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히 요동치는 마음과 함께 사는 법

by Remi

남편이 제주에 와 있었던 며칠은 말로 다 못할 만큼 따뜻하고 분주한 시간이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아이들보다 먼저 일어나 주방에 불을 켜던 모습,

낚싯대와 통발이 동시에 실린 캐리어, 그리고 저녁마다 곁에 있는 그 사람의 체온.

그러다 문득 휴가가 끝나고 그가 다시 육지로 돌아가던 날 아침이 찾아왔다. 익숙했던 그의 발걸음이 현관을 나서는 순간 집 안은 조용했지만 마음 한구석에 무너지는 소리가 또렷하게 들렸다.

아이들은 평소처럼 해맑았고 집안에는 여느 때처럼 바람이 불어오고 있었지만 나는 오늘따라 자꾸만 시선을 거실 창가에 두었다. 남편이 앉았던 자리에,

마셨던 커피 잔에 그리고 그가 건넸던 짧은 눈빛에.




가끔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마음 깊은 곳에서 파문처럼 울려오는 날이었다.

그리움이란 건 꼭 소리를 내지 않아도 마음을 흔들 수 있었다. 익숙함이 빠져나간 자리는 생각보다 조용했고,
그래서 더 울림이 컸던 것 같다.

소리 없는 공간에서 나는 남편이 남기고 간 순간을 되새김질했다. 함께 웃던 순간, 아이들과 농구하던 저녁, 바다에서 하루 종일 놀았던 날, 노을 보러 오름 올라갔던 마지막 코스까지.

그 모든 장면들이 마치 오래된 영화처럼
천천히, 조용히 나를 감싸 안았다.





‘잘 지내?’라는 지인들 인사에 요즘은 자꾸 멈칫하게

된다. 대답할 수 없는 건 아니지만 그 한마디 뒤에 감춰둔 말들이 자꾸만 밀려온다.

나는 지금 어떤 속도로 이 시간을 살아가고 있는 걸까?
낯선 곳에서 자리를 잡아가는 이 과정은 때로는 무겁고

또 때로는 너무 조용해서 불안하다. 하지만 그 마음의 울림이 결국 나를 나답게, 이 삶을 내 삶답게 만드는 걸지도 모른다.

소리 내지 않아도 우리는 그렇게 조용히 흔들리며 살아가고 있는 것 같다. 오늘 하루 그 조용한 파문을 그대로 껴안고 나는 다시 일상을 살아낸다.


그리고 어른이 된다는 건 그리움을 다 말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이 되는 것. 꾹 눌러 삼키고 무너지지 않은 얼굴로 하루를 통과하는 일. 그게 어른의 몫이라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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