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아이들 하교 후의 풍경
제주는 참 이상한 곳이다. 잠깐의 외출도 이야기가 되고
익숙한 풍경도 언제나 처음 보는 듯하다.
평일 아이들 하교 후, 우리가 살고 있는 마을에서
조금만 차를 달려 도착할 수 있는 곽지해수욕장으로 향했다.
물빛은 에메랄드와 옥빛 사이 어딘가였다.
햇살에 부서지며 반짝이는 얕은 파도 그리고 끝없이
펼쳐진 얕은 수심 덕에 아이들은 맨발로 바다를
뛰놀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코코도 모래에 발을 묻고 해변을 천천히 걸었다.
파도가 무섭지 않아서일까 물가 가까이까지 다가가
조심스럽게 발끝을 적시는 모습이 기특하기까지 했다.
무언가 특별한 걸 하지 않아도
이렇게 바다를 바라보고 걸으며 웃는 일상이
제주살이의 가장 큰 선물이라는 걸
우리는 조금씩 배워가는 중이다.
해수욕장 입구에 있는 넓은 유료주차장은 꽤 쾌적했고
파라솔 아래 그늘도 곳곳에 마련되어 있었다.
특히 이 바다는 수심이 얕고 물살이 잔잔해서 아이들과
함께 놀기에 안전한 곳이라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수영복을 입지 않아도 발만 담그고, 모래만 밟아도 충분히 행복해질 수 있는 공간.
그리고 제주에선 그런 바다를 마음먹은 날,
일상처럼 만나러 갈 수 있다는 사실이, 아직도 조금은 놀랍다.
"엄마, 오늘은 물이 진짜 맑아!"
"여기 물은 왜 이렇게 따뜻하지?"
아무렇지 않게 던지는 아이들의 말에도 자연이
스며 있고 그 순간을 고스란히 느끼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참 다행스러운 하루였다.
에메랄드빛 바다 앞, 오늘의 속도가 마음에 들었다
곽지해수욕장은 우리 가족에게
조금 느리고, 조금 여유로운 ‘여름의 정답’이었다.
놀라움보다 익숙함 속의 평화를
번쩍이는 감탄보다 잔잔한 미소를
선물해 준 하루.
제주에 살고 있다는 건
바로 이런 날들을 삶의 중심에 둘 수 있다는 것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