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일
아이들이 눈을 뜨자마자 먼저 말했다.
“오늘도 판포포구 갈 거지?”
마치 전날의 즐거움이 오늘까지 이어져야만
하루가 완성되는 것처럼.
우린 커다란 짐 대신 가벼운 캠핑의자 세 개만 들고
다시 판포포구로 향했다. 남편이 오늘은 꼭
해가 바다에 닿는 시간까지 머물고 싶었다.
6시간을 바다와 함께, 바닷물은 처음에 갔을 때
보다 더 맑았고 햇살은 조금 더 깊게 가라앉았다.
남편과 아이들은 물속에서 시간을 잊었고 나는 바닷가에 의자 하나 펴두고 그 모습을 오래
바라보다가 코코와 함께 바닷속에 풍덩했다.
아빠는 아이들 곁을 지키듯
때로는 웃으며 장난도 치고
때로는 혼자 바다수영을 즐겼다.
그 모습이 어쩐지 마음 깊은 곳까지 따뜻하게 번져왔다.
물 위를 둥실 떠다니는 아이들의 뒷모습은
이제 제법 바다와 친해진 아이들답게
자유롭고 안정적이었다. 다이빙도 여러 번 하고
만조시간에 깊은 바닷물속에 들어가기도 했다.
물놀이라면 아마 우리 아이들이 1등 하지 않을까 싶다.
허기진 배를 달래기 위해 판포포구에서
치킨 한 마리를 시켜 먹었다. 배달시켜 본 치킨집
중에 가장 느린 집이 아닐까 싶다. 한 시간 반을
기다렸으니.. 기다린 시간에 비해 먹는 속도는 5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다들 아쉬워하며 손가락을
쪽쪽 빨면서 배달시간과 먹는 시간을 바꾸고
싶다는 농담까지 주고받았다.
집으로 돌아올 땐 젖은 수영복 그대로.
모래가 없는 바닷가라 가능한,
제주에서만 가능한 작은 자유였다.
샤워를 마치고 저녁을 먹는 동안
아이들이 수군수군 얘기를 나눴다.
그리고는 조심스레 말했다.
“아빠한테 새별오름 노을 보여주고 싶어.”
노을을 향해 다시 떠난 길
아빠는 피곤할 법도 했지만
말없이 차 키를 들었다.
아이들 마음을 아빠는 누구보다 잘 안다.
조용히 따라나선 그 마음이 고마웠다.
새별오름을 향해 가는 길,
차 안은 잔잔했다.
누군가 일부러 침묵을 지킨 게 아니라
그저 오늘이라는 하루가
우리 모두를 조용하게 만들어준 거였다.
오름에 도착했을 땐
하늘은 이미 분홍빛으로 물들고 있었고
아이들은 숨이 찬 채로 정상에 올랐다.
“아빠, 여기야. 여기에서 보는 게 진짜 예뻐.”
아빠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고
아이들 사이에 조용히 섰다.
그 순간 노을이 네 식구를 감싸 안았다.
오름에서 내려오는 길,
근처 스타벅스 금악 dt점에 들렀다.
차 한 잔에 손을 녹이고
조용한 음악에 마음을 기대고
오늘 하루의 여운을 다정히 정리했다.
그리고 그 모든 순간이 더 특별했던 이유.
다음날 남편이 다시 육지로 돌아가는 날이기 때문이다.
함께한 시간 중
아마도 오늘이 가장 아쉬운 날일 것이다.
함께 있어서 좋았던 것도 있지만
내일 헤어질 걸 알기 때문에
오늘의 모든 순간이 유난히 더 눈부셨다.
그 어떤 말도 필요 없었던 하루였다.
아이들의 웃음과 바다의 온기,
그리고 노을빛 아래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만으로도 충분했던 날.
내일의 이별을 아는 마음으로
오늘의 곁을 더 다정하게 붙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