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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개의 인간 Aug 16. 2019

왜 영어로 말하니 잘하지도 못하면서

평가하는 한국문화


누군가를 가르치는 일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

제대로 가르치고 싶다는 열정 하나로 이 세계에 뛰어들었을 땐 이 일이 이렇게 고단한 직업인지 몰랐다.


열정 하나만 가지고 매일 같이 버라이어티 하게 벌어지는 일들을 해결하기엔 심히 역부족이었다.   




그동안 나 홀로 영어 수업을 진행하며 많은 프로젝트를 기획했다. 그중 기대가 제일 컸던 토론 수업은 여러 번의 시도와 설득에도 불구하고, 멤버를 구성하는 일부터 쉽지 않았다.


이 수업은 학생들의 스피킹 실력 향상에 의의를 두고, 한 달에 한번 현재 수업하고 있는 학생들을 한데 모아 토론하는 방식이었다. 일종의 '그룹 프리토킹'을 계획했지만, 이 일이 이렇게 안 풀릴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일단 열어 두기만 하면 너도 나도 하겠다며 신청이 빗발칠 줄 알았다.


하지만 현실은 기대와 많이 달랐다. 어쩌다 한번 운이 좋아 멤버가 구성이 된다 해도, 1시간 동안 수업을 이끌고 가기엔 그들의 태도는 너무나 방어적이었으며 , 어쩌면 나의 부족한 지도 실력 탓인지 기대만큼의 성과도 만족감도 느낄 수 없었다.


한국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한 초등학교에서 영어 수업을 했을 당시에 일이다.


점심시간에 여러 명의 선생님들과 모여 밥을 먹는데, 그중 한 명의 선생님이 내게 영어로 질문을 했다. 그때는 지금 보다 한국어가 많이 서툰 상태였고, 어눌한 발음과 단어 하나, 문장 하나를 입으로 꺼내는 것도 쩔쩔매서, 영어로 질문해 준 선생님에게 큰 고마움을 느낄 때였다.


나는 선생님의 개인적인 질의응답을 마치고도 좀 더 많은 얘기를 나누고 싶었지만, 나와 선생님 주위로 서로 눈치 보느라 바쁜 다른 선생님들의 경계하는 듯한 태세에 기가 눌려 대화를 멈춰야만 했다.


수업이 끝난 후, 선생님이 다시 나를 찾아왔다. 선생님은 주위를 살핀 후에 아까 다 끝내지 못한 질문들을 하나씩 꺼내어 물어봤다.


그때는 미처 알지 못했다. 단지 쑥스러움을 잘 타는 선생님의 성향이라고 만 생각할 뿐, 사회적인 분위기도 가미되었을 것 이라고는 깨닫지 못했다.  

  



한국 사회에서 남에게 못하는 모습을 보여준다는 것은
나의 약점을 남에게 보이는 것과 같다.


한국사회는 남의 약점을 무기 삼아 놀리거나 업신여기거나 계급화한다.


마치 동물들이 자기가 다친 걸 야생에서는 밖으로 내보이지 않는 것처럼, 사람을 등급으로 매기는 사회에서 내 등급이 떨어지는 걸 신뢰하지 않는 타인에게 노출하고 싶지 않아 한다.


물론 모두가 다 그런 건 아니다. 무언가를 잘 못한다거나, 다르게 한다거나, 완벽하지 않다거나, 그러한 사실들이 상대방에게 알려졌을 때, 한국사회에서는 그걸 꼬투리 삼아 상대방을 업신여기는 사람들이 많다.


예를 들어 실험을 할 때 마우스가 미로에서 오른쪽으로 돌 때마다 전기충격을 당한다. 그걸 지속적으로 반복하고 나면, 그 뒤에 전기를 흐르게 하지 않아도 오른쪽으로는 절대 움직이지 않는다.


이처럼 어릴 때부터 그런 상황들에게 지속적으로 노출되면 내가 못한다라는 것에 당당해지기가 쉽지 않은 현실이다. 


못하는 것에 대해서 업신여김을 받는 것은 이미 초, 중, 고등학교 시절에서부터 엄청나게 겪었기 때문에, 그걸 아무렇지 않다고 여기는 사람이 진짜 드문 현실이다.


못하는 것은 잘못이 아니다. 하지만 학교에서 가르치는 선생님부터 핀잔을 주고, 실질적으로 그걸로 차별을 당하는데 어느 누가 '나 잘 못해요'를 시전 할까 싶다.


그룹 프리토킹을 할 때도, 선생님 앞에서 못하는 것은 어차피 그 사람은 날 가르쳐야 하는 사람이고, 내가 못해서 수업을 듣는 거라 그래도 최소한으로 그 앞에서는 어째 어째 말하겠지만, 그 외의 타인한테 굳이 내가 못하는 것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은 없는 것이다.


무시할까 봐 혹은 판단할까 봐 걱정하는 건 인간의 본성이다. 누군가가 그런 걸로 무시하면 그 사람이 배움의 질이 낮은 사람이다라는 걸 머리로는 알고, 또한 상대방의 판단 따위 나에겐 무의미하다는 것도 알고 있다. 하지만 그걸 머리로 아는 거랑은 별개로 결국 현실의 순간에선 어쨌거나 보이기 싫은 것이다.


적어도 한국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무의식 중에 어릴 적 뭘 못했을 때, 남들이 비웃었던 경험들을 여러 번 체화해서, 선뜻 그게 잘 안 되는 사람들이 많을 거라고 생각한다.


나도 내가 중고등학교 때 학교나 동네에서 주위를 둘러싼 많은 사람들이 비웃었던 경험들이 결코 유쾌하진 않았고, 썩 떠올리고 싶은 경험은 아니다. 근데 그런 경험이 엄청 흔했고 여러 번 겪어도 겪을 때마다 기분은 좋지 않은 게 사실이다.


한국 에선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 남 앞에서 뭘 보여준다는 건 평가당하는 도마 위에 놓여있다는 것이다.


같은 한국사람들 앞에서 영어로 말을 못 하면, 순수하게 '너는 영어를 못하는구나'라고 평가하는 게 아니라, '영어 수준이 저 정도밖에 안되는데 왜 남 앞에서 잘난 체하는 건가', '왜 영어로 말하니 잘하지도 못하면서'라고 즉각적으로 타인을 평가한다.


예를 들어 네티즌들이 연예인 보고 연기력 운운할 때, 그들은 천재적인 연기력이 있어서 그러는 게 아닌 것처럼, 물론 연예인은 그걸 업으로 하는 사람이니 지적질할 수 있는 거다 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한국은 사실 업이라서 더 지적을 잘하고, 그게 아니어도 사소한 일에도 이래라저래라 훈수 두는 일을 잘한다.


너무 흔하게 일어나는 일이라서, 타인이 저렇게 평가하지 않는다라는 게 오히려 드문 케이스다.


한국사회에서는 남을 평가하는 수준이 외모 지적 수준이 제일 흔하지만, 그만큼 다른 능력들에 대해서도 사람들은 평가를 한다.


그런 사회에서 웬만한 강심장이나 자신감을 갖지 않는 이상 선뜻 남 앞에서 그런 걸 드러내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지만 언젠가는 한국사회도 전기충격이 흐르지 않는 순간이 오길 기대해본다.






※ 영어 수업 문의 

- E-mail: hbm1843@gmail.com 

- 카카오톡: hbm1843


다른 언어를 배우는 것은 끈기와 노력을 동반한 지속성을 유지해야 원하는 목표점에 닿는 것이 가능해집니다. 급박한 마음으로 이 점을 간과하시기 쉽지만 사실상 언어란 폐활량이나 복근과 같습니다. 급하게 2-3주 동안 하루에 몇 시간 운동했다고 복근이 생긴다거나 10km를 뛰어도 문제없는 폐활량은 생기지 않습니다. 적확한 트레이닝을 통해 꾸준히 반복적으로 훈련하면서 본인의 역량에 따라 강도를 높여가며 하다 보면 장기간에 걸쳐 형성되는 것이며, 이러한 과정에서 퍼스널 트레이너가 개인의 특성에 맞추어 코치해주면 그 정확도와 성장 속도가 빠르게 올라가게 되는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의 영어 근육을 정확하고 빠르게 키워나가기 위한 퍼스널 트레이너로써 최선을 다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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