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엄기언 Oct 13. 2022

처음 하는 알바생입니다만

마흔셋, 책방 알바생입니다만,

마흔세 살, 알바생입니다만

새벽 5시 반, 눈이 떠졌지만 다시 자기로 마음먹는다.

일 년 넘게 해 온 미라클 모닝은 새벽시간을 온전히 내 시간으로 삼기에 더없이 좋은 선택이었지만 부작용 역시 만만치 않았다.

가장 큰 불안요소는 낮동안 느닷없이 파고드는 졸음과 하품 그리고 저혈압으로 인한 체력 저하였다.

그래서 오전 11시에 한 번, 오후 4시에 한 번은 꼭 찾아오는 불청객 같은 수면부족으로부터 오는 피곤함에 몸이 땅 밑으로 꺼지는 듯한 느낌을 이겨내야만 했다.

이기지 못한 날은 10분이라도 소파에 누워 쪽잠을 자기도 했다.


오늘은 그런 불청객 따윈 마주쳐서는 안 되는 날이다.

10여 년간 다녔던 회사에 5년이라는 기간 동안 경력단절이 있다가 복직하는 것도 아닌, 그냥 지인이 오픈하는 '동네책방'에 오전 10시부터 아이가 하교하는 1시까지 '있다가 오는' 알바를 시작하는 날이기 때문이다.

지어진지 5년이 채 안된 아파트부터 길어봤자 6년이 최장수인 아파트들로 이루어진 인구 10만이 채 안 되는 이 신도시에 둥지를 튼 지 햇수로 5년이 되었다.

트램이 지날 것으로 예상되는 도심을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트램 라인 양옆으로 신축 아파트들이 단정하게 줄지어 있는 광경을 품은 상가 2층에 자리 잡은 적당한 크기의 공간.


자칭 오전 잠이 많다며 책방 주인은 아예 책방 오픈 시간을 12시로 정해놨다.


"애앵? 오전 장사는 어찌할라구? 오전에 갈 데 없이 유모차 끌고 댕기는 엄마들이 얼마나 많은데?"





사실이었다.

상가 한 집 건너 한 집이 카페 이지만 부지런 떨지 않는 사장들인지 먹고살만한지 아니면 개인 카페이니 개인 맘대로 운영하겠다는 건지 대부분 11시 넘어서 문을 열었다.

그러나 아이들을 어린이집이나 유치원 가는 버스를 태워 보내고 나면 고작 9시 남짓.

집에서 대충 늘어진 티셔츠 쪼가리나 걸치고 나오지 않는 신녀성 엄마들이 많은 이 동네에서 아침부터 풀장착을 하고 나오는 게 이상하지도 않았다.

엄마들은 집에서 나올 때부터 아이들의 옷도 신중히 고르지만 본인 역시 매일 마주칠 동네 엄마들의 눈을 의식해 비비크림도 바르고 살짝 살구빛 도는 립글로스를 바르느라 엘리베이터 안에서도 분주했다.

아침부터 너무 과하지 않게, 그렇다고 생활에 찌든 티는 내고 싶지 않기에 '등원룩'을 검색해내어 플리츠 바지에 엉덩이를 덮는 오버핏 셔츠를 다려 입고 나온다.

해가 쨍쨍한 날엔 선글라스나 헬렌카민스키의 비앙카를 머리에 자연스레이고, 비가 오거나 흐린 날은 검은색이나 아이보리색 몽클레어 바람막이를 걸친다.

아, 제복처럼 모두가 이런 복장이면 끔찍할 것 같다.

내 눈에 비치는 세련미 넘치고 호감 가는 동네 엄마들이 그렇다는 것이다.


아주 대부분은 그저 긴 원피스가 푸대자루마냥 어깨에서부터 발목까지 직사각형으로 내려와 굴곡이라고는 뽕브라의 높이만큼 살짝 올라가는, 한마디로 온몸이 원피스 안에 감쪽같이 숨겨지는 드레스 복장이다.

네이버 쇼핑몰에서 만 원대에서부터 비싸 봤자 삼만 원 대면 부담 없이 결제버튼을 누를 수 있는 보통의 옷들이다.

엄마들이 노란 버스에 아이들을 태워 보내고 나면 집에 바로 들어가기 싫은 엄마들끼리 삼삼오오 단지 앞 길거리에 서서 얘기를 나누거나, 일단 집에 들어가서 떡진 앞머리라도 대충 씻어 나올 요량으로 다시 만날 약속을 즉석에서 하고 헤어진다.

그 무리에 끼지 못하거나 끼고 싶지 않은 엄마들은 집으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에 휑하니 타버리고는 거울 속에 비치는 자신의 모습을 잠시나마 멍하니 쳐다본다.


'내가 별론가?'

'내가 말 걸기 힘들게 생겼나?'

'지들끼리 언제 저렇게 친해진 거지?'


짧은 몇 분 동안 아침 커피를 함께 하지 못하는 자신에 대해 절망의 시간을 겪는다.


내 얘기다.

다 그렇지 않다.


이 동네에 처음 이사 와서 가장 기뻤던 것은 원했던 학교의 병설 유치원에 합격한 사실이었다.

그러나 그 기쁨도 잠시, 매일 아이를 유치원까지 데려다줘야 한다는 사실에 비록 10분 남짓의 거리이지만 아침마다 내 옷과 선글라스를 찾아 장착하느라 스트레스 아닌 스트레스를 받았다.

왕복 8차선의 도로를 건너기 위해 잠시 대기하는 신호등 아래서 만나는 아는 얼굴과 인사를 하고, 신호가 바뀌어 횡단보도를 건너는 동안 눈인사를 하고 아이를 유치원에 넣어 놓고 돌아오는 길목에 그제야 아이손을 잡고 유치원으로 향하는 얼굴과 인사를 해야 했다.

그럴 때마다 네 개의 눈은 서로를 탐색하느라 여념이 없다.

찰나의 순간에도 상대방이 신은 신발이 골든구스인지 나이키인지 구별해내고, 화사하고 매끈한 저 피부결이 주기적으로 피부과를 다닌 피부인지 아니면 타고난 것인지조차 구분이 될 만큼 매의 눈이 되어 판단하는 것이다.

몸가짐이 중요한 것은 바로 이런 허점을 노리고 그 사람을 한 번에 레벨별로 구분해버리기에 간과할 수 없는 과업인 것이다.

상대방이 입은 옷에 딱히 브랜드 로고가 없더라도 옷을 입은 저 탄탄한 몸매가 늘상 관리를 하는 건지 아닌지를 개인의 눈으로 판단해버리고 관리를 한다는 것은 경제력까지도 가늠할 수 있는 요소가 되어 버린다.


아이를 넣어놓고 집으로 바로 들어가기 싫은 날이 유난히 있다.

해가 너무 선하게 쨍쨍하거나, 새의 지저귐이 갑자기 향수를 불러일으키거나, 집안일을 다 해놓아서 뭔가 밖에서 싸돌아다니고 싶은 욕망이 고개를 들 때, 나는 9시 조금 넘은 아침에 불러낼 동네 엄마가 없어서 혼자 학교 주변 아파트들을 돌아다니곤 했다.

그러다 카페들이 즐비한 트램 라인에 도착했는데 그 시각이 10시가 조금 안 되는 시각이었다.

3000원짜리 아메리카노라도 마시고 들어가고 싶지만 오픈한 매장이 한 군데도 없다.


'아... 진짜 이 동네는 어디 커피 한 잔 마실 데도 없네'


이럴 때 붙임성 좋은 아는 엄마라도 만나 선뜻 '저희 집에서 커피 한 잔 하실래요?' 하는 상상을 해보지만 상상은 영원히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 시간에 정리되지 않은 아침 전쟁의 잔해가 나뒹구는 집구석을 온전히 타인에게 보여줄 속없는 여자들은 드물기 때문이다.


이른 시각에 문을 여는 커피숍은 트램 라인 북쪽에 자리 잡은 스타벅스 한 군데밖에 없었다.

대부분 아쉬운 마음을 부여잡고 집으로 꾸역꾸역 돌아가지만 한 번씩은 1킬로 정도 걸어 스타벅스로 향했다.

이미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끼리끼리 친한 엄마들이 테이블을 차지하고 둘이서 혹은 서넛이 서 하얀 커피잔을 잡고 서로의 얘기에 맞장구를 치느라 입구에서부터 시끌벅적하다.

다들 저렇게 부지런하게 약속을 잡고 차려입고 나와 커피숍에서 어제저녁부터 '밀린' 수다를 떠는 것이었다.


외로움의 구멍이 가슴 한가운데서부터 커지는 순간이다.

그러나 혼자만의 시간도 곧잘 즐기는 타입이므로 진한 아메리카노 톨 사이즈 한잔을 받아 들고 여기저기서 의자를 하나씩 빼가버려 원래는 테이블 하나에 의자가 세 개였을 자리에 하나밖에 안 남은 의자와 테이블 세트에 엉덩이를 붙여 본다.

그리곤 나의 무료함과 함께 무리들의 시선으로부터 차단시켜줄 SNS 세상으로 접속한다.





"그러지 말고 내가 오전엔 봐줄게. 그리고 언니가 오후에 나오면 되잖아."


책방 주인은 나보다 연배가 있는 아이 친구 엄마다.

우리가 서로를 알게 된지도 벌써 5년째다.

서로를 배려하고 적당한 예의를 지켜가며 별 탈 없이 잘 이어지고 있는 인연이다.

아이들끼리 가끔 투닥거리긴 해도 엄마들끼리 서로 좋아하는 사이라 잠시 속은 상해도 문제 삼을 이유는 없다.

우리는 우리의 관계가 더 중요하니까.


"언니, 오전에 갈 데 없는 엄마들 타깃으로 조용히 책도 보고 차도 마시게 일찍 열자. 어때?"


대부분의 독립 책방의 영업시간이 사장님이 공지한 12시인 것도 모른 채 나는 내 생각을 피력하며 오전부터 오픈해보자고 했다.

오전 10시에 오픈하면 근처 커피숍들이 11시에 여는 것보다 이른 시각이므로 부지런한 엄마들이 오며 가며 들를 것이라고 생각했다.

사려 깊은 사장님은 알바생이 하자는 대로 10시부터 오픈을 하기로 했다.

20년 넘게 금융권에서 잘 나가는 커리어우먼이자 워킹맘으로 살아온 사장님은 은퇴하면 꼭 본인만의 공간을 가지고 가장 좋아하는 것들로 채우고 싶다고 했었다.

책과 예쁜 가구, 그리고 커피.

특히 그녀의 책에 대한 사랑은 나보다도 한 차원 높아서 회사를 다니는 양반이 금융 서적을 두권이나 집필할 정도의 열정을 뿜어내기도 했다.

그 책들은 책방 한켠에 수줍게 자리하고 있는데 굳이 자신의 책을 대놓고 파는 것도 부끄럽다며 책장 맨 아래쪽 구석에 진열해 두었다.

그러나 나는 사장님이 자리를 비우고 혼자 책방에 있을 때 손님들이 오셔서 내가 사장님이냐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일부터 사장님 얼굴이 표지에 있는 책을 꺼내 들고 '이분이 사장님이세요'라며 은근히 작가가 운영하는 동네책방이라는 자부심을 드러내곤 했다.





장사라는 게 내가 예측하는 대로 되는 게 아니라는 걸 깨닫는 중이다.


알바생으로 출근하기 시작한 게 7월 말.

오전부터 사장님 지인들이나 인스타로 보고 왔다는 동네분들이 꽤 있었다.

역시 오전부터 오픈하길 잘했다는 생각을 했었다.

내 가게 인양 아침마다 옷차림에 더욱 신경 쓰고 집에서 천천히 온갖 주변을 둘러보며 계절을 만끽하며 걸어도 10분 정도 걸리는 길을 사뿐히 걸어 책방으로 향했다.

사장님과 사이좋게 하나씩 나눠가진 세콤 보안카드를 해제 버튼을 누르고 대면 딸깍 소리와 함께 책방 문이 열렸다.

에어컨을 최대로 켜고 컴퓨터를 켰다.

유튜브로 재즈나 스타벅스 매장이 썸네일로 된 음악채널을 틀어놓고 루이스폴센 전등 3개가 나란히 내려온 탁자 위와 간판 그리고 인테리어처럼 점점이 박힌 전등들을 한꺼번에 켰다.

내가 마실 진한 아메리카노를 일단 내리고는 통창으로 내려다보이는 기가 막힌 전경을 스마트폰으로 찍는다.

7월 말은 오전 10시부터도 찌는듯한 더위를 선사한다.

그래서인지 안 그래도 한산한 거리에 더 사람이 없는 것 같다.

방학기간이라 아이들을 등교시키는 엄마들도 없다.


유난히 개를 키우는 사람들이 많은 동네라 더 더워지기 전에 개를 끌고 산책을 하는 사람들만 보인다.

그들이 설령 커피가 땡겨도 고개를 뒤로 젖혀 2층에 커피숍이 있는지 확인하지는 않을 것이다.

상가 1층에도 차고 넘치도록 생겨버린 작은 카페들은 비교적 부지런 떠는 주인들이 10시부터 운영을 하기 시작했다.

위에서 내려다보며 사람들과 눈이라도 마주치면 여기에도 차를 마실 수 있는 예쁜 공간이 있다고 눈으로 얘기해 주고 싶었다.


8월의 찌는 듯한 무더위와 심난한 태풍이 한차례 지나가고 올만한 지인들이 다 왔다 간 듯하다.

이제 정말 낯선 사람을 손님으로 맞이해야 하는 9월이 되었다.

사장님은 오전에 있어보니 책을 사러 아침부터 눈에 잘 띄지 않는 상가 2층까지 올라오는 손님이 없다는 사실을 빠르게 인지하고 운영시간을 11시로 늦췄다.

덕분에 나의 출근시간도 1시간 늦춰졌다.

그동안 빨래를 세탁기에 넣고 작동시켜놓고는 1시가 넘어 퇴근해 돌아와서야 다시 한번 헹굼과 탈수를 15분 동안 한 다음 건조시켰다.

1시간이 주는 여유로움은 나오기 전에 그 모든 과정을 끝내고 나올 수 있다는 것 빼고는 별다른 차이점이 없었다.


운영시간을 변경도 해보고, 메뉴판의 음료들을 늘려 가보기도 하고, 저녁에는 독서모임도 하며 10월을 맞이했다.

생각보다 오전에 할 일 없이 어슬렁거리는 과거의 나 같은 엄마들이 많지 않았다.

그동안 스타벅스도 더 생겼고 1층 카페 중 하나는 초절정 미남 두 명이 친절과 박력 넘치는 어깨를 드러내며 힘줄 빡시게 내린 맛있는 커피를 판다고 소문이 나 정작 커피를 파는 나와 사장님도 가끔 그곳에 가서 커피를 마시기도 했다.

심지어는 그곳에서 서로의 사진을 찍어주며 친절하게 해시태그까지 #xx카페 로 붙여 인스타에 올리기까지 했다.

오후에는 그 잘생긴 카페 사장님이 좋아요를 눌러주어 꺄악 소리를 지를 뻔도 했다.





대학 때 과외를 해본 것 외에는 이렇다 할 알바를 해본 기억이 없다.

알바할 시간에 토익점수를 높이는 게 맞다고 생각했고 남자 친구랑 카페에서 시시덕 거리는 시간이 더 많았다.

사실 시간당 페이를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는데 과외로 알바를 시작한 이상 쉽게 다른 알바를 구할 수 있는 자신이 없었기도 했다.

내 대학시절 카페 알바 시급은 3000원이 채 안되었고, 가까운 나라 일본은 그 시절에도 시간당 1만 원에 육박하는 시급을 주었다.

지금 우리나라가 20여 년 전 일본의 알바 시급을 준다 하지만 거기에 걸맞게 오른 물가를 생각하면 한 시간 일해서 한 끼 해결하는 정도가 될 것이다.

그럼 난 왜 이 나이에 알바라는 이름으로 매일 책방에 나와있는가.


글을 쓰고 싶다는 열망이 피어오른 지가 10년이 넘는다.

그러나 게으른 몸은 소파를 파고들고 밤늦게까지 리모컨으로 이리저리 호떡 뒤집듯 채널을 돌려가며 애써 잠을 피했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만 가고 전업주부가 된 나는 맘모임에 나가서 브런치를 먹고 집에 와서 쉬고 저녁 밥상을 차렸다.

주말에는 여행을 다니거나 가족행사로 진득하게 앉아 글을 쓸 시간이 없었다.

아니 사실 글을 쓸 시간을 내게 부여하지 않으려고 애쓴 것만 같다.

그러나 아예 손을 놓은 건 아니었다.

나는 인스타그램을 꾸준히 하고 있었고 계정을 두 개나 만들어서 소위 말하는 '부캐'를 소유하고 있다.

팔로워도 제법 늘었고 내가 쓴 북서평을 읽고 책을 따라 사는 사람들도 꽤 있었다.

출판사들의 북서평 요청도 계속되었고 그때마다 나는 우쭐대며 골라 읽기 시작했다.


나이가 들면서 남은 건 과거에 대한 추억을 붙잡고 싶은 의지랄까.

남들에게는 별 것 아닌 내 추억들을 쌀밥처럼 깔고 각종 반찬과 찌개를 끓여 소설을 한 권 뚝딱 만들고 싶은 생각이 점점 강해졌다.

그러던 중 회사를 다니며 출판을 해본 선배 육아맘이자 워킹맘이자 지금은 책방 사장님이 된 동네 언니가 옆에서 더욱 격려를 해주었고 오전에 알바라는 이름으로 그녀의 공간에 스며들어 글을 쓰고 있다.

쉽지는 않다.

특별한 홍보를 하지 않는 이상 이 장소에 책방이 있는지조차 모르는 주민들이 많다.

젊고 미래를 생각할 청년들이 많은 곳이라면 한 번씩 들러 에세이집이라도 들춰보고 가겠지만 여기는 유모차 부대가 주류인 베드타운 신도시이므로 특별히 책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 아니면 장소를 물색해서 올라오지는 않는다.


그래서 한가한 이곳에서 나와 사장님은 작업실 삼아 글을 쓴다.

물론 가끔 오시는 단골들과 모여 차도 마시고 맥주도 마신다.

우리는 각기 다른 분야의 작가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자신들이 추구하는 작품세계에 대해 설명하고 응원하며 서로가 잘 되기를 바라기도 한다.

아이를 키우며 살림까지 병행하며 작가의 꿈을 놓지 않는 이유는 여러 가지다.


하나만 꼽는다면,

나를 잃지 않기 위해 꽉 붙들어 맬 것이 그것 아니면 없기 때문이다.

속엣말, 추억하고픈 말, 일상의 소소한 즐거움을 누군가에게 일일이 뱉어버리고 싶은 충동을 자꾸 억제하면 내가 나일 수도 없고 그냥 사라져 버릴 것 같은 불안감에 주저리주저리 글로 풀어내는 것이다.

그리고 운이 좋아 내 글이 책으로 엮인다면 그보다 더 달콤한 요행은 없을 것이다.



오늘도 나는 풍경이 끝내주는 2층 상가 창가에 앉아 글을 쓰는 알바생이다.



2022.10.13 엄기, 언



이전 03화 생계형이 아닌 자영업자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