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로서의 나'는 태어나 처음인 나. 모든 것이 맨땅에 헤딩이다. 아이가 세상 밖으로 나오고 난 후, 아이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내가 직접 알아보고 구매한다.기저귀, 물컵, 실내복, 외출복, 목욕가운, 로션, 오일, 책 등등 나의 손이 닿지 않은 것이 없다.
초보 엄마인 나는, 월령별 아이의 특징이나 해당 아이들이 어떤 것을 가지고 노는지 자주 검색했다. 주로'생후 6개월 아기' 혹은 '생후 6개월 아기 놀이' 이런 식으로 말이다.
sns에서는 하루에도 여러 개의 장난감과 교구들의 포스팅을 볼 수 있었다. 얼마나 기가 막히게 지금 내 아이에게 꼭 필요할 것만 같은 것들이 올라오는지. 촉감 발달에 좋은 촉감놀이 세트, 소근육 발달을 돕는 장난감, 대근육 발달을 돕는 장난감 등 시기별로 아이에게 필요해 보이는 글들이 많았다. 그리고 그런 줄만 알았다.
'국민 템'이라고 불리는것들을 몇 개 구매했다가 몇 번 실패한 이후로는, 아이가 무엇을 할 때 몰입하고 즐거워하는지 관찰했다. 이런저런 플라스틱 장난감을 구매하는 대신 말이다.
그러다 종종 놀라운 순간들이 있었는데, 아이는 집 안에 있는 물건들을 자유자재로 놀잇감으로 전환시키곤 했다는 것이다. 플라스틱 장난감을 구매하는 빈도수는 현저하게 낮아졌지만 아이가 주도해서 재밌는 놀이로 이어지는 경우는 훨씬 많아졌다. '장난감이 너무 없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려는 찰나 아기는 또 새로운 놀이를 만들어 냈다. 장난감 자체에 집착하는 대신 집에 있는 냄비, 끈, 담요, 인형등으로 자신만의 놀이를 창조해냈다.
아이가 쓰는 담요 밑에 좋아하는 인형을 숨겨놓고 찾는 놀이라든지 (진짜 어디 있는지 모르겠다는 엄마의 생동감 있는 연기 중요), 벽이나 문 뒤에 숨어서 까꿍놀이를 한다든지, 끈 하나를 가지고 인형의 머리 위에 올려놓거나 내 머리 위에 올려놓고 배꼽 빠지게 깔깔깔 웃으며 놀기도 한다.
마감이 잘 된 그럴듯한 장난감이 필요한 게 아니었다. 중요한 것은 늘 아이와 내가 함께했다는 것이다. 이미 다 자라서 굳어버린 내 머릿속에서는 생각하기 어려운 놀이들이었다. 아이 자체야 말로 놀이의 천재였던 것이다.
이렇게 아이의 놀이에 집중해서 함께 놀 때는 그 어떤 장난감을 가지고 놀 때보다 반짝이는 웃음을 볼 수 있다. 나는 지금껏 본 적 없던 환한 미소다.그 웃음을 보고 있자면 이 세상에서 더 이상 바랄 게 없을 것만 같은 느낌까지 든다.
웃는 모습을 담아두려 급하게 사진을 찍기도 하지만, 화면 밖 실제로 웃는 아이의 모습을 담기에는 한없이 부족하다. 실제로 화면 안의 아이 모습과 화면 밖 아이의 모습을 번갈아 쳐다보다가 넋을 잃고 아이가 웃는 모습에 그대로 빠져버리고 마는 순간이 허다하다. 아무리 기술이 발달해도 아이들의 웃음을 실제와 똑같이 담을 수 있는 기계는 나올 수 없을 것이다.
물론 내 아이의 관심사에 부합하고, 충분히 아이가 호기심을 느낄만한 장난감이 있으면 구매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적어도 나는 예전처럼, 다른 아이들이 갖고 있는 장난감들을 우리 아이도 가지고 놀아야 한다는 강박에서는 자유로워졌다.
아이는 '사람' 혹은 '자연'과 노는 것이지, 장난감과 노는 것이 아니었다. 장난감은 사람과의 상호작용이 가능한 놀이를 할 수 있는 '도구'에 지나지 않는 것. 놀이의 매개체일 뿐인 것이다. 아쉽지만 지금은 코로나 바이러스로 자연의 몫은 뒤로 미루어야 할 때. 그렇다면 가장 좋은 놀잇감은 사람이다. 엄마고 아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