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도시 사는 80년대생 아줌마
"여기여기! 시환맘!"
예술의 전당 한가람 전시장에서는 전부터 가고팠던 작가의 전시를 알리는 플래카드가 뜨거운 바람에 높다란 건물 벽에서 가끔씩 나부끼고 있었다.
앤서니 브라운의 첫 내한으로 마케팅 효과를 톡톡히 본 탓인지 평일 대낮인데도 예술의 전당으로 퍼 나르는 녹색 마을버스에서 내린 사람들로 복작거렸다.
1층 로비에 들어서자 영미가 낯선 여자들 무리에서 나를 발견하고는 손을 흔들며 외쳤다.
'뭐지? 갑자기 왠 시환맘?'
어릴 때부터 친구였던 우리는 아이로 엮어진 맘들 중 하나가 아니기에 서로의 이름을 불렀다.
그런데 낯선 여자들 사이의 영미는 나를 그렇게 낯선 호칭으로 그들에게 존재를 알렸다.
나도 한 손을 높이 들어 흔들고는 잰걸음으로 무리를 향해 가기 시작했다.
걸어가며 주위를 둘러보니 여기저기 아이들과 엄마들이 한 무더기로 이루어진 채 엄마들은 엄마들끼리의 수다를 떨면서도 자꾸 무리에서 이탈하는 아이들을 불러대느라 정신이 없었다.
"일찍 왔네? 우리도 이제 방금 왔어. 시환이 왔어? 아이고~ 그새 컸네"
"응. 연락받고 바로 왔어. 사람 되게 많네"
인사를 하면서도 영미 주변의 엄마들이 내게로 향하는 시선을 의식하며 '어서 인사를 시켜라 이것아' 하는 눈빛으로 영미에게 눈치를 줬다.
"아. 여기는 우리 큰애 학교 엄마들. 그리고 얘는 울 엄마 친구 딸이자 내 친구"
영미는 두 여자와 나 사이에 서서 나에게 먼저 그들을 소개한 다음 내 어깨를 살짝 잡고선 나를 친구라고 소개했다.
20여 년 전, 우리가 고등학생일 때 잠시 부천 고모네 놀러 왔다가 근처 빌라에 사는 영미와 연락이 닿아 영미네 근처 분식집에서 본 적이 있다.
그때도 문을 열고 들어간 식당 안에는 영미와 영미 친구들 서넛이 일제히 나를 쳐다보며 이리로 오라는 눈짓을 했다.
남학생이 낀 자리에 쭈뼛거리며 다가간 나는 영미 옆에 앉아 말없이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했었다.
"누구야? 이쁘게 생겼다"
한 여자애가 꼬불거리는 오뎅을 간장에 찍으며 영미에게 물었다.
"어, 얘는 내 시골친구"
안 그래도 어색하고 불편한 자리에서 나는 졸지에 부뚜막에 불 지피고 소여물을 주며 집안일을 돕는 시골소녀가 된 채 섬처럼 그들 무리에 앉아 있다가 일이 있다고 거짓말을 치고는 분식집을 나와 버렸다.
아이의 손을 잡은 채 5도도 안되게 고개를 까딱거리는 형식적인 인사를 하며 3초 동안 서로의 행색을 스캔 완료했다.
나와 키를 비롯한 모든 체형이 비슷했던 영미는 몇 달 만에 살을 쏙 뺀 건지 후덕했던 어깨짝이 갸늘갸늘 직각어깨가 되어 하늘거리는 새틴 소재의 하늘색 민소매 원피스에 핏플립을 신고 왔다.
마치 예술의 전당 바로 앞 단지에서 로비층 테라로사에 커피나 한 잔 가볍게 마시러 온 강남 사모님처럼.
뒤에 서있는 엄마들 중 한 명은 청바지에 흰 셔츠를 입고 배낭을 메고 있는 매우 캐주얼한 차림의 아줌마였다.
알고 보니 공중파 방송국 부장님이라는데 전혀 매칭이 안 되는 카리스마 옅은 옆집 언니 같은 말투와 행동에 한 층 편안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반면 검정색 새틴 미니 드레스를 입고 긴 머리를 어깻죽지까지 늘어뜨린 마른 체형의 여자는 왠지 신경질적인 인상으로 전시 내내 동선이 겹칠 때마다 먼저 내쪽에서 피하기 바빴다.
서로 인사를 나누고는 영미가 나누어준 티켓을 받아 들고 서둘러 전시장이 있는 1층으로 가는 에스컬레이터를 탔다.
"여긴 자주 오세요? 우리는 지은맘이 가끔 티켓 생기면 데리고 와서 덕분에 문화생활하고 있어요."
살짝 내 또래보다는 나이가 있어 보이는 방송국 다니는 이 워킹맘이 먼저 말을 걸어왔다.
"네. 아이 데리고 가끔 오는 편이에요. 아이가 여기 분수를 너무 좋아해서요"
타인이 먼저 말을 걸어오는 건 두 가지다.
나에게 호감이 있거나, 어색한 공기의 흐름이 싫어서 본인이 먼저 끊기 위해서다.
그러나 이번엔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았다.
그녀가 내게 호감을 갖기엔 내가 확 다가오는 인상의 소유자도 아니었고 그러기엔 서로의 정보가 너무 없었다.
그렇다고 어색한 공기가 흐르기엔 너무 광활한 공간이었다.
그저 낯설지만 함께 전시회를 관람하는 지인에 대한 예의상 건네는 말임을 알기에 적당한 정도의 긍정적이고 중간 정도의 온도로 대답할 수 있는 기술치를 오랜 사회생활을 통해 터득했다.
"저희 애도 여기 분수 참 좋아해요. 애들은 다 똑같나봐요"
"그러게요 ㅎㅎ"
전시장 입구로 들어가는 한쪽의 거대한 벽에는 관람자들이 기념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포토존이 마련되어 있었다.
네 명의 엄마는 각자의 아이들을 그 벽 앞으로 한 데모아 생전 처음 보는 아이들인데도 함께 사진을 찍게 한다.
"시환아! 여기 봐! 엄마 보고 웃어봐"
자매들은 자매끼리, 형제들은 형제끼리, 그리고 외동은 외동끼리 따로국밥 같은 단체사진을 찍고 서둘러 입구로 향한다.
그리고는 각자의 아이들을 전담하며 자유롭게 전시장을 돌아다니다 마주치면 한 번씩 아는 체를 하고 사진 찍기가 가능한 곳이라면 상대방의 아이들을 찍어주거나 한다.
아이들을 위한 공간이 따로 마련되어 있어서 아이를 앉혀놓고 색칠놀이를 하게 한 다음 사진을 찍고 있었다.
저만치서 블래 드레스의 그녀가 아이를 피사체로 두고 사진을 찍고 있는 모습을 물끄러미 봤다.
어차피 그림책에서 본 그림들이 대부분이라 집중해서 작품들을 볼 필요까지는 없었지만 그녀는 유독 작품에는 눈을 두지 않고 작품 앞에 서있는 아이, 뻥 뚫린 구멍 건너편으로 보이는 아이, 앉아서 색칠하고 있는 아이의 모습만 따라다니며 사진을 찍고 있었다.
'전시회에 사진 찍으러 왔나. 뭔 사진을 저렇게 찍어대는 거지?'
속으로 이렇게 생각을 하며 그녀의 행동 하나하나를 작품 보듯 자세히 구경하고 있는 내게 아이가
"엄마! 나 쉬야 마려워!"
하며 앉아있던 유아용 이케아 테이블에서 일어섰다.
빈백에 앉아 있던 나는 바닥에 잠시 둔 에르메스 백을 다시 집으려는데 검정색 얄쌍한 샌들 뒤꿈치가 발로 툭 건드렸다
짜증 섞인 눈빛으로 위를 올려다보는데 뒷걸음치며 아이 사진을 찍던 블랙 드레스의 그녀가 휘청거리며 그 순간에도 사진을 찍더니 나와 눈이 마주치자 미안한 표정으로 바라보며 가방을 들어 건네주었다.
"어머, 미안해요. 밑에 있는지 몰랐어요"
"아, 아니에요. 괜찮아요"
사실은 괜찮지가 않았다.
밑에 사람이 있는지 몰랐다는 건지, 카키색 묵직한 존재감의 가방이 있는지 몰랐다는 건지 헷갈리는 말에 왠지 기분이 상했다.
가방을 건네받고 아이 손을 잡고는 곧장 전시장 밖으로 나왔다.
출구에 이어진 기념품샵에는 아이들의 손에 이끌려 계산대에서 계산하는 엄마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 사이에 영미가 있었다.
"어? 너 벌써 나왔어?"
"응 우리 애들은 이런 거 관심이 없어. 그저 기념품이나 사줘야 따라오지"
영미 큰딸 지은이는 서울의 유명 사립초등학교에 올해 갓 입학한 1학년이다.
유명 사립초라지만 과거의 영광을 빼면 사립초 중에서는 그다지 가고 싶지 않은 허세만 남은 학교.
그런 초등학교에 아이를 입학시키기 위해 영미는 위장 전입을 했고 입학을 위한 공 뽑기에서 1번을 뽑는 신의 손으로 등극하여 온 집안이 경사스로움으로 난리가 났다.
그리고 3살 터울 여동생 지온이는 저절로 그 학교 학생이 될 신분이 되었다.
"언니들 아직 안에 있지? 언제 나오려나? 전화해 보까?"
"야야 아서라. 전시장에서 작품사진 찍느라 바쁘신 분 하나 계시더라."
어디에서 뺨 맞고 화풀이한다더니 기분 나빴던 기억에 툭 튀어나와 버린 진심 반쯤 묻은 비아냥거림을 내뱉고 는 아이손을 잡아끌고 화장실로 갔다.
제법 서서 어른용 변기에도 소변을 볼 줄 아는지라 빈칸 찾아 아이를 넣어주고 문을 닫았다.
"변기에 다리랑 바지 안 묻게 조심해서 싸야 해. 알았지? 엄마 문 앞에 있을게."
"네. 엄마 밖으로 나가면 안 돼. 꼭 여기 안에 있어야 해"
"응. 알았어. 걱정 말고 얼른 쉬야해"
아이가 돌이 되기도 전부터 드나들었던 미술관이기에 기저귀를 갈러 유아 휴게소를 찾아 헤매지 않아도 되는 지금이 얼마나 편한지 모르겠다.
가끔 조용한 침묵이 흐르는 곳에서 아이의 목소리가 새어 나오면 검지 손가락을 그 조그마한 입술에 대고 '쉬잇'하면 아이도 알아듣는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매너까지 겸비해줘서 더욱 다행이다는 생각을 했었다.
세면대 쪽으로 나와 손을 씻으려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보았다.
이마가 봉긋 솟아오른 달걀형 얼굴에나 어울릴법한 올빽머리를 흉내 내었지만 현실은 편편하다 못해 약간 꺼진듯한 네모난 이마에 뾰족한 턱을 가진 내 얼굴에 다소 쎄 보이는 인상을 더 도드라지게 만들었다.
아이 손을 잡고 산 넘고 물 건너 서초동까지 와서 옷매무새 한번 고칠 틈도 없이 전시장에서 아이 시중들며 허리 한 번 못 피다 쉬야 마렵다는 애 손잡고 나온 삼십 대 중반의 보통 여자.
나름 고상하고 꿀리지 않는 패션감각을 가지고 있다고 자부했는데 거울 속의 여자는 세련됨과 긴장감을 놓아버린, 누가 봐도 애 키우는 그저 그런 주부의 모습이다.
아이를 낳고서부터 이마 양쪽을 타고 올라가는 M자형 이마를 이루는 머리털들이 아직도 잔디인형 꼴을 못 벗어나고 있다.
거기다 뿌염 시기를 놓친 탓에 미용실에서도 애매하게 가격을 측정하는 두피 10센티까지 검정머리로 점령당해 있었다.
급히 가방에서 비비크림을 찾아냈다.
왼손등에 조금 짜서 검지와 중지 손가락으로 기미가 주로 분포되어 있는 광대를 문질렀다.
이놈의 기미는 뭘 해도 가려지지 않는다.
새 옷을 입어도 가려지지 않는 초라함처럼...
야무지게 바지를 올려 입고 닫힌 문을 열고 나온 아이를 세면대 바닥에 놓인 발판 위에 올려놓고 스스로 손을 씻게 해 주었다.
그리고 아이의 옷차림을 바로잡아주고 비뚤어진 모자챙을 정중앙으로 다시 고쳐 씌우며 거울을 보니 반짝반짝 빛나는 아이의 얼굴이 세상 무엇보다 든든한 방패막처럼 느껴졌다.
'됐다. 나는 너만 있으면 꿀릴 게 없어'
다시 전시장으로 들어가려는데 기념품샵에서 물건을 고르는 영미 일행들이 보였다.
하는 수 없이 나도 다시 그들에게 다가가며 검정 드레스의 그녀를 보았다.
여전히 그녀는 샵 안의 물건들을 폰으로 담아내기에 바빠 보였다.
이상한 건 그런 그녀의 모습이 자꾸 눈에 거슬리면서도 예뻐 보인다는 것이었다.
내가 잠시 사용했던 애플폰을 오른손에서 잠시도 떼지 않고 보이는 피사체마다 가느다란 손가락 끝으로 눌러대는 그 모습 자체가 작품처럼 다가왔다.
다시 보니 내 가방을 밟을 뻔했던 그녀의 샌들은 언젠가 스타벅스에서 하릴없이 들쳐보던 노블레스라는 대놓고 명품 홍보하는 잡지에서 깡마른 금발의 9척 등신 미녀가 신고 있던 바로 그것이었다.
아이를 낳고 수유를 한쪽으로만 하다 척추가 휘어버린 건지 내 뒷모습을 보며 걷던 친정엄마가 몸이 한쪽으로 기운 것 같다며 정형외과에 다녀오라고 하셨다.
대수롭지 않게 흘려 넘기다 출퇴근하는 지하철에서 느끼는 허리 통증은 점점 몸의 상반신을 타고 목까지 올라가더니 급기야 두통까지 유발했다.
참다못해 신경외과를 찾아갔더니 5번 디스크가 신경에 눌려있단다.
잘못된 자세로 살아온 탓에 몸이 하나씩 하나씩 고장이 나고 있었던 것이다.
신경 절제술이라는 간단한 시술을 받고 그 길로 백화점에 들어가 통굽으로 된 안정감 있는 투박한 가죽 샌들을 사서 신고 집으로 갔다.
잡지에서 본 이쁘지만 불편하기 짝이 없어 보이는 그 요물 같은 샌들을 그녀는 블랙 미니드레스에 너무도 자연스럽게 매치시켜 신고 있는 것이었다.
매끈한 발꿈치는 샵의 불빛에 더욱 빛나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