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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기언 Oct 23. 2022

생계형이 아닌 자영업자들

마흔셋, 책방 알바생입니다만,

“야, 여긴 가게 주인들이 다들 생계형은 아닌 거 같다. 자아실현을 위해 모인 것 같애”


멀지 않은 동네에 사는 오랜 친구가 내가 동네책방에서 알바를 한다고 했더니 한번 와보고 싶다며 아이들을 데리고 방문했다.

내가 인스타그램을 통해 매일 올리는 책방의 모습을 상상하며 출입문을 들어선 친구는 사진에서보다 책이 더 많은 것처럼 느껴진다고 했다.

사실 내가 찍어 올리는 사진들은 그야말로 “인스타갬성” 듬뿍 묻은 구도라 하얀 테이블 위의 예쁜 찬잔과 잘 어울리는 표지의 책 한 권, 때때로 선물 들어오는 꽃들을 예쁘게 화병에 꽂고 항공 샷으로 찰칵 찍어 올리는 것이라 그저 예뻐 보이는 것에 초점을 맞췄었다.

그러나 책에 진심인 우리 사장님은 매일 대형 서점 사이트를 훑고 손님들이 찾을 만한 책을 아낌없이 주문한다. 그래서 매일 아침 파란색 플라스틱 우유 배달통처럼 생긴 바구니에 주문 책을 가득 담아 배달 오시는 아저씨를 만나게 된다.

그렇게 거의 매일 책들이 들어오다 보니 여백의 미가 느껴지던 책장과 책방의 구석구석이 어느새 책들로 채워지기 시작했다.


"그러게... 늦게 열고 일찍 닫고 휴무일도 제맘대로인 걸 보면 그런 거 같기도 하고..."


트램 라인을 따라 늘어선 이국적인 분위기의 신도시 특유의 감성 넘치는 깔끔한 매장들은 저마다의 개성 있는 간판을 내다 걸고 하나같이 큰 통창에 화이트 시스루 커튼을 늘어뜨렸다.

알록달록 하다기보다는 눈을 가늘게 떠도 안보일만큼 작은 글씨로 써놓은 작은 간판들, 뉴트럴 한 색감의 고급진 분위기의 매장들이 2층에서 내려다보기에 아주 좋다.

뻥튀기를 파는 무인가게 조차도 베이지색에 노란 조명을 달아 고급 수제쿠키 집을 연상시킨다.

부동산마저 크고 바르게 궁서체로 '김선생 부동산 교실'이라 써져 있는 간판을 내걸고 있다.

얼마 전에는 건너편 건물 1층 수제 돈가스 집이 평일 낮에도 문이 닫혀 있길래 뭔 일인가 하고 봤더니 출입문에


'가족 여행으로 당분간 쉽니다. 잘 쉬다 오겠습니다'


라는 메모가 떡하니 붙어 있었다.

여행을 정말 간 것인지 한 달 가까이 돈가스 집은 운영하지 않았고 그 사이 옆 옆집엔 뚝딱뚝딱 인테리어 하는 듯하더니 수제 프리미엄 개사료집이 생겨났다.

십여 년 전쯤엔 국수집들이 우후죽순 생겨나더니 국숫집이 망하고 난 자리에 개인 카페들이 들어찼다.


창쪽에 자리를 잡고 앉아 내가 내려주는 커피를 홀짝거리며 한참을 내려다보던 친구는 문득


"장사가 돼도 그만 안돼도 그만인 사장들만 모인 것 같애. 거리 자체가 그냥 여유가 흘러넘치네"


나도 커피잔을 들고 친구 옆자리로 앉아 창밖을 내다보았다.

오늘따라 한산한 거리가 더 한산한 느낌이다.

다니는 사람들이라곤 강아지 끌고 산책하러 나왔다가 벤치에 앉아 핸드폰을 보는 사람들과 제법 쌀쌀해진 날씨 탓에 후리스 점퍼를 입고 아래는 요가복을 입은 채 운동을 가는 젊은 여자들이었다.

건너편 일인 네일숍엔 긴 머리를 늘어뜨리고 한쪽 다리를 꼰 채 두 팔을 테이블에 올리고 네일아트를 받는 여자 손님이 보였다.


"오늘따라 그래 보이네. 근데 여기 월세 비싸서 오래는 못 버티고 다들 금방 닫더라고"


이 거리가 생긴 지 5년 차, 그 처음부터 보아왔던 내게 이 트램 라인 상가 라인은 자영업자들의 무덤과 같아 보였다.

호기롭게 인테리어 싹 마치고 새 건물에 들어온 자영업자들은 높은 월세에 맞춘 가격에 사람들의 호응을 받지 못하고 소리 소문 없이 임대기간도 채 못 채우고 사라지곤 했다.

초기 분양가가 높게 책정된 탓에 상가 주인들은 건물을 비워두고서라도 임대가를 낮추지 않았고 그래서 더욱 상권이 활성화되기 힘들었다.

그러다 코로나가 덮쳐 겨우겨우 이어가던 가게마저 문 닫고 사라져 버리는 것을 지켜봐 왔다.

모퉁이에 엊그제 뭐가 생긴 것 같은데 몇 달 후에 텅 비어 있는 것을 보며 거기에 무슨 가게가 있었는지도 까마득히 모르는 게 참 아이러니하고 씁쓸한 기분이 들게 했다.


친구의 말대로 겉으로 보이는  거리의 가게들은 죽자 사자 달려들어 호객행위를 하거나 홍보를 하지는 않는다. 오후 느지막이 걷다 보면 벌써 문 닫고 들어간 상점도 눈에 띈다.

아침 일찍 문 여는 곳은 24시 편의점 한 곳뿐.

대부분 11시 오픈이라 아이를 등교시키고 커피 한 잔 하기도 쉽지 않은 지각 거리다.


그런데 며칠 전, 서점 안의 여러 화분 가운데 아랄리아라는 요새 유행하는 멋짐 터지는 화분 하나에 깍쟁이 벌레가 생겨있는 걸 발견했다.

약을 치는 것도 해보고 다 해봤지만 소용이 없어서 햇빛에 며칠 두고 물 샤워를 시킬 요량으로 사장님과 둘이 낑낑대며 출입구 뒤쪽 발코니로 빼내고 있었다.

어디선가 날 선 목소리의 전화통화가 이어지고 있었고 데시벨이 점점 높아지는 것을 느꼈다.

사장님과 나는 소리가 나는 곳을 찾아 두리번거리다 아래층 뒤쪽 발코니에서 들리는 것을 알고는 슬쩍 내려다봤다.


매일 아침 소금 빵과 스콘을 직접 구워내는 베이커리 겸 카페의 사장님이 얼굴이 벌게져서 한 손은 이마를 짚은 채 전화통화를 하고 있었다.


엄마가 지금 못 간다고 몇 번을 말해야 알아먹어? 어?”


아이를 키우는 입장이라 한 마디만 들어도 무슨 상황인지 이해가 간다.

남자아이만 셋을 키운다고 들었는데 그중 한 명과 아까부터 실랑이를 하는 것 같다.

아이는 엄마를 필요로 하고 엄마는 혼자 운영하는 가게를 번번이 비울 수 없어 달래다 목소리가 커지는 상황에 이르게 된 것이다.

가게 안에 손님이 있을 수도, 갑자기 손님이 들이닥칠 수 있는 상황이라 주방 뒤 창고 겸 외부 통로에서 통화를 하는 것이다.

평화로워 보이는 길가 쪽 매장 앞은 여전히 조용하지만 뒤는 삶의 녹록지 않음이 뒤엉켜 있는 것이다.


사장님과 나는 살살 화분을 놓고 들키지 않게 조심조심 다시 책방 안으로 들어왔다.


“에고… 애들 키우면서 장사하기 쉽지 않다고 저번에도 한숨 쉬시더라고”


가끔 출근 전에 빵을 사서 올라오시는 사장님과는 여러 번 대화를 하신 모양이다.

딱 한 번 모닝빵을 사러 간 적이 있는 나도 마스크 너머의 그녀의 표정이 그다지 밝지 않았다는 기억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치…하나도 아니고 셋이나 두고 혼자 빵 굽고 커피 내리고 하는 게 쉽진 않지”


책방 사장님도 아이들을 키우며 운영을 하고 있는 입장이라 혼자 책방에 있다가 아이들 끼니나 간식을 챙겨주러 집에 다녀오시거나 일찍 문을 닫거나 하신다.

알바생인 나도 여름방학엔 아예 아이를 데리고 출근을 해서 아이 숙제를 시키거나 손님이 오면 카운터 뒤에 있는 책상에 앉혀 놓고 숙제 검사를 하곤 했다.

그래도 아이들이 얼마간 큰 상태라 조용히 있을 줄도 알고 시간 되면 학원도 다녀오는지라 큰 불편함은 느끼지 못한 터였다.


그러나 매일 혼자 뼈 빠지게 빵 굽고 커피 내려서 번 돈으로 월세를 내고 나면 남는 게 없다면 하루하루가 임대업자를 위해 죽도록 일하다 오는 꼴이라는 사실에 삶의 의욕이 꺾일 것 같다.


그냥 하는 거야. 일단 벌려는 놨으니 하는 데까진 해봐야지 하면서. 떼돈 벌겠다고 장사하는 자영업자가 있겠니…”


책방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 일 년 전 먼저 꽃집을 오픈해서 운영하고 있는 지인이 덤덤히 내뱉는 말을 들으며 다 같이 아이들만 키우며 분위기 좋다는 커피숍 찾아다니고 놀러 다니던 시절이 그리웠다며 식은 커피를 마시던 장면이 생각난다.

마흔이 넘은 나이에 아직 초등생인 아이들을 키우며 좋아하는 것들을 가까이하며 애들 학원비라도 충당해야지 하고 시작한 장사가 비록 남편의 지지와 보호를 받아가며 별 탈 없이 이어져가고 있지만 가끔은 생각지도 못한 변수에 마음 아파하고 혼란스럼을 겪는다.

여린 마음에, 남한테 비굴하지 못한 자존심에 하고 싶은 말 다 하지 못하고 내내 속만 끓이다 결국에는 쉽지 않은 현실에 자신을 알몸으로 내던진 채 생채기만 가득한 몸으로 되돌아오는 게 다반사인 자영업자.


세련되고 번듯한 상가의 외면과 달리 뒤에선 쭈그려 앉아 상처받은 마음 울음과 함께 삼키고 다시 힘내 웃는 모습으로 나타나고야 만다.


며칠 뒤 1층 사장님이 가게를 내놓았다는 얘기를 들었다.


괜히 장사했나 봐요. 애들도, 저도, 가게도… 모두 이도 저도 아닌 채 뒤죽박죽이었어요”


참기 힘든 스콘 냄새가 스멀스멀 올라올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2022. 10.22

엄기.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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