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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일라 Jul 27. 2020

상처에 대한 예의

pm 16:15

오른쪽 팔에 조르륵 오른 흉터는 조금씩 짙어지고 있었다.

날씨가 차가운 날엔 긴팔로 가리면 일상생활에 전혀 지장이 없었지만 날이 따뜻해지고 옷의 팔이 짧아질수록 신경은 집중되었다.

평소엔 조금 짙은 빨간색 정도의 흉터가 몸의 온도가 올라가면 그 색깔이 조금씩 짙어져 그 색깔은 검붉게  변해갔다.

팔목을 시작으로 등에 이르기까지 흉터는 얼룩덜룩 내 오른쪽 몸을 점령해버렸다.

아마도 기억이 맞다면 처음 아주 연하게 올라온 흉터 혹은 흔적을 발견한 건 고등학교 2학년 되던 해였던 것 같다.

부위가 크지 않았고 색깔이 피부색과 별반 다르지 않아서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고 혹시나 싶어 엄마에게도 보여주었지만 엄마도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그때라도 병원에 갔다면 지금쯤 내 팔은 말끔해졌을까.


‘치료’라는 것을 해야겠단 생각을 하지 못했다.

얼룩덜룩 덮인 흔적들에서 어떤 증상, 예를 들면 가려움이라든가 부어오름이라든가 같은, 도 느끼지 못했고 그저 내 피부색보다 조금 짙게 자리 잡은 것들이 언젠간 사라지지 않을까 막연히 생각했다.

그러다 우연히 티브이 프로그램에서 병명을 알게 되었다.

그저 두드러기쯤으로 생각했던 팔의 흔적들은 ‘화염상 모반’이라는 것이었다.

그 질병에 유명하다는 피부과 의사가 나와 질병의 원인과 치료 방법 등에 대해 간단히(병원 홍보가 아니었을까 싶다) 설명해 주었다.

마음이 덜컹했다.

저절로 없어지지 않을 테고 어쩌면 그 색깔이 더 짙어져 종국엔 완전히 새까맣게 변하는 것이 아닐까 같은 공포가 밀려왔다.

방송사 홈페이지를 급하게 찾아들어가 방금 그 의사의 병원을 메모하고 당장 전화를 걸었다.

약 한 달 뒤쯤으로 예약을 잡았다.

신기한 일이었다.

지금까지 조금 불편하거나 조금 신경 쓰이는 정도 그것도 사계절 중 여름 그 한 계절에만 느끼던 가벼운 감정들이 참을 수 없는 불안으로 탈바꿈했다.


무언가를 기다리는 한 달의 시간은 깨나 길었다.

병원은 공덕에 있었다. 아침부터 분주하게 좌석버스를 타고 지하철을 갈아타고 병원에 도착했고, 병원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조금 놀랐는데, 내가 소아과에 잘못 왔나 싶을 정도로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이 모두 아기와 아기의 엄마들이었기 때문에.

접수를 하고 아기와 아기 엄마들 틈에 앉아있으니 자연스럽게 맞은편, 옆의 아기들에게 눈이 갔다.

어떤 아기는 얼굴에, 어떤 아기는 나처럼 팔에, 어떤 아기는 한쪽 다리에 온통 빨간 흔적들이 얼룩덜룩 덮여 있었다.

여린 아기 피부만큼이나 맑은 빨강의 흔적들이.

또 한 번 생각나는 그때. 엄마가 그때라도 날 병원에 데려갔으면 지금쯤 내 팔은 말끔해졌을까.


내 차례가 되었고 진료실로 들어서니 방송에서 본 의사가 매우 사무적인 표정으로 눈도 마주치지 않은 채 인사를 건네 왔다.

오른쪽 팔목에서 시작해 얼룩덜룩 덮여 있는 나의 흔적을 보고는 이미 시간이 오래 지났고 그래서 색깔이 짙어졌다, 하지만 다른 증상이 있거나 더 커지진 않을 거다, 색깔은 조금 더 짙어질 수 있다, 피부 바로 밑에 피가 고여있는 거다, 치료는 레이저로 가능하다, 이 정도 색깔이면 최소 10회 이상은 해야 한다, 전체를 다 하는 건 비용도 너무 많이 들고 권하지 않는다, 다만 반팔을 기준으로 팔이 보이는 곳은 보험 적용을 받을 수 있다, 본인이 판단해서 할지 말 지 정하면 된다가 끝이었다.

그리고 마지막 말을 덧붙였다.

‘엄마가 관심 있게 봤으면 이 지경까지 안 뒀을 텐데요.’


보험적용을 받아 팔이 보이는 부분에라도 치료를 받을까 잠시 고민했지만 의사의 마지막 말에 진찰비만 내고 서둘러 병원에서 나왔다.

오른쪽 팔을 덮은 흔적들이 마치 내가 엄마에게 유기라도 된 것 같은 절망감에 빠졌고, 자신도 어쩌지 못하는 사람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제 피와 살을 섞어 만든 나를 방치했다는 엄마에 대한 원망이 나를 비집고 들어왔다.

일부러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병원에 가는 일을 알고 있던 엄마는 결과를 물었고, 의사가 사무적으로 나에게 던진 내용들과 마지막 말을 일부러 덧붙여 전했다.

전화기 너머 엄마가 싶은 숨을 쉬는 것이 느껴졌다. 치료를 받으라는 엄마의 말에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뭐하러.”


*

여전히 크게 불편을 느끼지 않고 생활하고 있다. 여름을 제외하곤.

여름의 불편함도 여름이라서, 어떤 증상으로 불편하다기보다 사람들의 시선이 불편한 것을 제외하면 ‘난, 괜찮다.’

타인에게 옮기는 것도 아니고 내가 아픈 것도 아닌데 지레 전염 피부병으로 치부받는 일을 몇 번 겪으면서 타인의 상처에 대한 생각이 깊어지기도 한다.

사람들, 게다가 친하지도 않은 사람들이 걱정이라도 하는 듯 내 팔의 흔적을 가리키며 ‘어머 왜 그래요? 아프진 않아요?’ 같은 말을 건네 올 때 적잖이 당황하게 된다.

피부 밑에 피가 고여있을 뿐이고 아프지 않고 하물며 옮기는 병도 아니에요.라고 물어올 때마다 대답할 수 없으니 ‘괜찮아요.’ 정도로 말을 끝내버리곤 했다.

한여름에 긴팔을 입고 숨기고 가리고 다니던 때도 있었지만 어느 순간 ‘내가 왜?’ 같은 부아가 올라서 이제는 그냥, 아무 옷이나 입고 다닌다.

사람들의 시선 혹은 나를 향한 걱정으로 포장했지만 사실은 자기들의 가십 같은 궁금함을 해결하기 위해 무례하게 던져오는 질문들이 들려올 때면 이제는 나도 되묻는다.

‘당신 얼굴에 난 그 여드름은 얼마나 아파요? 괜찮아요?’


타인을 함부로 걱정하는 것은 실례다.

진심으로 누군가가 걱정된다면 기다려 주는 것이 예의다. 기다려도 얘기가 들려오지 않는다면 누군가는 잘, 견뎌내고 있거나 혹은 완전한 일상이 되었단 뜻일 테니 지레짐작으로 그저 궁금해서 던지는 걱정 따위는 접어두시라고.



pm 17:15

매끈한 팔에 예쁜 민소매를 입은 사람들을 보면 부러워지는 건 어쩔 수 었지만요-

로또 되면 레이저부터 할 것이라고 다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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