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시아 신드롬

나는 엄마처럼 살고 싶지 않았다.

by 일개의 인간

지금껏 내가 만난 모든 남자들에게서 아빠의 모습을 보았다. 그들을 보면 아빠가 떠올랐고 그들에 특정한 행동이 그 시절에 나를 떠올리게 했다. 내가 선택했던 남자들에게서 끔찍하게 싫어하는 아빠의 모습이 비칠 때마다 내 속에 웅크리고 있던 두려움이 몰려왔다. 난 그대로 눈을 질끈 감고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난 잘못하지 않았다. 옳은 선택을 했다." 어느 날 K에게 물었다. "내가 아빠 같은 남자를 만날 확률이 얼마나 될까?". K가 말했다. "누구든 상대를 선택할 땐 부모에게서 보고 자란 어린 시절에 영향이 크게 작용이 되니까 아마도 높은 확률일 가능성이 크지 않을까."


아빠는 알코올 중독자였다. 내가 어린 시절 술은 우리 가족의 많은 부분을 망쳐 놓았다. 엄마와 나는 지금도 술이라면 진절머리가 난다. 엄마는 내게 술을 먹는 남자는 피하라고 입이 닳도록 말했다. 나 또한 상대를 고를 때 술을 아예 마시지 못하거나, 술을 먹어도 절제할 줄 아는 사람이 기준이 되곤 했지만 내 기준에 딱 맞는 상대를 만나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나의 기준과는 다르게 내가 고른 상대는 술을 좋아하거나 좋아하는 걸 넘어서 절제하지 못할 정도로 술을 마셔대는 남자들이었다. 술을 잘 마시지 않는다던 남자들도 시간이 지나면 술을 먹는 날들이 잦아졌다.


5년이란 긴 시간 동안 P와 정상적이지 않은 관계를 유지해 오면서 나는 그동안 발견하지 못했던 나의 모습을 보게 됐다. 내가 P를 대하는 모습은 바로 아빠를 대하는 엄마의 모습이었다. 엄마는 알코올 중독이었던 아빠의 잘못된 행동으로 많은 상처를 입었다. 지금은 아빠가 건강이 악화되어 예전보다 술이 많이 줄었지만 여전히 술을 먹는 모습을 보면 가슴이 쿵쾅 거려서 불안에 손과 발이 저릴 정도라고 했다. 엄마는 그런 아빠에게 시달리면서 더 이상은 못살겠다고 하면서도 놓지 못했다.


앞서 말했듯이 나는 이미 P와의 관계가 시작될 때부터 잘못되었다는 것을 분명하게 알고 있었다. 정리할 수 있는 시간과 충분한 이유가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이를 모른 척했다. 사실 P에게 희망을 걸었던 부분은 엄마처럼 되지 않고 싶었던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나는 내 잠재된 무의식 중에 엄마는 아빠를 바꾸지 못했고 그래서 결혼에 실패한 것이라는 생각을 했었다는 것도 그제야 알게 됐다. 나의 사랑으로 P가 달라질 거라고 믿었던 것도 나는 엄마처럼은 되고 싶지 않아서였다.


나는 자라면서 어린 시절 내가 보고 자란 부모의 모습 중 싫어하는 부분을 닮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P를 대하는 나의 모습에서 엄마의 모습이 비칠 때 나 자신 스스로가 가엾고 불쌍했던 이유도 그러지 않으려고 애를 썼지만 피하지 못했던 그 사실을 인정하지 못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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