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일, 두 번째 새별오름
제주에 와서 가장 자주, 가장 깊이 들여다보는
풍경이 있다면 단연코 노을이다.
어디를 가든 굳이 멀리 가지 않아도
그저 집 창밖 너머로 고개만 돌려도 볼 수 있는 노을.
그런데도 이상하게 또 보고 싶어진다.
그 붉고 부드러운 하늘 아래 잠잠히 물드는 하루의
끝이 제주에서는 늘 특별한 마무리로 남는다.
오늘도 그랬다.
방과 후 수업이 쉬는 날이라 하루 종일 집 안에서
머물던 아이들이 이른 저녁을 먹고 나더니 갑자기
마실 가자고 했다. (제주 와서 외출병 걸린 것 같음)
마실이란 말이 어쩐지 정겹게 들려
우리는 집 근처 쓰레기 분리장에 들렀다.
제주는 쓰레기 버리는 장소도 정해져 있고
차로 가야 하기에 그 근처 쿠키 핫플에 들러보자는
건 아이들의 아이디어였다.
하지만 쿠키 가게는 마감 30분 전,
우리가 도착했을 땐 이미 오븐이 멈춘 뒤였다.
조금은 아쉬웠지만 아이들은 오히려 그 자리에
기대지 않고 "엄마, 새별오름 가자! 노을 보고 싶어!"
하고 외쳤다.
사실 나 쪼리 신었는데…
아이들은 슬리퍼 질질 끌고 나왔는데…
"오늘은 그냥 차에서 노을만 보고 오자"고 말했지만
차에서 내리는 순간
아이들은 이미 바람을 따라 달리고 있었다.
새별오름 초입부터 숨이 찼다.
나는 헐떡이며 따라갔고
그 곁을 코코가 통통 힘차게 앞질러 갔다.
작은 몸으로도 낙엽을 밟고 흙길을 디디며
마치 이 길이 익숙하다는 듯 걷는 모습이
오히려 나보다 훨씬 여유로워 보였다.
정상 가까이 다다랐을 즈음 바람이 달라졌다.
한낮의 뜨거움을 식히고 남은 저녁의 바람은
마치 긴 하루를 토닥여주는 듯했다.
멀리 한라산이 푸르게 드리워졌고
하늘은 짙은 파랑과 따뜻한 주홍빛 사이를 천천히 오갔다.
노을이 오름을 감쌌다.
그리고 우리의 하루를 품었다.
그 순간 나는
이 맛에 제주에 사는 거구나
하고 조용히 생각했다.
계획에 없던 오름 산책
쪼리 신고 오른 바람 부는 언덕.
그 모든 것이 너무 완벽하게 어울려
오늘이 무척 아름답다고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