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선택
그동안 제주도를 열 번도 넘게 오가며
늘 마음속에 하나의 소망이 자라났다.
‘언젠가, 이 섬에 살아보면 좋겠다.’
그건 막연한 바람이었고
현실로 옮겨오기엔 너무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해마다 성수기에 오르던 숙박비와 항공료.
그 비용이면 몇 달은 이곳에서 머물 수 있었을 것이다.
그 단순한 계산에서 시작된 꿈은
결국 한 번쯤이라는 가능성을 밀어내고
지금이 아니면 안 되겠다는 결심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지금,
나는 제주살이 두 번째 주말을 보내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실감이 나지 않는다.
햇살 가득한 아침마다 들려오는 새소리,
마당을 지나며 마주치는 바람의 결,
늘 곁에 있는 숲과 바다.
이 모든 게 너무 자연스러워 낯설고,
너무 평화로워 여전히 꿈을 꾸는 듯하다.
제주에 온 가장 큰 이유는 결국 아이들이었다.
무언가를 가르치기보다 스스로 느끼게 해 주고
싶었다.
행복했던 유년의 기억,
자연을 친구 삼아 맘껏 뛰놀던 순간들이
아이들 마음 깊은 곳에 오래도록 남기를 바랐다.
이 선택이 아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줄까
두려웠지만 다행히 그건 기우였다.
제주에 오기 전 “우리 제주에서 한 번 살아볼까?"
라는 내 물음에 아이들은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만큼 아니, 나보다 더 제주를 사랑던 아이들이었다.
제주 학교로 전학한 지 일주일 남짓.
아이들은 매일, 학교 이야기를 끝없이 들려준다.
도시에서는 “오늘 어땠어?”라는 질문에
“그냥…”으로 끝났던 대화가 이곳에선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이야기가 쏟아진다.
선생님들은 편안하고 따뜻했고
아이들의 표정은 밝고 생기 있었다.
도시에서 보지 못했던 웃음들이
이곳에서는 일상이었다.
무엇보다 감동적인 건 읍에서 지원하는 방과 후 프로그램이 모두 무료라는 점이었다.
농구, 승마, 댄스, 놀이체육, 컴퓨터 수업까지—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아
“엄마, 이 수업도 해볼래!” 하고 눈을 반짝이는 아이들을 보며 나는 속으로 몇 번이나 울컥했다.
도시에서의 일상은
학교, 학원, 집의 반복이었다.
정작 친구들과 놀 시간도 없었고
학교가 끝나도 아이들은
모두 다음 수업으로 향해야 했다.
아무리 성실한 아이도, 잘 웃던 아이도
점점 지치고 예민해졌다.
그게 도시에서의 평범한 일상이었다.
"왜 우리는, 우리도 모르는 미래를 아이들에게
함부로 안내할까요? 심지어 철 지난 방식으로
앞다퉈 선행시킬까요? 왜 그러느라 부모도 아이도 소중한 하루를 불행하게 보낼까요?"
내 육아는 목표는 '좋은 대학'이 아니다.
대학은 목표가 아닌 수단으로 사교육비를 줄이고,
아이들에게 충분한 사랑을 주고 인성의 빈 곳을
메워주는 엄마의 역할을 해줄 것이다. 아이들이
강요아래 수동적으로 공부하는 게 아니라 매사
능동적으로 적성과 진로를 찾아 움직이도록
응원하는 일, 이것이 참된 부모의 역할이라 생각한다.
제주에 와서 아이들을
학교에서 다양한 수업을 마친 후,
우리는 종종 바다로 향한다.
차로 10분이면 닿는 이름 모를 해변.
아이들은 신발을 벗고 모래를 밟고 웃으며
수영복도 안 입은 채 바다에 풍덩한다.
저녁이면 함께 텃밭에 물을 주고
마당에서 농구도 하고
배드민턴으로 웃음을 나눈다.
이 느긋한 하루는 어느 학원보다
어느 교과서보다도
더 많은 것을 아이들에게 가르쳐주고 있다.
나는 믿는다.
지식보다 더 오래가는 건 기억이고 감정이며
나를 사랑해 주는 사람과 함께한 시간이라는 걸.
세상이 원하는 똑똑한 아이보다는
스스로를 사랑할 줄 알고 삶을 좋아하게 되는
행복한 아이로 자라나길 바라는 마음.
그 마음 하나로 우리는 제주에 왔다.
입시육아의 올가미에서 벗어나 무한한 자유와
가능성으로 어느 길로 가든 세상에서 잘 살 수
있는 기본연료를 공급해 주면 아이들은 어딜 가든,
무얼 하든 모두 스스로 결정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지금 나의 선택은 옳았다고
바람이 속삭이듯 마음이 말한다.
조금은 서툴러도, 아직은 불완전해도
이 길의 시작이 분명히 빛을 향하고 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