템플스테이 로망스
꿈에서 나는 늘 인기만점녀다.
마흔이 훌쩍 넘은 나는 꿈에만큼은 이십대 초중반이다.그 때는 몰랐다. 스물 다섯만 먹어도 늙어서 꺾여버린 크리스마스 케잌같다고 스스로를 치부해버렸으니까.
그래서였을까.
그 당시에 만난 어떤 이에겐 처참한 버림을 받았으면서도 내가 뭘 잘못했는가에 대한 고찰 아닌 고찰을 해대고 결국은 못난 내 자신을 탓하기 일쑤였다.
잠시 꿈을 꾼다.
대학시절 동아리 동기들 모두가 동경해 마지않던 남자아이가 나를 좋아한다.
그리고 고백도 한다.
그런데 어디선가 나타난 다른 훈남이도 나를 좋다고 한다.
나는 둘다를 놓칠 수 없어 한명씩 돌아가며 데이트를 했고 스킨쉽을 허락한다.
머리를 살포시 기대며 네가 좋다며 수줍어했으며 다른 한명에게는 손을 선뜻 내어주며 깍지를 쥐기도 했다.
농익은 연애관까지는 꿈에서조차 허락치 않는군.
그러다 동아리 동기가 다른 친구를 만나는 나를 질투했고 나는 이러다 둘다 놓칠까 두려워 한 명씩 몰래 만나기 시작했다.
꿈에서 우리는 각각 풋풋하고 설레는 사랑을 했으나 마음 한 켠으로는 언제 들킬 지 모른다는 조바심에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는 자연스럽게 손을 놓으며 머리를 정리하는 척 한다.
그러다….
두 남자가 길거리에서 맞딱뜨리고 나는 어쩌지 하는 당황스러움에 모퉁이에 숨어버린다.
그들은 나를 두고 설전을 벌이다 몸싸움까지 한다.
속으로 저럴필요가 있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도 알 수 없는 존재감의 의미를 그 광경을 보며 찾아본다.
오줌이 마려워서 아쉽게 꿈에서 깬다.
젠장….자기전에 차를 마시는 버릇은 버려야지.꼭
아쉽게도 날 두고 벌여진 혈투가 누구의 승패로 돌아갔는지 궁금해하며 화장실로 향한다.
사실 그 보다 더 어린 나이에 양다리를 걸칠 때가 종종 있었다.
내가 남자라고 친다면 본처가 같은 학교 의대생이었지만 본교에서가 아니라 시내에 있는 대학병원에서 수업을 받는지라 나는 늘 점심도 친구들을 찾아 먹거나 데이트도 하고 싶을 때 맘껏 못하는 스물 한살의 어린 아이였다.
그래서 그에게 늘 사랑을 확인하고 갈구하는 입장이었다.
본교에는 남자들이 넘쳐났다.
동아리에도 남자가 더 많았고 눈이 낮은 탓에 교내를 걷는 대다수가 데이트 상대로 손색이 없을 만큼 괜찮은 인물들로 착각했다.
그리고 어느날 , 신호등을 건너는 그 순간 마주친 어떤 키큰 호감형의 남자를 만났고 의외로 쉽게 내 플러팅에 넘어와 주었다. 옆에 있던 또다른 느낌은 훈남 친구와 함께.
우리는 본교안에서 늘 셋이었고 나는 가끔 훈남 친구에게도 플러팅을 하며 그의 반응을 살펴보는 여우짓을 해대곤 했다.
그러다 어느날 후문의 술집거리를 그 남자들 사이에 껴서 세상 참한 여대생의 모습으로 걸어다닐때 앞에서 걸어 오는 한무리의 눈에 익은 남자들 무리속에서 내 본처를 발견했다.
동시에 발견한 우리는 누가 말할 새도 없이 한 건물의 화장실 문앞까지 도망가는 나를 쫓아와 그 남자들의 정체를 묻는 내 본처에게서 이글거리는 질투의 눈빛을 보고 나서야 훈남 두명을 동시에 놔주었다.
꿈보다 더 꿈같은 얘기같다.
그런 나였는데…
마음만 먹으면 그래도 해볼만한 상대는 다 내게 넘어왔던 내 젊은 시절은 어디로 가고 나는 우울증에 공황장애을 안고 자살충동에 몸서리를 치는 마흔살 넘은 미친여자이자 엄마이자 마누라이자…딸이 되어 있었다.
엄마는 내가 갈수록 말라가는 모습을 보기 어려웠는지 자꾸 여행을 권하거나 템플스테이라도 가보는 게 어떻겠냐고 했다.
다 부질없다고 생각했다.
아빠는 아들이 문제라며 그 놈을 청학동에 넣어서 정신개조를 시켜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이미 다녀온 아이들의 사례를 두 눈으로 본 나로서는 한 일주일 약발듣고 도로 아미타불이 되는 걸 보며 돈지랄떤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밖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린다.
그냥 모른체 한다.
방밖은 그냥 소란스러운채 나랑은 상관없으므로.
그런데 점점 그 소리의 데시벨이 높아지며 익숙한 목소리의 조합이다.
그리고 옆방의 남도 여자들이 뛰쳐나와 누군가를 말리는 소리가 들린다.
“아따 아가씨 멀쩡하게 생겨가꼬 이라믄 쓰거쏘?”
“놔!!!! 이 미친년들아!!!!! 아 쉬발 별 늙은년들이”
“오메메! 이 아가씨 하는 말 뽐새좀 보소잉~ 이쁜 입에서 그런말 하는거 아니요잉! 언능 들어가소!”
“지랄하지말고 네들이나 들어가! 남일에 참견말고!”
“이제 본께 낮에 본 저짝 끝방 아가씬거 같은디, 뭔일인지 몰라도 절에서 술먹고 이라믄 쓰거쏘?”
귀를 기울이고 싶지 않지만 그 소리가 내 방 바로 앞에서 일어나는 걸 알고는 살며시 문을 열까 하다가 알 수 없는 두려움에 방 깊숙히 내 몸을 숨기고 말았다.
#스테이 #연애 #소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