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만 되면 설렌다”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지만
나에게 주말은 종종 폭풍 전야였다.
왜냐고?
우리 집에는 주말만 되면 어딘가로 떠나야 직성이 풀리는 남편이 있었기 때문이다.
금요일 밤이면
“우리 다음 주말엔 어디 가볼까?” 하고
아이들에게 은근슬쩍 약속부터 해버리는 남편.
주말마다 캠핑을 가고 당일치기 장거리 여행,
시즌별 액티비티를 즐겼던 우리,
아이들과 함께한 시간만큼은 남 부럽지 않았다.
지인들은 자주 말했다.
“와, 남편이 진짜 자상하다.”
“주말마다 아이들이랑 놀아주다니 대단하다.”
물론 맞는 말이었다.
하지만 늘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
주말이 가까워지면
남편은 마치 여행 기획자처럼 다음 행선지를 정했고
아이들과 약속을 잡았고
나는 그 주말을 준비하느라
냉장고를 채우고 도시락을 싸고 옷을 챙겼다.
내게 주말은 기대보다 의무가 먼저 찾아오는
날이 되었다.
비 오는 날에도 캠핑을 강행하던 남편,
한겨울에도 3~4시간 운전해 스키장을 가자던 남편,
그 모든 게 한때는 좋았다. 마흔 되기 전까지는.
몇 년 전 육아 번아웃이 심하게 찾아오면서
“나는 주말에 좀 쉬고 싶다”는 말이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함께 있으면 꼴 보기 싫을 때가 더 많았고
사소한 말투 하나에도 내가 예민해지고
주말이면 또 어디 가자고 성화인 그 사람에게
"좀 쉬자"라고 말하면 결국 내가 더 피곤해지는 구조였다.
“주말엔 같이 쉬자고 한 건데, 왜 나만 더 힘들어지지?”
그 물음이 쌓이자, 나는 어느샌가 말이 줄었다.
아무리 이야기해도 바뀌지 않을 거라는 체념이
내 입을, 내 마음을 닫아버렸다.
그렇게 서서히 나를 잃어가던 어느 날,
나는 문득 깨달았다. 누군가를 탓하기보다
이제는 나를 살펴야 할 때라는 것을.
그래서 결심했다.
도망이 아니라 회복을 위한 한 걸음.
누구 때문이 아니라
나를 다시 살기 위한 나의 선택으로
나는 제주로 향했다.
사람들은 물었다.
“남편이랑 떨어져서 괜찮아?”
“애들 아빠 없으면 힘들지 않아?”
수년간 평일 독박육아를 해온 나에겐 남편의
부재가 그렇게 힘들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기에
“해외 간 것도 아닌데요, 언제든 만날 수 있어요.”
라고 쉽게 얘기가 나왔다.
하지만 속마음은 이랬다.
지금이 아니면 안 될 것 같았다.
그리고, 이제 정말 나를 찾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수년 동안, 나는 나를 잃고 살았다.
육아, 살림, 아내라는 이름으로
언제나 누군가를 먼저 돌보며 살았던 시간들.
"내가 진짜 원하는 삶은 무엇이었을까?"
"언제부터 나는, 나에게 아무 질문도 하지 않았을까?"
"나는 지금, 진짜 나의 삶을 살고 있는 걸까?"
그래서 ‘치유’라는 단어 앞에서 제주가 떠올랐다.
이 결정은 절대 혼자 한 게 아니다.
남편의 응원과 허락이 아니었다면
나는 지금 이 마당에 피어난 수국도
아침마다 내리는 핸드드립 커피의 향도
느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는 “당신이 하고 싶은 걸 해”라고 말해줬다.
그 말이 얼마나 크고 따뜻한 허락이었는지
이곳에 와서야 실감하고 있다.
나는 지금 나를 찾는 중이다.
세상의 속도를 잠시 내려놓고
'괜찮은 엄마'가 아니라 '행복한 나'로 살아보기 위해
조금 느리게, 조금 다르게 걸어가고 있다.
이번 선택은, 그 시간에 대한 작은 보상이자
무너진 나를 다시 일으키는 시간이다.
나는 아이들과, 남편은 육지에서
처음으로 이렇게 장기간의 물리적 거리가 생겼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그 거리만큼 마음에 공간도 생겼다.
요즘 남편은 매일 전화 몇 번씩 온다.
"제주 생활 적응 다했어?"
“애들이랑 오늘 뭐 했어?”
“하... 나도 빨리 제주 가고 싶다.”
늘 방학 2주 전에나 슬슬 계획 짜던 사람이
7월도 되기 전부터 휴가 날짜를 미리 잡고
비행기표까지 알아보는 모습은 낯설지만 은근히 반갑다.
미운 놈!
떨어져 보니 알겠다.
그가 있어야 이 집이 ‘집’이라는 걸.
그의 잔소리와 성격까지도
내 삶의 일부였다는 걸.
결혼이란 같이 사는 것보다
때로는 멀리서 바라보는 시간이
더 필요할지도 모른다.
거리가 생기면
그 틈 사이로 바람이 불고
그 바람이 묵은 감정의 먼지를 쓸어낸다.
떨어져 지내며 우리는 서로를 다르게
이해하는 중이다. 같이 사는 법이 아닌
각자의 삶을 존중하는 법을 배우는 중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