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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해니 Nov 25. 2020

진짜 멋쟁이가 누구냐면요

오늘의 가치를 아는 당신이 제일 멋지다

나의 모든 시선과 관심이 타인을 향하던 때가 있었다. 내 안에서 맴도는 목소리에 귀 기울여 보려는 노력보다 남에게 비치는 나, 남이 생각하는 내 모습이 더 중요했다. 언제부터 그랬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내가 이것이 문제라는 것을 처음 자각한 것은 20대가 들어서였고, 내가 이렇게 살아온 지 꽤 되었다는 추측만 있었을 뿐이었다. 내가 이 문제를 10대 때 마주했다면 어떻게 반응했을까? '나는 질풍노도의 10대니까 조금 예민할 수도 있지.'라며 둘러댔을까. 이미 20대가 되어버린 나는 딱히 둘러댈 변명도 없었고, 그렇다고 누군가 나를 변호해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타인의 기분이 상하지 않게 최대한 살피고, 분쟁의 여지를 만들지 않는 것이 습관인 삶.


이런 삶을 배려심이 특출 나게 좋은, 이타적인 사람이라고 치켜세울 수 있는 것일까? 




'내가 나에 대해서 하나도 모르는 사람이었다'는 것을 자각했던 특정 경험이 있다. 대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일 때, 한 교양과목에서 몇 가지의 심리/성격검사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내 결과지를 보면서 심리상담사의 해설과 그의 조언을 들을 수 있는 프로그램이었다. 결과지 작성을 마치고, 나는 상담사의 입에서 뜻밖의 말을 들었다.


"그래프가 각 영역별로 골고루 발달해 있어서 좋기는 한데, 비율이 다 너무 비슷하네요. 쉽게 이야기해서, 이렇다 할 특징이 없어 보여요. 다 고만고만하다고 해야 할까요?"


(...)


"테스트지 상으로는 그런 것 같아 보이기도 해서요."



예상치 못한 상담사의 코멘트에 나는 그대로 얼어붙었다.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다. 상. 대. 가. 나를 바라보기에 내가 바람직한 사람인지 혹은 우스워 보이지는 않는지 끊임없이 의식하며 살았기 때문이다. 그 속에서 내 생각이나 의견은 자주 묵살되거나 후순위로 밀렸다. 검사 문항은 한결같이 '당신은 어떤 사람인가요'에 대해서 묻고 있었지만, 나는 결과지에 마킹하는  그 순간에도 '좋은 사람으로 보여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던 것 같다.



그 경험으로 나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싶었다. 이제는 알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무엇을 좋아하고 가슴이 뛰는 사람인지. 나는 어떤 순간에 슬프고 불편한 사람인지 말이다. 더 이상 내 옆에 앉은 명문대 출신에 돈 걱정 없이 매일을 사는 또래를 보며 멋있고 부럽다고 말할 게 아니라, 나는 내 인생의 어엿한 주연으로서 나 자신에게 집중해 보고 싶었다. 가만히 들어보고 싶었다.




어떤 인생도 같지 않다. 개인의 인생은 제 각기 다른 드라마이고 영화여서 일반화할 수 있는 것이 많지 않지만,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분명한 사실 3가지가 떠올랐다.


첫째. 그 어떤 사람도 행복한 일만, 그 어떤 사람도 불행한 일만 있지 않다.
둘째. 우리는 '시간' 앞에 모두 공평하다.
셋째. 누구나 언젠가는 죽는다.


한정된 시간 안에서 언젠가는 지금 내가 누리는 것들을 뒤로하고 모두와 이별한다. 어느 누구도 예외는 없다. 수많은 고층빌딩과 부동산을 소유한 재력가라고 해서 눈 감기 마지막 1시간을 돈 주고 살 수 있다거나, 평생 치열하게 부를 쫓기만 하던 사람에게 동정 어린 1시간이 생기는 일은 없다. 누구나 저마다의 삶 안에서 기쁨이 있고 슬픔이 있고 외로움이 있고 희망이 있다.


더 이상의 비교나 타인의 시선이 의미 없게 느껴졌다. 물론 이렇게 느꼈다고 해서 내 삶에서 일말의 비교나 인정 욕구가 남아 있지 않다고 할 수 없지만 한 가지는 말할 수 있다. 나는 나의 오늘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오늘'을 살아내는데 집중하고 있다는 것이다. 주기적으로 글을 쓰려 노력하고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진짜 멋쟁이는 그저 묵묵히 '오늘의 나'를 사는 사람이다. 다이내믹한 인생의 한 방이나 눈이 번쩍이는 화려함을 갈망하기보다 '오늘의 가치'를 아는 사람이다. 그리고 오늘의 나와 가치를 중요하게 여기는 만큼, 타인의 오늘도 귀하게 여길 줄 아는 사람이다.


그 오늘이 모여서 그 사람만의 아우라가 생기는 것이다. 그 사람만의 눈빛이 생기는 것이다. '오늘의 가치를 안다'는 것은 내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 다정한 눈길을 보낼 수 있는 사람이 된다는 말이기도 하고, 나의 부족함을 인정할 수 있는 사람이 된다는 말이기도 하다. 나만의 세계에 갇혀있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사람 말이다. 타인과 나를 적절히 섞는 연습을 게을리하지 않는 사람은 줏대 없음과는 확실히 구분된다. 또한 내 감정에 인색하지 않은 사람이 된다는 말이기도 하다. 슬프면 슬프다고 말하거나 (적어도 깨닫거나) 울 줄 알고, 사랑하면 사랑한다고 마음을 표현할 줄 아는 사람이기도 할 것이다.




각자에게 주어진 오늘을 소중하게 여기고 묵묵히 살아내는 모든 사람들을 존경한다.


그리고 진짜 멋지다 당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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