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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장난으로 채운 오후의 찬란한 장면

+32, 마당에서 웃음이 자라나는 시간

by Remi

아이들의 여름방학이 시작됐다.
햇살은 벌써 한여름을 지나치는 기세로 눈부셨고
아이들은 오늘부터 방과 후 수업에 참여했다.
이 여름, 뜨거운 땀으로 시간을 채우고 싶었던

남매의 농구수업.

스쿨버스 시간이 어긋나는 탓에
나는 학교 앞 작은 카페에 잠시 머물렀다.
제주에 와서 처음으로 사 마셔보는 따뜻한 라떼.

육지에 있을 땐 늘 따뜻한 라떼를 즐겨 마셨다.
하지만 이곳에 와선 늘 집에서 밖에서 커피 한 잔 사는 일조차 사치라고 느껴져 집에서 핸드드립을 내려

마셨다. 하지만 오늘만큼은 괜찮다는 마음이 먼저 들었다.

라떼 위로 부드럽게 번지는 하트 모양,
책장을 넘기는 손끝에 닿는 적당한 온기
그리고 한 구절이 조용히 마음을 건드렸다.

"오늘 하루만 생각하고, 오늘 하루에 집중하라.”

지금 이 순간 나는
더 이상 내일을 미루듯 살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다.



방과 후 수업을 마친 둘째가 먼저 나왔다.
첫째는 수업 중이라 기다려야 했다. 둘째는
엄마에게 학교 구경을 시켜주겠다고 놀이터로 이끌었다. 나무그늘 아래 펼쳐진 놀이터는
어디서나 흔한 구조물이었지만 그곳에서 뛰노는

아이의 발걸음은 전혀 흔하지 않았다.
제주에서의 이 순간이 이 아이를 조금씩 다른

존재로 바꾸고 있다는 걸 나는 안다.

첫째가 나왔고 차에 타자마자 둘은 농구 이야기로 빠져들었다. 육지에서 몇 번 경기까지 뛰어본 첫째는
패스와 드리블, 코트에서의 긴장감까지 마치 오늘 경기를 치르고 온 사람처럼 조잘조잘 쏟아냈다.




집에 돌아오자 아이들은
"덥다!"는 말과 함께 그대로 마당으로 달려 나갔다.
호스를 들고 물을 뿌리기 시작하더니
금세 물총을 꺼내 들고는
젖은 웃음으로 오후를 물들였다.

그 장면을 바라보며 나는 생각했다.
삶이란, 어쩌면 이렇게 단순하고 아름다울 수 있는 것이라고.
잔뜩 젖은 티셔츠, 맨발로 뛰노는 아이들,
그리고 그 웃음을 바라보는 내 마음이…
요즘 들어 자주 꽉 차 있다.

따뜻한 라떼 한 잔이 나에게 준 오늘
아이들의 젖은 웃음이 채워준 하루
그걸로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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