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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기언 Apr 19. 2024

9. 벅차오르는 건 가슴이 아니라 눈물이었다.

템플스테이 로망스


윤동주 시인이 우물에 비친 자신을 보며 부끄러워했듯 나는 거울에 비친 내 자신을 보며 몸서리 치게 부끄러움과 수치스러움을 느꼈다.

그곳엔 세월이 비껴가지 못해 고스란히 흔적을 남긴 눈가 주름이 자글자글한 여자가 입꼬리가 내려간 채 우울감 가득한 눈빛으로 겨우 거울을 응시하고 있었다.

‘누가 같이 밥먹자고 했나? 지가 먼저 그래놓고 왜 지들끼리 지랄이지?’

‘아…혹시 내가 부끄러워하고 좋아하는 모습이 예리한 여자의 촉에 걸린걸까?’

‘이래서 젊은 것들과는 엮이면 안돼. 괜히 나만 미친년돼서 또라이 취급받는 건가?‘


갑자기 심장이 두근두근 아니 벌컹벌컹 뛰기 시작한다.공황이 올때면 전조증상으로 느껴지는 심장의 외침이다. 약을 찾아야한다. 곱게 파우치에 넣어서 먹을 일 없겠지 하며 가방속 깊숙히 넣어둔 약을 꺼내 아이시스 물통을 동시에 찾아내어 알약을 삼킨다.


가슴이 떨려본다는 걸 느낀 건 20년도 더 전.

아니 30년전인가?

고등학생 때 사귄 아이와 처음 손을 잡아본 순간 내 심장은 설레임으로 내 가슴뼈를 노크질했다.

그 심장의 노크소리가 그 아이에게 들릴까봐 조바심마저 들 정도였다.


그런데 담장밖에서 들려오는 젊은 남녀의 희롱이 그들의 애정의 다툼이 비수가 되어 내 심장을 후비고 조각조각 찢겨지도록 내버려둘 수 밖에 없는 우울증 환자이자 공황장애를 가진 여자이기에 그저 말없이 가슴을 부여잡고 방바닥에 새우처럼 고꾸라져 있다.


내 아이 일로도 마음이 복잡한데…

죽으려고 왔다가 순간의 설레임에 온몸이 불타 재가 되어 없어지는 존재가 되는 것만 같다.

낮에 봐뒀던 그 나무가 생각난다.

그런데 딱히 어떻게 죽어야할지를 행복한 저녁식사를 마친 후에야 생각하는 나란 여자는 정말 죽을 생각이 있는 것인가?

아니면…


저 둘 중 하나를 없애버리는 게 나을까….

하는 생각까지 드는 찰라에 약의 기운이 온몸을 감돌며 점점 정신이 몽롱해진다.

그리고는 긴긴 터널로 빠지는 듯한 잠을 잤다.

아주 잠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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