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 우리 가족 여름휴가 중
아이들을 방과 후 수업에 보내고 오랜만에
남편과 단둘이 마주 앉았다. 학교 앞 작은 카페. 커피 향이 가득한 공간에 익숙한 사람과 나란히
앉아 있으니 잠시 모든 흐름이 느려졌다.
늘 그렇듯 말이 많은 쪽은 나였다.
그동안의 제주살이, 아이들 학교 이야기,
동네에 대한 소소한 감정들. 남편은 가만히 듣고
고개를 끄덕이며 짧은 말로 내 긴 이야기를 가만히 감싸주었다.
점심은 카페 바로 옆, 이름. 정겨운 한식 식당에서 해결했다. 제법 오랜만에 느껴보는 뜨끈한 국물,
적당히 익은 김치, 그리고 집 밥’ 같은 소박함.
제주에 살며 새삼 느끼는 것 중 하나는 숨은 맛집은 대부분 눈에 띄지 않는 골목 어귀에 있다는 것이다.
그동안 미뤄뒀던 동네 식당을 남편이 있을 때 하나씩 정복해 보기로.
식사를 마친 뒤 남편이 모래 없는 바다로 가자고 했다.
마치 마음을 읽은 듯 내가 늘 가고 싶어 했던 판포포구가 머릿속을 스쳤다.
바람이 시원하게 불어오던 오후,
우린 드디어 에메랄드빛 바다가 반짝이는
판포포구에 도착했다.
이곳은 해수욕장과는 다르게 고운 모래가 아닌
현무암 바위와 콘크리트 바닥 위로 펼쳐진 평화로운 바다였다. 모래 걱정 없이 아이들이 마음껏 수영을 즐길 수 있는 드문 장소. 입수는 계단으로 안전하게 할 수 있었고, 생각보다 수심이 깊지 않아 튜브 하나면 두 시간은 순삭.
파랗고 맑은 하늘 아래,
아이들은 둥둥 떠다니며 물살을 즐겼고,
나는 물속에서 느껴지는 햇살의 결을 따라 고요히 마음을 풀었다. 방수팩에 넣은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고, 웃고, 또 웃었다.
바닷물에 몸을 맡긴 채 그냥 이대로 시간이 멈췄으면 했다. 이제야 진짜 휴가 같았던 하루.
이 평범한 여름날의 장면들이 오래도록 마음 깊은 곳에서 반짝이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