, 영어는 외국인만 한다는 전제가 잡혀있다.


다양한 나라에 문화가 섞여있는 난 그게 좋고 싫고를 떠나서 한국인인 나 가 될 수도 있고, 미국인인 나 가 될 수도 있다.


한국 사람들은 이런 나를 도마 위에 올려놓고 자기와 다른 점을 비교하며, 왜 다른지에 대한 뚜렷한 이유를 찾으려 한다.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고 연대하지 않고 끊임없이 판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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