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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기언 Apr 02. 2024

7. 선생님,피부과약이랑 정신과약은 같이 먹어도 되나요

템플스테이 로망스

연어가 회귀하는 것처럼 내게도 꼭 한달에 한번 씩 찾아오는 게 있다.

바로 아직 가임기라는 표식인 월경과 함께 오는 턱밑 뾰루지이다.

10대부터 끊이질 않더니 항염증 주사제를 수십방 맞아도 그날만 되면 턱 밑에 작은, 혹은 큰 뾰루지가 난다,

싫다.

정말 싫다.

20대때는 온 몸에 기름이 돌아서 난다고 쳐도 40대 중반이 된 지금은 온몸이 가물어서 주글주글 가뭄상태임에도 불구하고 그날만 되면 턱밑만 기름진 그 것이 못마땅하다.


사실 템플스테이에 들어갈 때 현재 복용하는 약이 있는지에 대한 형식적인 조사가 있었다.

나는 그냥 건강한 사람인 척, 아무것도 없음 (none)에 동글뱅이를 쳤지만 내 가방에는 끼니마다 먹어야할 피부과약과 신경정신과약이 깊숙히 숨겨져 있었다.


둘다 자세히 보면 누군가에게 비치는 내 모습이 별나보이지않게, 지극히 평범하고도 아름다워 보일 수 있게 만들어주는 약이었다.

피부과약을 먹으면 더 이상 뾰루지가 나지 않았고 신경정신과약을 먹으면 더 이상 술이나 자살 생각이 나지 않아서 나는 한없이 여유있고 고상한 모습으로 남을 수 있었다.

그랬기에 둘다 포기할 수 없었으나 의학적, 약학적 지식이 전무한 무식한 나에겐 두가지 임상학적 영향을 끼치는 독한 약이 내게 무슨 해라도 끼칠까봐 조금 걱정을 했던것 같다.


사찰에 들어오자마자 할일이. 없어 짐을 정리하다 그냥 피부과약을 먹었다,

아니,,,사실은 사무실에서 본 그 남자애 때문일지도 모를일이다.

그리고 저녁을 먹고 난 후에 취침약으로 정신과약을 먹을 생각이었다.

부작용인지 모르겠지만 그약은 잠을 부르는 약이므로…


저녁식사를 알리는 종소리가 울리자 여기저기서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나며 신발을 질질 끌며 밖으로 나가는 소리가 났다.

 “빨리 가잖께! 배고파 디지거따”:


친구들끼리 왔다는 남쪽지방 사람들은 일찌감치 식당으로 향하는 눈치였다.

그리고 겜돌이 고3짜리 딸램을 데리고 온 방에서는 잠시 소란하더니 저녁도 먹지 않고 부랴부랴 짐을 싸서 하산을 하고 말았다.

그리하여 남은 인원은 남쪽 지방 언니들(?)과 나, 그리고 구슬프게 헤어져 있는 커플, 그리고 옆방의 아가씨 한 명이었다.



잘생긴 총각으로부터 저녁을 같이 먹자는 말은 평생 처음 들은 소리라서인지 저녁 공양을 알리는 종이 울리는 순간부터 가슴이 떨려 차라리 방에서 잠이 들어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고 말았다.

그러나 긴긴밤을 빈속으로 지낼 힘은 없었기에 화장을 고치고 칠한듯 안 칠한듯 연한 빛으로 립글로스를 바르고 옷을 주섬주섬 걸쳐 입었다.


최대한 천천히 걸어간 공양간 앞에 청년이 서 있었다.

물론 모든 참석자들이 다 왔는지 여부를 체크하기 위함아라고 이성으로는 생각했음에도 나를 보며 웃음짓는 그를 보며 애써 웃음을 막으며 고개를 숙이며 더욱 깍뜻하게 그를 맞이하는 내가 애가 탄다.


“오셨어요? 배고프셨죠? 맛있는거 많아요. 어서 들어가시죠”


그 애가 그 애 지갑에서 사비를 털어 사주는 음식도 아닌데 나는 왜인지 모르게 그 애에게 저녁밥을 얻어 먹는 기분으로  혹은 저녁 데이트를 하는 기분이 살 짝 들어 설레기까지 했다.

옆으로 휙 지나가는 옆 방 아가씨의 진한 향수에 잠깐 정신을 차리지 못했으면 정말 이 산속에서 우리 둘만의 디너정식을 먹는 기분을 만끽했을지도 모르겠다.


음식은 각자가 큰 접시에 덜어먹는 뷔페식이었다.

발우공양 따위는 필요없었다.

그냥 먹을만큼만 덜어서 남기지만 않으면 수세미에 중성세제를 묻혀 윤이 나게 닦아 놓으면 끝인 단순한 식사시간이었다.

그가 먼저 내 앞에서 밥을 퍼 담아 얇게 펼쳤다.

그리고 내가 푸기 좋게 물이 담긴 그릇에 주걱을 담가줬다.

나는 그가 푼 것보다 약간씩 적게 적게 밥이든 반찬이든 담기 시작했는데 내가 좋아하는 미역줄기는 마음껏 담기 시작했다.


“미역줄기 좋아하시나봐요? 저는 충청도 살아서 그런지 바다에서 나는 음식은 다 잘 못 먹어요“


지나가는 말이지만 충청도 출신인 남편이 생각나게 하는 대목이라 잠시 머리가 띵하기도 하고 젊고 잘생기고 호의적이기까지 한 이 열살 넘게 어린 남자에게 마음을 홀랑 빼앗긴 마누라를 대신해 짐승같은 아들을 보고 있을 남편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네…어릴때부터 좋아했어요. 맛있어보이네요”



이런 내 모습을 그가 봤으면 뭐라했을까

아니 충청도 감성을 지닌 여자아이가 봤을때…



이런…씨부럴년…이라 했을까?


서너가지가 넘는 반찬과 국 중에 생각나는게 미역줄기 무침밖에 없는 걸 보면 내가 그와 함께 하는 저녁 시간 내내 소개팅에 임하는,,,그것도 여자가 남자에게 더 맘이 기울은 갑을 관계의 더럽고 치사한 식사를 한 것임에 틀림없다.


씨부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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