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 안에서는 정말 많은 일들이 일어난다. 만나고, 기다리고, 버림받고, 싸우고, 화해하고, 동경하고, 증오한다.
용서하고, 동정하고, 미워하고, 체념하고, 사랑하고, 사랑받고, 떠나가고, 죽는다.
사람 사는 일이 행복한 일만 있는 것은 아니어서, 하루하루를 '살아내야 하는' 날이 많아질수록 내 인생이 한 편의 영화라는 사실을 망각한다.
살아내는 것은 지난한 일 아닌가. 당장 눈 앞의 것들을 마주하는 것조차 사치일 때. 평범한 일상이 한순간 '남의 일'이 되는 때는 어김없이 찾아온다. 나는 아무것도 아닌 것만 같고, 아무것도 아니었던 것만 같고, 또 아무것도 아닐 것만 같은 느낌에 무기력해지고 스스로 고독을 자처한다. 그럴 때 나는 생각을 멈추고 과거의 나를 찾는다. 그것은 짧은 일기일 수도, 단어일 수도, 몇 단락의 글일 수도 있다. 썼던 글을 들춰보는 것은 이상한 힘이 있다. 글도 시간이 지나면서 성숙되는 것일까, 글을 썼던 처음과는 다르게 읽힌다. 다른 맛이 난다.
글로 남긴 것들은 3차원의 영역에 있다. 육안으로는 종이나 화면 안에 새겨진 글자에 지나지 않지만 조금만 들여다보면 형형색색의 색들로 점철되어 눈 앞에서 생생하게 살아 움직인다. 가장 정적이기도 하고 동시에 가장 동적이기도 한 것이다.
과거의 순간들은 순간에만 머물지 않는다. 순간들은 글로 쓰임과 동시에 영원의 날개를 다는 것과 같아서, 때로는 현재의 나를 '살아가게' 하기도 한다. 이 세상 어디에도 없는 강력한 영양제인 것이다. 순간을 붙잡아 둘 수 있는 유일한 무기야 말로 글을 쓰는 것이 아닐지.
30대 초반의 나. 아직은 많은 것들을 머리로 기억할 수 있다고 자신할 수도 있지만 10년, 20년, 30년 후는 과연 어떨까? 오직 '내가 쓴 것'만 기억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많은 것들을 추억하고 싶다. 끄집어낼 것이 많은 사람으로 나이 들고 싶다. 적기 적시에 과거의 글로 내 추억을 끌어다 현재에 알맞게 녹여내어 삶의 원동력으로 쓸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