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밥은 짓는 시간
제주에 와서 가장 달라진 건 삼시세끼 꼭 밥상을 차리는 엄마가 되었다는 사실이다. 육지에서의
삶은 늘 바빴고 주말엔 배달이나 외식이 익숙한
날들이 많았다.
‘바쁘니까 어쩔 수 없지’
‘오늘은 특별하니까’
그렇게 합리화하던 식사들이 쌓여 아이들의
입맛도 우리의 생활도 조금씩 변해가고 있었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그럴 수가 없었다.
배달이 안 되는 동네다. 배달되는 가게도 겨우
두세 집인데 배보다 배꼽이 더 큰, 배달비가 6천 원 이상이다. 마트를 갈려면 차로 20분 거리다.
그래서 장을 보러 가는 일도, 찬찬히 밥을 짓는 일도
이제는 나의 루틴이 되었다.
육지에서는 아침에 빵 한 조각, 우유 한 컵,
시리얼 등 아주 간단하게 먹었던 아이들은
제주 와서 하루도 빠지지 않고 꼬박꼬박 아침을
챙겨 먹는 큰 변화가 생겼다. 입이 짧은 아들은
"제주도 와서 먹는 집밥이 너무 맛있어. 나 살찔 것 같아."라고 말했고 딸은 눈만 뜨면 "오늘 아침 뭐야?"라고 기대에 찬 목소리로 묻는다.
된장찌개, 고기양념 덮밥, 배추쌈, 브로콜리, 두부부침, 김치, 그리고 따뜻한 보리차까지 매일 주방 가스레인지는 즐겁게, 역동적으로 가동한다.
거창한 메뉴는 아니지만 정성이 가득 밴 집밥이다.
내가 직접 고른 재료, 하루 전날부터 계획한 반찬들,
그리고 아이들이 기꺼이 도와준 손길로 완성된 식탁.
육지에서의 밥 짓기는 어쩌면 생존을 위한 반복된 수행처럼 느껴졌다. 아이 밥상 따로, 어른 밥상 따로.
입맛과 속도를 달리하는 가족들의 식사를 하나하나 준비하고 끝도 없는 설거지까지 마치고 나면
어느새 두 시간은 훌쩍 지나 있었다.
정작 남편은 말없이 앉아 10분 만에 식사를 마치고 일어난다.ㅇ그 뒷모습을 바라보는 순간 마음 한편이 덜컥 무너지는 듯한 허무함이 스며든다. 무엇을 위해 이토록 애썼을까 싶은 현실과 감정의 간극 앞에서 문득, 고요한 허탈감이 밀려오곤 했다.
요즘 딸아이는 나와 함께 끼니 준비하는 일이
많아졌다. 콩나물 수염을 다듬고, 햄을 가지런히
썰고 김밥을 돌돌 만다. 아직은 어설픈 칼질이지만 손끝에 담긴 마음은 제법 단단하다. 요리가 재미
있다며 스스로 앞치마를 챙기고 "오늘은 내가 요리사야!" 하면서 주말의 아침을 요란하게
시작하기도 한다.
딸과 함께 요리를 하다 보면 어느새 많은 이야기를 나눈다. 학교 얘기, 친구 얘기, 별것 아닌 고민들까지. 요리하는 시간은 단순한 가사노동이 아니라 서로의 마음을 찬찬히 들여다보는 시간이다.
엄마의 손짓 하나, 아이의 말투 하나에 깃든 감정을 우리는 소리 내어 설명하지 않아도 알아간다.
식탁을 함께 차리는 시간은 말보다 더 깊은 공감이 자라는 시간이다.
함께 만든 음식을 나란히 앉아 먹을 때면
딸아이는 뿌듯한 얼굴로 말한다.
“이건 내가 만든 반찬이야. 어때, 맛있지?”
그 물음 속엔 칭찬을 바라는 마음만 있는 게 아니다.
사랑받고 있다는 확신 그리고 그 사랑을 또 나누고
싶은 마음이 담겨 있다.
엄마가 어떤 음식을 먹고, 어떤 태도로 밥을 짓느냐는
결국 아이의 몸과 마음, 그리고 삶의 방향에까지 영향을 미친다."아이는 엄마가 먹은 음식, 그 자체다"
책에서 읽었던 그 문장이 오늘따라 더 깊게 와닿는다.
제주살이를 결심한 이유 중 하나도 이것이었다.
내 아이에게 제철 재료의 맛을 알려주고 싶었고
밥을 기다릴 줄 아는 느긋함을 경험하게 해주고 싶었으며 무엇보다 식탁 앞에서 흘러가는 따뜻한 대화를 선물하고 싶었다.
밥상을 다시 수시로 차리기 시작하면서 나는 더
이상 귀찮다는 말로 저녁을 외면하지 않게 되었다.
밥상 위의 정성이 아이의 마음을 키우고
엄마의 따뜻한 눈빛이 아이의 자존감을 자라나게 한다.
그리고 언젠가 딸이 자신의 식탁을 차리게 될 날이
오면 이 순간들을 기억하며 또 다른 사랑을 담아
내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