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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기언 Apr 09. 2024

8. 매몰비용이 없다는 것

템플스테이 로망스

저녁식사가 끝나고 각자 쉬는 시간을 가지다가 저녁 예불을 드리러 7시까지 나오라고 했다.

밥을 코로 먹었는지 입으로 먹었는지 모르겠다.

생각보다 그 아이는 밥먹을 때 별말이 없었다.

그냥 묵묵히 밥과 국을 먹다가 가끔씩 반찬을 먹고 다 먹고 나니 내가 한 두 숟갈 남기고 있으니 창밖을 보며 기다리는 듯 했다.

나는 두 숟갈도 넘는 밥을 입에 욱여 넣으며 국으로 목구멍에 쑤셔 넣었다.

남이 나를 위해 기다리는건 잘 못하겠는 짓이다.

민폐같다고나 할까….


뒷좌석에서 시끌벅적 하하호호 웃으며 밥을 먹던 남쪽 지방 언니들은 벌써 세제로 그릇을 닦고 밖으로 나가며 숭늉을 들이키는 것을 보았다.

나는 이제는 정말 그만 먹고 그와 함께 설거지하는 곳으로 이동해야 하는 걸 깨달았다.

왜냐하면 얼핏 ‘아직도 먹고 이꼬만….아따…젊음이 조은갑쏘’라는 말을 들은거 같기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그녀들은 내가 젊고 잘생기고 친절하기까지한 그 녀석과 조금이라도 더 함께 하고 싶어 천천히 밥을 먹는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그러나 나는 원래 그냥 보통의 수준이다.

아니 , 솔직히 직장상사의 군대짬밥 클리어 속도에 따르던 몇년의 경험으로 다른 여자애들보다 빠른 편이다.

그러나 다른 사람 혹은 최소한 여자들끼리 와서 누구든 안줏거리로 삼아야 할 사람이 필요한 무리들은 우리둘이 그것에 딱 맞는 모야이었다.

그것을 인지한 나는 입안 가득 밥을 욱여넣고 많이 담아온 미역줄기를 다 먹어치우리라 입에 넣고 씹고는 잔반을 국그릇에 담기 시작했다.


“다 드셨어요? 천천히 드셔도 되는데요”


남자는 잔반을 처리하는 내 모습을 보며 본인도 미뤄둔 잔반처리를 하며 내게 위로하듯 얘기했다.


“네 다 먹었어요, 역시 맛있네요 ㅎㅎ”



맘에도 없는 소리.

맛이 있는지 없는지 기억이 통 나질 않는다.

그냥 하얀 플라스틱접시위의 음식을 내 뱃속으로 실어나른거 외엔….


그 아이와 함께 움직이며 설거지를 함께 하며 남편을 살짝 떠올렸다.

우리가 함께 설거지 한 때가 언제였더라?

결혼하자마자 아이를 임신한 터라 집에 퇴근하면 녹초가 돼서 쇼파에 드러누운 날 배려해 남편은 허구헌날 족발과 통닭을 번갈아 시켜먹곤 했다.

나는 그 냄새조차 짜증이나고 토나올 것 같아서 동생이 사준 공기 청정기를 보란듯이 최고로 올리며 쇼파에 드러누워 있었다.



우리 부부는 끈끈하다고는 할 수 없어도 그래도 문제거리가 거의 없었다.

일하는 내가 만삭이라 밀레 청소기의 힘을 당해내지 못해 남편에게 도움을 청했을 때 그는 주말에 일해주는 아주머니를 구했줬다.

그만큼 남편은 집안일은 문외한이자 돈으로 그냥 해결하려는 사람이었고 내 울음의 절반은 같이 일을 하는데 나만 임신하고 나만 집안일을 해야하는 부당함을 남편에게 항소하다 울음을 터뜨리는 게 전부였다.


지금 옆의 젊은 아이는 당연한 듯 자기가 먹은 접시는 깔끔하게 뒤꽁무늬까지 닦아내는 야무짐을 보인다.

‘얘는 결혼하면 집안일 잘하겠다“

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저녁 예불이 시작되기 전까지 30분 정도가 남았었다.

“머하실 생각이세요?”


“네?“


“저녁예불까지 머하면서 지낼 생각이신지 물어본 거예여”


“아….그냥 짐정리도 좀 하고 피곤해서요,,,,”


 “이따 예불에 늦지 않게 오세요!”


6시 반이 넘어가니 그와 함께 일하는 사무실 직원들이 하나씩 퇴근하는 모양이다.

한명씩 내려가는 모습을 볼 때마다 그는 내일 뵈요 라는 인사와 함께 친근함을 내보이곤 했다.

그리고 대웅전 앞에 커다란 보리수앞에서 앉아서 못마땅 한 기분으로 앉아있는 옆방 처녀가 눈에 띄었지만 그냥 그러려니,산에 오래 있으면 기분 더럽힐 만한 일도 있으려니 했는데 그 눈빛이 오래도록 그와 나를 번갈아 가면서 눈동잘 굴리는 걸 내 예민함이 캐치했다.



”밥은 다 먹었나보네? 워쪄? 잘생긴 총각이랑 묵은께 밥맛이 꿀맛이지롸?“



방으로 들어가는 마당에 거쳐온 그 남쪽지방 여성들의 희롱에 내 나이 같으면 “완전 꿀이 뭐예요 진짜 좋았어요”라고 대답할 법도 하지만 지금의 나는 30대 초반으로 돌아간 기분인지라 그냥 씩 웃고 지나쳐 내방쪽으로 왔다.


달리 할 게 없는 산중이라 삼신당 있는 곳부터 돌아볼까 하는 생가에 조끼의 단추를 여며맸다.

조금씩 어스름이 끼는 산사의 삼신당은 엄마가 가까이 지 말했던 말이 떠올라 조금 망설였으나 그냥 갈 데가 딱히 없어 가보기로 했다.

근처에 핀 라일락이 너무 예뻐보이기도 했으니까.

그리고 예불을 드리러 가기 전에 손이라도 씻고 향수까지는 아니어도 은은한 향을 내기 위해 핸드크림이라도 바를 요량으로 세면장이 있는 샤워실로 향했다



‘야…너 뭔데? 그 여자 동정해? 아 씨발 토나와 쉐키야”



“그럼 혼자 왔는 데 혼자 밥먹고 있는 꼴을 보고 있으라고? 내가?”




“넌 이 새끼야….넌 …진짜 그게 문제야. 불쌍해 보이는년들 보이면 다 상대해 주는거.“



“아니야 그런거,…”



“아…아닌가? 그래서 지금 나랑 사귄다고 ? 씨발“


두 남녀 사이의 대화와 담배 연기가 샤워장 밖을 잔뜩 메우고 떠날 즈음에야 더운물을 틀었다.

손만 씻으러 왔다가 수치심이 온몸을 더럽히는 기분이 들었기에 즉석에서 샤워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스쳤다.그러다 문득 웃음이 나왔다.


‘헛 참내…저것들이 귀엽게 노네…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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