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해니 Nov 21. 2020

당신은 어떤 안경을 쓰고 있나요

'나'를 색안경 속에 가두고 있는 것은 아닌지

10살 무렵이었던 것 같다. 어린 나는 안경이 그렇게 쓰고 싶었다. 안경을 쓰고 있는 사람이라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유심히 쳐다보았다. 어른의 모습과 닮았다고 생각해서였을까. 그 나이 때 아이의 고집을 꺾기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우연히 들른 안경점에서 시력검사를 했고, 나는 실제로 보이는 것보다 괜히 말을 버벅거렸다. 그렇게 내 첫 안경을 손에 넣었다. 보통의 시력보다 조금 안 좋았던 시력은, 해가 지나면서 급격히 나빠졌다. 주기적으로 안경점에 갈 때마다 도수 조정을 해야 한다는 소리를 들었다. 괜한 호기심에 취했다가 빼도 박도 못하는 상황이 되어 버린 것이다. 그 후로 안경 없는 내 10대는 생각할 수 없는 것이 되었다.  난시가 심해졌고, 안경알을 두 번, 세 번 압축하면서 고도의 기술이 들어간 안경을 써야만 했다.



추운 겨울밖에 있다가 따뜻한 실내로 들어왔을 때 순식간에 뿌예지는 시야,

발이 달렸는지 아무리 챙겨도 없어지는 안경닦이,

은밀하지만 당당하게 존재감을 드러내던 안경 코 자국,


사소한 불편함들이 일상의 당연한 것이 되어갔다.




 


나 어때? 어울리는 것 같아?

여러 개의 안경을 몇 번이고 바꿔 껴보면서 안경테도 주기적으로 바꾸었다. 무난한 검은색 테가 지겨워질 즈음에는 붉은색 테를 고르기도, 초록색 테를 고르기도 했다. 남들이 잘 시도하지 않는 컬러풀한 테를 고른 것이 한몫했는지, 친구들이 나를 떠올릴 때 가장 두드러지게 기억하던 내 외적인 모습은 "안경을 쓴 나"였다.



안경은 점점 내 몸의 일부가 되어갔다. 그것은 마치 몸 밖에 나와 있는 신체 기관과도 같아서, 안경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이 되었다. 안경이 있어야 세상을 볼 수 있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제일 먼저 하는 일은 손을 더듬더듬 거리는 일. 안경을 찾는 일이었다. 늘 침대 머리맡에 안경을 놓고 자고는 했는데, 가끔 다른 곳에 두어서 안경을 찾아야 하는 경우에는 한참을 헤매야 했다. 1미터 반경 안에 있던 안경을 비틀비틀 거리며 여기저기 부딪히고 나서야 겨우 찾을 수 있었다 (못 찾을 때는 큰 소리로 가족들을 불러내어 도움을 요청했다). 해가 다르게 곤두박질치는 시력 때문 에라도 안경의 쓸모가 점점 커지던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엄마와 동생, 그리고 나는 주말마다 목욕탕에 자주 갔다. 탕 안에 들어가기 전에, 내가 제일 마지막으로 하던 고민이 있었다. 안경을 쓰고 갈까? 말까? 목욕탕 안에서 안경을 쓰면 몇 초가 멀다 하고 계속해서 시야가 뿌예졌다. 수시로 안경을 닦고 챙겨야 할바에야 차라리 안 쓰는 게 낫지 않을까 생각서 안경을 아예 쓰지 않고 들어가기도 했다. 안경 없이 목욕탕 안으로 들어갈 때에는, 동생이 내 눈 역할을 해주었다. 목욕탕 안에는 은근히 작은 턱들이 많이 있어서 조금이라도 발을 헛디디면 위험할 수 있었다. 게다가 24시간 물이 흥건한 곳이니 말이다.


세 모녀는 나란히 앉아서 서로의 때를 밀어주었다. 엄마가 내 등에 물을 끼얹을 때, 나는 동생의 등에 물을 끼얹었다. 우리가 나란히 앉아있을 때 동생이 나에게 했던 말이 있었다.


"언니는 안경 벗으면 진짜 다른 사람 될 걸. 안경 쓰고 있을 때랑 진짜 달라."


두세 번 압축한 안경을 쓰면 눈이 큰 사람도 단춧구멍 눈처럼 작아지곤 한다. 인상이 완전히 달라진다. 동생이 일러주던 내 눈은, 그동안 내가 인식하고 있던 것과 완전히 달랐다. 당시 많은 또래들이 원했던 쌍꺼풀을 가지고는 있었지만 객관적으로 예쁜 쌍꺼풀이 아니었다. 여러 겹으로 층층이 쌓인 쌍꺼풀이었으며 왼쪽과 오른쪽의 짝이 맞지 않아 부자연스러운 모양이었다. 어떤 날에는 쌍꺼풀이 있느니만 못한 것이 아닐까 하고 풀이 죽기도 했었다. 나는 안경 뒤에 숨어있기를 자처했던 여린 학생일 뿐이었다.


"에이 됐어."


"아니야 진짜 내 말이 맞아." 


갑자기 훅 치고 들어온 칭찬의 말에 늘 그랬듯 반사적으로 방패를 쳐댔다. 하지만 동생의 그 말은 내게 왠지 모를 위안을 주었고, 안경을 거둬낸 나의 모습이 내가 알던 것보다 더 매력적일 수도 있겠다는 묘한 자신이 생겨났다. 내가 콤플렉스라고만 생각해오던 것을 나의 강점이라고 치환해준 것이 고마웠다. 그것이 진심이었든 여린 언니의 기분을 헤아리던 착한 동생의 위로였든, 믿고 싶었다. 안경을 벗고도 내가 나일 수 있는 거구나. 처음 느꼈던 순간이었다.




스무 살이 되고 라섹을 했다. 안경이나 렌즈 없이 내 눈으로 세상을 보는 것이 신기했다. 누군가에게는 당연한 것이, 나에게는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아이의 눈처럼 모든 순간이 반짝반짝 빛났다. 지울 없는 문신과도 같던 안경을 내려놓고 나서야 내 모습이 보였다. 


나는 틈날 때마다 거울 속의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곤 했다. 마치 낯선 장소에서 타인을 듯이, 눈썹, 눈, 코, 입, 그리고 눈빛.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을 곳에서 조용히 내 모습을 응시했다. 그제야 내가 어떻게 생긴 사람인지, 어떤 눈빛을 가진 사람인지 보였다. 그동안 나는 나를 얼마나 몰랐던 것인가...... 자조하다가도, 이렇게나 새롭고 자유로울 있는 앞에서 행복했다.


단지 외적으로 예쁘고 멋있어서가 아니었다. 여전히 내 눈은 짝짝이 쌍꺼풀이었다. 안경 뒤에서 조연의 역할만 하던 내 눈은 갑자기 주연이 되면서 적잖이 당황했을 것이다. 코, 입, 얼굴형과도 마냥 조화로워 보이지만은 않았다. 어색한 면이 분명히 있었고 적응의 시간이 필요했다. 그렇지만 나를 두텁게 둘러싸고 있던 안경에서 자유로워졌다는 사실 자체만으로 충분했다. 진짜 내 모습을 마음껏 누릴 생각에만 집중할 뿐이었다.






세상의 여러 안경들이 있을 것이다. 저마다의 안경. 의심의 여지없이 그 모습이 나인 줄 알았는데, 들춰보니 그것은 내가 스스로 씌운 색안경에 불과했던 그 안경 말이다. 세상의 여러 면면들을 제대로 아는 눈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내가 나를 있는 눈이다. 내가 나를 제대로 없다면 세상의 것들에 정통하다한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와 다를게 무어냐고.


'있는 그대로의 나'를 무조건적으로 사랑하자는 것이 아니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제대로 바라볼 알아야 깨달음이 있고 발전이 있다. 우리는 우리가 추구하는 그곳이 어디든, 계속해서 도약하고자 하는 존재니까 말이다.


나조차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을 부정하며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오늘도 자문해본다.


작가의 이전글 엄마를 누가 말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