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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해니 Sep 27. 2020

자꾸만 축하해주고 싶은 마음

쉽지 않은 마음

순수한 마음만으로 축하다운 축하를 해본 게 언제였던가?

오로지 상대를 향한 애틋한 마음만으로 꽉 채워진 그런 축하말이다.



친구 K와는 고등학교 1학년 때 만났다. 그녀는 전학생이었고, 나는 첫눈에 그 친구와 가까운 사이가 될 거라는 걸 예감했다. 말을 많이 섞어보지 않았음에도 상대와 내가 친한 사이가 될 것이라는 것을 예감한 첫 경험이었다.



친구는 미술대학에 진학하기를 원했고 열심히 준비했다. 누구보다 자신의 강점과 약점을 정확하게 알았고, 무엇을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 제대로 인지하고 있었다. 친구는 수능일이 가까워 올수록 모의고사 날만 되면 긴장감에 떨었는데, 한 시험에서 기대한 점수에 못 미치자 욕 한바가지를 신랄하게 쏟아붓고는 자신의 허점을 세부적으로 쪼개어 파악하고, 그에 맞게 전략을 새로 수정해 다시 책 속으로 기꺼이 뛰어들었다. 수능이 몇 달 남지 않은 시점에서 친구의 행동은 아주 과감하고 용감했으며 거침이 없었다. 그녀 자신의 속은 불안하고 초조한 마음에 매일을 떨어야 했겠지만, 내가 보기에는 그녀의 무거운 엉덩이로 그 심난한 속을 지그시 눌러버린 것 같았다.






친구는 평소에 실없는 농담을 잘했다. 엉뚱한 단어나 비유로 사람을 웃게 만드는 재주가 있었다. 어떤 친구들은 그 농담이 썰렁하다고 반색했지만 나는 그게 그렇게 재밌고 기발하다고 생각했다. 친구와 대화하다가 뱃가죽이 찢어지게 웃다가 눈물을 찔끔 흘린 적도 몇 번 있었다. 친구는 결국 목표한 대학에 진학했다. 고등학교 3년간의 수험생활은 보란 듯이 빛을 발했고 다른 이들 모두가 '충분히 받을 만한' 대가였다고 입을 모아 칭찬했다.



고대하던 20대의 반열에 오른 우리에게는 이런저런 일들이 참 많았다. 새로운 공부를 시작하고, 새로운 친구들이 생기고, 연애를 하고, 헤어지고, 때로는 상실감에 영영 헤어 나오지 못할 것만 같은 날들도 있었으며 함께 여행을 가기도 했다.



나의 첫 연애가 끝이 나버린 그날 밤, 나는 친구에게 "나 헤어졌어"라는 짤막한 문자를 했고, 그녀는 내게 바로 전화를 걸어 자신의 집으로 오라고 했다. 첫 이별을 겪고야 말아버린 내 상실감을 바로 옆에서 보듬어 주기 위한 마음에서였다. 그 전화를 끊자마자 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막차를 잡아 타고는 상수역의 그녀 집으로 갔다. 근처 술집에서 새벽까지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첫 헤어짐 앞에서 방황하는 나를, 그녀는 그녀만의 방식으로 위로했다. 친구는 늘 그랬듯이 실없는 농담으로 나를 웃게 했고, 나는 진지하고도 가벼운 기류 사이를 넘나드는 우리의 대화가 좋았다. 나는 세상에서 제일 슬픈 사람이 된 것만 같다가도, 어쩌면 그렇게 슬퍼하기만 할 일도 아니라는 생각에 조금은 마음이 놓이기도 했다.



그때밖에 할 수 없는 행동들이었다. 많은 것들이 불안정하고 충동적이었던 시기였던 스무 살, 스물한 살. 우리는 서로의 이별이나 아픔에 대해서 종종 공유했고 그 공유의 시간은 공유를 넘어 때로는 아픔을 치유하기도, 더 나은 방향의 나로 살아갈 수 있게 하는 힘이 되기도 했다.



그런 그녀와 내가 결혼하고 싶은 사람을 만나 가정을 이루고, 서로의 행복을 진심으로 빌어주었다. 독일에서 생활하게 되어 내 결혼식에 참석할 수 없게 된 친구는 축하의 뜻으로 청첩장을 직접 디자인해서 만들어주었다. 청첩장 샘플을 받아놓고 마음에 드는 게 없어 고민하던 나에게 그 어느 것보다 특별한 선물이었다. 먼저 제안해준 그 마음이 고맙고 따뜻해서 어쩌면 평생 잊을 수 없을 것만 같다. 세상에 단 하나뿐인 우리만의 청첩장. 사람들에게 수줍게 청첩장을 내밀며 결혼 소식을 알리면서도 얼마나 자랑스러웠는지 모른다.



"이거 내 친구가 만든 거예요. 예쁘죠!"

마음속에서는 이렇게 외치고 있었다.






그런 그녀가 서울에서 첫 개인 전시회를 열었다. 친구가 자랑스러운 마음에 아기와 남편과 함께 먼 걸음을 해서 마음을 전했다. 나는 '이미 축하를 했지만, 더 축하해주고 싶어서 아쉬운 마음'이 들었고, 그 마음이 이 글을 쓰게 했다. 쉽지 않은 마음이기 때문이다. 아무런 기대나 시기나 질투 없이 상대를 축하할 수 있는 마음은 귀하다. 오로지 상대를 향한 애정과 사랑의 마음만을 앞세울 수 있는 축하는 많지 않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이 글을 씀으로써 축하의 메시지를 한번 더 전하고 싶었다. 이게 내가 할 수 있는 (지금으로서는) 유일한 방법이 아닐까 하는 마음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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