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제주에 온 후 처음으로 마음이
밑바닥까지 가라앉은 날이었다.
기분이 처지는 걸 넘어 모든 것에 회의감이 들었다.
하늘은 여전히 푸르고 아이들은 평소처럼 웃었지만
나는 온종일 감정을 지운 얼굴로 섬처럼 서 있었다.
모든 게 괜히 서운하고 무의미하게 느껴지고
사소한 말투 하나에도 마음이 훅 꺾였다.
늘 그래왔다.
나는 늘 기분이 태도가 되는 사람이었다.
기분이 좋으면 웃고 기분이 나쁘면 날카로워졌다.
그걸 알지만 쉽게 바꾸지 못했고
감정이 올라오면 마치 파도처럼 삼켜져 버렸다.
“왜 이렇게 예민해졌지?”라는 말 앞에
스스로도 할 말이 없어졌다.
이럴 때마다 나는 누구에게 위로를 받기
보단 늘 책에서 답을 찾으려고 해 왔다.
마크 맨슨의 『신경 끄기의 기술』.
거기엔 내가 듣고 싶지 않았지만 반드시
들어야 할 문장들이 있었다.
"당신은 모든 것을 중요하게 생각해서 망가지는
것이다."
정곡을 찔렸다.
나는 그동안 사소한 것들까지 중요하게 여기며
매일을 긴장 속에서 살아왔다.
누군가의 표정, 말투, 무심한 반응 하나하나를
내 탓으로 여기고 내 감정으로 끌어안았다.
그렇게 사소한 불편들조차 내 안에서 거대한 감정의 파도가 되어 나를 휩쓸고 지나갔다.
감정에 반응하는 건 잘못이 아니다.
하지만 감정에 지배당하며 사는 건 너무 버거운 일이었다. 나는 그걸 이제야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그래서, 또 하나의 문장을 붙잡았다.
“기분 더럽군. 근데 그래서 어쩌라고?”
무심하고 거친 이 한 문장이
내 안에서 오랫동안 굳어 있던 감정=진실
이라는 공식을 깨뜨렸다.
그래 기분이 안 좋을 수 있다.
상처받을 수도 있고 불쾌할 수도 있고
우울한 날도 당연히 있다.
하지만 그것이 나를 정의하게 두진 않겠다.
하지만 그날 밤 이후 내 안에 자리 잡은
문장은 따로 있었다.
“겁낼 것 없다.”
단 다섯 글자였지만
그 말이 내 하루를 지탱했다.
불안이 고개를 들 때마다
누군가의 말투에 마음이 헝클어질 때마다
나는 '겁낼 것 없다’는 문장을 마음의 정중앙에 놓았다.
"지금까지 살아내느라 정말 애썼어.
지금부터는 이 모습 그대로 널 아껴줄게.
이 모습 그대로 너는 사랑스럽고 귀하다.”
이건 내가 내게 해주기로 한 첫 번째 위로였다.
지금의 내 감정이 조금 어설퍼도, 조금 흔들려도
그 자체로 충분하다고 이제는 말해주고 싶다.
지금 이 순간 나는 걱정과 두려움이 아닌
좋은 감정(감사, 기쁨, 기대, 믿음, 사랑)을 선택한다.
제주의 바람은 내 마음처럼 변덕스럽지만
그 바람 덕분에 나는 오늘도 흔들리되 쓰러지지 않았다.
바람은 불지만 나는 무너지지 않는다.
마음은 출렁이지만 다시 중심으로 돌아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