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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기언 Aug 25. 2022

인스타그램에 빠져버린 인생 #1

신도시 사는 80년대생 아줌마

인스타그램에 빠져버린 인생

"너 인스타 해?"



인스타가 뭔지 그때는 잘 몰랐다.

아니, 관심조차 주지 않고 계정 없이 사는 게 오히려 쿨해 보였기에 계정을 만들어 볼 생각도 하지 않았다.

카카오스토리와 블로그만으로도 사실 벅찼고 버려진 싸이월드는 이미 아이디와 비밀번호까지 까먹고 있었다.


"아니, 안 해. 너 해?"


엄마 친구 딸이자 나와 동갑내기인 영미는 운전대에 한 손을 걸치고 한 손으로 아이폰 버튼을 누르더니 보라색과 핑크색 그리고 오렌지색이 세련되게 그라데이션 되어 있는 둥근 모서리 정사각형 어플을 눌렀다.

그러자 온통 커피잔에 손끝이 걸쳐져 있거나 목 윗부분은 잘려 있으나 목 아랫부분은 호감 가는 패션감각과 호리호리한 몸매의 여자 사진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왔다.


"이런 게 인스타 갬성사진이라는 거야. 요새 카스 누가 하냐? 블로그도 말 많아서 다들 요기로 옮겨 오잖아"


영미는 한 손으론 차선을 비껴나가지 않게 운전을 하면서 오른손으론 거치대에 올려져 있는 폰 화면을 스르륵스르륵 내려 보이더니 왼쪽 상단에 있는 작고 둥그런 단추만 한 사진을 눌렀다.


"이 언니가 아까 그 언니야. 사진 디게 잘 찍지? 이 언니는 일단 이쪽으론 감각이 타고났어"


당최 얼굴 하나 없이 가녀린 팔뚝 위에 까르띠에 팔찌가 눈에 띄는 손이 아이로 추정되는 손을 잡고 있거나, 크레마가 풍부하게 올라와 있는 커피잔이 화면의 반을 차지하는데 그것마저도 온전한 잔이 아니라 화면 끝에서 잘려진 것 같은, 그러나 오묘하게 세련됨을 과시하는 듯한 사진들이 9 분할되어 화면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이 사람이 누군데? 아까 전시장에서 본 그 언니?"




더위가 절정에 다다르던 8월 중순이었다.

창문을 열어두면 오래된 고목나무에서 온몸을 떨며 천둥 같은 울음을 만들어내는 매미소리만 들어도 더위가 가중되는 듯한 오후에 5살 아들은 땡볕에 개미 한 마리도 안 보이는 단지 내 놀이터에 가자며 자꾸 베란다로 나가 누가 있나 없나 난간 사이로 내려다본다.


"아무도 없지? 너무 더우니까 형아들도 누나들도 아무도 안 나오는 거야. 시환이도 집에서 엄마랑 놀자"

"싫어! 나 혼자 그네 타면 되잖아. 나가자 엄마 응?"


더 말대꾸를 했다가는 내 안의 분노조절 버튼이 오작동을 해 그만 아이에게 버럭 소리를 지를 것만 같아 두 눈을 질끈 감아본다.

회전하는 선풍기의 눅눅한 더운 바람으로 겨우 더위를 이겨내고 있는 내가 할 수 있는 건 소파에 누워 카카오스토리를 돌아다니거나 블로그 공구 템을 구경다니다 댓글로 가격이 얼마인지 비밀로 물어보는 것이었다.

아이는 내게 다가와 끈적거리는 손으로 팔을 잡아당기며 나가자고 떼를 썼고 나는 애써 그것을 외면하며 자는 척을 했다.


"엄마 너무해! 함미야한테 다 이를 거야!"


"우리 끝말잇기 할까?"


끝말잇기는 누워서 입만 써서 하는 지상에서 할 수 있는 가장 쉬운 육아템이다.

엄마는 아이의 연령대에 맞춰 단어를 말하는데 뇌를 거치지 않아도 되는 쉬운 단어를 쓰면 되기에 그저 입만 움직이면 되는 세상 쉬운 놀잇감인 것이다.

아이의 동의도 없이 일방적인 게임을 시작한다.


"사과"


갑자기 놀이판이 깔린 상황에 잠시 당황한 듯한 아이는 자연스레 '과'로 시작하는 단어들을 골똘히 생각한다.

떼를 쓰던 쪼꼬마한 입이 닭똥집처럼 더 작게 오므려지고 솜털이 빈틈없이 난 오동통한 볼이 더 빵빵하게 부풀어 오른다. 갓 딴 복숭아 같은 두 볼 사이로 매끈하고도 제법 높은 코가 우뚝 솟아있다.


태어나기 전부터 초음파 사진에 잡힌 아이의 얼굴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오똑한 콧날이었다.

사실 나는 20대 초반에 코에 보형물을 끼워 넣어 미간부터 코 끝까지 1미리 정도 높이를 높인 인공적인 코라서 아이의 코가 나를 닮았다고 주장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아이의 높은 코는 아무래도 아빠를 닮은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이 아이가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아빠 증명사진처럼 생겼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더랬다.


태어나자마자 아이를 본 남편은 신생아의 경외로움보다는 생각보다 못생기고 사람처럼 생기지 않은 아이를 보고 홀린 듯이 중얼거렸다.


"오빠, 우리 땡이 이쁘지? 어때?"

"응...어....새....새처럼 생겼어 아이가"


초음파 사진의 통통한 얼굴은 양수에 불어서 그나마 귀여워 보인 것이었다.

막상 세상 밖으로 끄집어내 보니 3.14킬로에 50센티의 신생아라는 존재는 '내 새끼'라는 프리미엄을 갖다 붙여봐도 아주 귀엽거나 사랑스러워 보이는 모습은 아니었다.

특히 유난히 코가 높은 데다 얼굴에는 살이 없어서 높고 뾰족한 코가 새부리처럼 보이기도 했다.

드라마에서 막 출생한 아이를 보여줬을 때 그 모습이 설마 태어난 지 한 달도 더 지난 모습이라는 건 아이가 태어나서 한 달이 지나고 알았다.

얼마 안 되는 모유와 조리원에서 먹이는 분유의 영양가를 온몸으로 흡수한 아이는 매일매일 살이 올라 상상 속의 신생아 모습을 갖추게 되었고 점점 아빠 판박이라는 소리를 듣게 되었다.




아이가 '과자'라고 대답했다.

나의 입은 뇌회로 따윈 필요 없이 '자동차'를 뱉었고 아이는 또 골똘히 생각에 잠긴 순간 카톡 알람음이 울렸다.


- 뭐해?

- 전시회 티켓 있는데 나올래?

- 근데 좀 멀어

- 예술의 전당이야



여의도 한복판에 금빛 자태를 뽐내며 서있는 주상복합에 사는 영미에게 예술의 전당은 그저 차 타고 언제나 갈 수 있는 놀이공간에 불과했다.

그러나 부천 사는 나는 지하철을 타고 한 시간을 쉼 없이 가서 서초역에서 마을버스를 타고나서야 닿을 수 있는 머나먼 강남땅이었다.

그래도 아이를 데리고 가끔씩 전시회도 보고 여름에는 분수쇼를 구경시켜주러 다니는 부지런을 떨었기에 그 정도 거리는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영미가 먼저 '멀다'라고 한 표현에 알 수 없는 오기가 살짝 고개를 들었다.

나는 무슨 전시회 인지도 물어보지도 않고 연달아 보낸 4개의 카톡 문자에 답을 하기 위해 폰을 열었다.


- 지금 가면 돼?


어디가 됐든 아이를 데리고 시원한 곳으로 나다니고 싶은 충동적인 마음과 그곳이 서울이라는 공간적 어감이 주는 설레임에 후딱 소파에서 용수철처럼 튕겨 일어났다.


"엄마, 차갑다는?"


의외로 차로 시작하는 단어가 많지 않다.

차로와 도로의 개념이 하나 있지만 아이가 알 만한 단어도 아니다.

무념무상으로는 차차차라는 단어가 스치지만 그건 반칙이다.

그래서 나는 늘 '차'로 끝나는 단어를 뱉음으로써 내가 쉴 수 있는 시간을 번다.


"안돼. 단어를 말해야지. 차갑다는 단어가 아니야."

"생각이 안 나. 자동문으로 바꿔줘"


'자동문'은 남편이 가르쳐준 게임을 깨뜨리는 마법 같은 단어다.

문으로 끝나는 단어로 '문틈'을 말해버리면 3초 안에 대답할 수 있는 뇌를 아직 장착하지 못했으므로.

물론 '틈바구니'가 있지만 아이도 나도 그것의 정확한 실체나 뜻을 알지 못하므로 틈바구니가 뭐냐는 질문으로 이어질 게 뻔한 모험은 하지 않기로 한다.


"시환아, 우리 이제 그만 씻고 나갈 준비 하자. 시환이 친구 만나기로 했어"

"친구? 누구?"

"저번에 할머니 친구랑 같이 온 여자 친구 기억나지? 그 친구랑 그 친구 언니랑 다 같이 그림 보기로 했어"


영미에게는 세 살 터울 자매가 있다.

큰애를 서울의 사립학교로 보내기 위해 지금의 여의도로 주소지를 먼저 옮기고 입학이 확정되자마자 바로 이사 들어갔다.

둘째는 시환이와 동갑인데 여자아이 치고는 말이 조금 느린 편이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말을 잘하는 시환이를 두고 친정엄마는 '요놈 요놈 나중에 뭐가 될라고 이렇게 야무지고 똑똑하니. 이 함미야가 우리 시환이 장가갈 때까지 보고 죽어야지'하며 물고 빨고 만나는 사람마다 사진을 보여주면서 자랑을 하느라 바빴다.


아이보리색 반바지에 민소매 나시티를 입었다.

아이도 나와 비슷한 계열의 뉴트럴한 베이지색 구름빵 모양의 바지에 헐렁하지만 자연스러운 멋을 낸 화이트 티셔츠를 입히고 트레이드 마크 mlb야구모자를 씌웠다.

그리고 남편과 오사카 여행 갔을 때 들른 백화점에서 산 미키하우스 로고가 선명한 파란색 배낭을 메어줬다.

가방 안엔 아이가 마실 물통과 에어컨 빵빵한 전시장에서 혹시라도 춥다고 할까봐 챙겨 넣은 거즈면으로 된 카디건을 둘둘 말아 넣었다.

다부진 체격의 아이가 메고 다니기에 적당한 크기, 적당한 무게의 짐이었다.


그렇게 우리 모자는 지하철을 타고 환승을 하고 버스를 갈아타는 동안 잡은 손을 놓지 않고 서울로의 여행길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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