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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해니 Dec 31. 2021

모국어는 차라리 침묵

올 해의 마지막 책

'모국어는 차라리 침묵'이다...라는 문장 앞에서 나는 멈춰 섰다. 이게 무슨 말인가 싶어 목차라도 넘겨볼 요량으로 책을 집어 들었지만 책은 비닐로 꽁꽁 감싸 져 있었다. 가끔 서점에 가면 이런 책들이 있다. 단정하고 도도한 자세로 다른 책들과의 다름을 말하고 있는 책들. 이런 책들을 보면 자기애가 넘치는 사람들이 떠올랐다. 나의 다름을 온몸으로 말하고 있는 사람들. 굳이 크게 떠벌리거나 입소문을 낼 필요 없이, '나는 내 이야기가 있어'라고 침착하지만 또박또박 말하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의 목소리는 크지 않지만 분명 사람들을 끌어당기는 힘이 있다. 저 사람은 무슨 이야기를 품고 있을까 묻지 않고서는 못 참겠는 구석이 있는 것이다.


'모국어는 차라리 침묵'. 이 책의 눈동자와도 같던 제목만을 가만히 쳐다보면서 집까지 데려왔다. 작가가 말하는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한 편의 공연을 관람하고 있는 기분이 든다. 모호한 안갯속, 춤추고 있는 사람, 움직임, 소리, 공명, 흐릿함 이런 것들이 시각화된다. 분량이 긴 시 같기도 하고 추모의 글 같기도 하다가 종래에는 인정하게 되는 것. 아 이것도 결국 사랑에 대한 이야기구나.


한 해의 마지막으로서 더할 나위 없는 책이었다. 올 해의 첫 책은 시와 산책 그리고 마지막 책은 모국어는 차라리 침묵. 이것만으로도 나는 마음이 조금 든든해졌다. 더 이상 뭘 바라겠어. 이렇게 새해는 시작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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