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꽃시장에서 보낸 여유로운 주말
제주에 내려온 후 도민의 주말은 여행자로
왔을 때와 확연히 다르다. 관광지로 북적이는
바다도 좋지만 지난 일요일은 조금 다르게 보내고 싶었다. 사람에 치이지 않고 자연을 느낄 수 있는 우리만의 조용한 쉼터. 그래서 택한 곳은 바다가
아닌 꽃시장이었다.
그것도 제주에서 가장 큰 꽃시장, 아라동에 위치한 월평꽃도매시장. 제주 토박이들 사이에선 이미 오래전부터 주말 나들이 코스로 알려진 곳이었다.
아이들과 집에서 식물을 키워보자고 이야기한 게
며칠 전. 육지에서 식집사로 몇 년 동안 반려식물을
키운 경험이 있는 나로서 식물 키우기는 늘 설레는 일이었다. 이젠 아이들에게도 이 설레는 일을 함께 하자고 이야기를 꺼냈다.
단순한 심부름이나 일회성 체험이 아닌
매일매일 물 주고, 이름 불러주고, 자라는 모습을
께ㅇ지켜보는 생산적인 놀이를 시작해 보자고 했다.
아이들 역시 의외로 눈을 반짝이며 나의 제안에 긍정적으로 반응했다.
월평꽃시장에 도착하자마자 펼쳐진 풍경은 상상 그 이상이었다. 입구부터 싱그러운 풀 내음이 밀려들고 형형색색의 꽃들이 줄지어 우리를 반겼다.
작은 화분부터 정원용 나무들, 다육이, 허브, 이름도 낯선 이국의 식물들까지. 햇살을 머금은 초록과 꽃잎의 색감이 아이들의 시선을 단박에 사로잡았다.
“이건 마치 미니 양배추 같아!”
“엄마, 이건 고양이 얼굴같이 생겼어!”
아이들의 상상력은 멈출 줄을 몰랐고,
나는 그런 모습들을 바라보며 꽃보다 더 눈부신 순간들을 마음에 담았다.
식물을 고르며 아이들은 서로 대화를 주고받았다.
“매일 누가 물 줄까?”
“햇빛은 창가에 잘 들어오겠지?”
아이들은 책임감을 배우고
식물과의 교감을 통해 기다림이라는
감정을 스스로 이해하기 시작했다.
아들은 나무를 심고 싶다고 해서 귀여운
올리브나무를 택했고, 딸은 잎을 터치하면
예민하게 반응하는 미모사를 선택했다.
이 작은 화분 하나가 앞으로 아이들의 손끝에서
자라고 그 속에서 생명의 변화와 계절의 흐름을 자연스럽게 체득할 것을 기대해 본다.
월평꽃시장에서의 시간은 단순한 소비가 아니라
우리 가족에게 또 하나의 작은 자연을 품는 의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