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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해니 Sep 24. 2020

엄마는 아직 준비 중

아이는 내 기대치를 웃도는 존재  

아이에게 새로운 변화를 주기 전, 나는 마음을 단단히 먹는다. 오랜 시간 검색하고, 머리로 시뮬레이션을 그리고, 남편과 이야기하고, 또다시 검색한다. 아이에게 새로운 습관을 들이게끔 하는 것은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새로운 분유에 적응하는 것, 속싸개를 졸업하는 것, 새로운 식단에 적응하게 하는 것, 수면 패턴을 바꾸는 것 등 부모는 아이의 신체발달이나 성장 속도에 따른 변화에 맞춰 아이의 원래 패턴에 조금씩 변화를 준다.



나는 아이에게 이러한 '변화'를 주는 일이 버겁게 느껴졌다. 지금까지 쌓아온 패턴 (이제야 익숙해진 패턴 말이다)이 무너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 느낌은 대체로 내 피로함에서 오는 것이었다. 하루하루는 '버티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나에게, 그러니까 매일을 겨우겨우 버텨내는 마음으로 살아내야만 했던 나에게는 굉장한 마음먹기가 필요했다.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도 늘 피곤함에 몸부림치는 나였기에, 새로운 것이 웬 말이랴, 새로운 시작 앞에서는 조금만 생각해도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왔다. 



고백하자면 완벽하게 준비되어야 한다는 강박도 있었던 것 같다. 아이의 특정 패턴을 바꾸는 일은 내가 주도적으로 아이를 리드해야 하는데, 새로운 변화를 시도하기에 나는 아직 부족한 것만 같았다. 그리고 아이가 새로운 변화에 잘 적응할 수 있을지도 늘 의문이었다. 끊임없이 나를 의심하고, 아이를 의심했다. 



괜찮을까? 아직은 좀 어려울 텐데......

늘 걱정이 앞섰다. 






새로운 습관을 들인다는 것은 기존의 생활 패턴이 깨지는 것이기도 하다. 나는 여태껏 애써 맞춰온 평화를 부수고 새로운 변화를 맞이하는 것에 오랜 시간이 걸리는 사람이다. 만나는 사람만 만나고, 연락하는 사람과만 연락하며, 식당에 가서도 새로운 메뉴에 도전하기보다 안정적이고 아는 맛을 선택한다. 


그런 내가 육아를 전담해서 하다 보니, 정신이 하나도 없다. 아이의 1년은 어른의 1년과 같지 않다. 지난달에는 기어 다니기만 했던 아이가 이번 달에는 걸어 다니고, 쿠션 위에 누워 눈만 꿈뻑꿈뻑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던 아이가 몇 달이 지나 나를 쳐다보며 천국을 본 것인 양 해맑게 웃는다. 모유만 먹던 아이가 쌀미음을 먹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맵고 자극적인 것을 제외한 거의 모든 음식을 먹을 수 있게 되었다. 어제까지는 구사하지 못했던 말을 오늘 불쑥 내뱉어서 나를 놀라게 하기도 하고, 당황한 나를 보며 키득키득 웃기도 한다.


아이의 성장과정은 무섭도록 빠르게 흐른다. 주양육자인 나는 이런 과정들을 예리하게 캐치해서 적기 적시에 아이에게 필요한 것을 제공해주고, 필요하다면 새로운 생활습관도 익혀주어야 할 의무가 있다. 그런데 '적기 적시'를 파악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어서, 때로는 아이의 필요보다 내가 앞서가거나 때로는 아이의 필요보다 내가 늦어버리는 일이 생기기도 한다.



아이에게 새로운 패턴을 적용하고 함께 적응해나가면서 하나 깨달은 것이 있다. 사실 아이는 준비가 되었지만, 엄마(부모)준비되지 않은 경우들이 있다것이었다. 


1) 백색소음을 언제 끄고 잠들 수 있을지 

2) 일반식 (이유식을 졸업하고 일반 음식을 먹는 것)의 시작점은 언제로 할지

3) 단유는 언제 할 것인지

 


나는 이 세 가지를 많이 고민했다. 아이가 준비되지 않은 것만 같아서 늘 미루고 미루던 것들이다. 물론 새로운 패턴을 시작하기에 앞서 내 체력적인 문제도 한몫했지만, 나는 아이가 새로운 것을 잘 받아들일 수 있을지에 대해서 의심했다. 백색소음 없이는 잠들 수 없을 것이라고, 일반식은 아무래도 잘 받아들이지 못할 것이라고, 단유를 해버리면 아이와 나의 정서적인 유대에 치명적인 해를 입게 될 것만 같다고 단정지어버렸다.   



치열하게 고민했던 그동안의 내 노력이 무색하게도, 아이는 새로운 변화에 아주 잘 적응했다. 몇 달을 고민해 조심스레 변화를 시도했던 나에 비해서 아이는 최대 10일이 지나지 않아 모든 것들을 수용했다. 새로운 패턴을 익히는 일에 아이는 초반에는 헤매고 기존의 습관대로 행동하려 하기도 했지만 곧잘 따라왔다. 단유를 할 때는 심한 울음과 거부감이 있었지만, 딱 10일이 지나고 나니 거짓말처럼 더 이상 내 가슴을 찾지 않았다. 그때부터 통잠이라는 것도 시작되었다. 우리 부부가 그동안 상상할 수도 없던 것이었다. 



아...... 이게 되는 거였구나. 너는 이미 다 할 수 있는 것들이었구나. 


아차 싶었다.

아이는 내 기대치를 훨씬 더 웃돌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존재였다. 나는 무얼 그리 고민했던 것일까. 왜 그렇게 골머리를 썩여가며 아이에게 어려운 일들일 것이라고 치부해버렸나. 



아이가 이것은 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못할 것이다, 아이의 한계를 내 식대로 재단해버리는 것.

내가 그리 기피하고 싶었던 어른의 모습 아니었던가?



육아를 하면서 배우는 것이 많다. 엄마로서 첫 데뷔를 한지 약 22개월이 되었지만 아직도 서툴고 엉성한 것 투성이다. 그럼에도 내가 우리의 내일이 기대되는 이유는, 서툴었던 면면들을 다각도로 복기하고 반성하고 깨닫는 내가 있기 때문이다. 모두가 잠든 시각, 차분히 앉아 '쓰는 시간' 없이는 불가능한 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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