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일, 당신의 여행지로 나를 골라줘서 고마워요
남편이 떠난 자리에 덧칠할 여유도 없이,
그다음 날 새벽, 엄마가 제주로 들어오셨다.
비록 사흘, 달력 위로 겨우 몇 칸 남짓한 시간이지만
나는 그 짧음을 오히려 단단히 움켜쥐고 싶었다.
당신을 기다리는 일은 언제나 나를 아이처럼 만든다.
아침 여덟 시, 집 앞 골목에 다다른 엄마를
두 남매는 창밖으로 눈을 박고 기다렸다.
외할머니의 실루엣이 시야에 들어온 순간,
뛰어가는 아이들의 뒷모습이
마치 오래 전의 나를 소환하는 듯했다.
누구보다 엄마를 그리워했던 마음이
저리도 순도 높게 터져 나오다니.
엄마는 오시기 전부터 당부하셨다.
“딴 데 안 가도 돼. 나는 너네 집 오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휴식이야.”
나는 알고 있었다.
이 말은 엄마가 지나온 삶의 결이 얼마나
고단했는지를 조용히, 그러나 절절하게 알려주는
말이었다.
엄마는 제주여행을 여러 번 하셨다.
그래서 지금은 파도가 부서지는 풍경도,
붉게 타오르다 스르르 사라지는 노을도
이제는 그다지 감흥이 없다고 하셨다.
"난 진짜 아무 데도 안 가고 싶어."
덧붙인 말은 덤덤했지만 나는 그 말이 시간 속에
지친 마음의 그림자처럼 들렸다.
엄마에게 지금 가장 좋은 건
오직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집이었다.
그저 말없이 하루를 흘려보내는 일.
세상이 요구하지 않는 이 짧은 시간 속에서
엄마는 쉼을 찾고 싶으셨다.
나는 미리 등갈비를 사두었다.
엄마에게 내 마음을 담아
가장 따뜻한 한 끼를 대접하고 싶었다.
불 위에서 천천히 익어가는 고기와 함께
나의 마음도 조용히 부드러워졌다.
식탁 앞에 마주 앉은 엄마는
"고기 너무 부드럽네." 하시면서 손주들
접시에 갈비 주기 바쁘셨다.
"엄마 좀 많이 드시고 애들은 신경 안 써도 돼."
또 당신보다 아이들을 먼저 챙기는 모습에 속상했다.
난 혼자 자라 세상의 바람을 오롯이 엄마에게서
건네받으며 자랐다. 엄마가 말없이 견뎌낸 세월,
그 미세한 균열들, 허리와 손목에 고스란히 남은
노고의 흔적을 나는 너무도 잘 안다.
그래서 엄마가 잠시 숨 고르며 앉아 있는 모습을
보기만 해도 왜 이리 가슴이 저릿할까.
늘 엄마께 미안해서 그리고 너무 보고 싶어서.
엄마, 나는 당신이 여행지로 바다가 아닌 딸을
선택해 준 것이 참 고맙다.
내가 준비한 이 작은 집이, 당신에게
세상 어디보다 부드러운 쉼터가 되어주길.
그래서 이 짧은 3일이 당신에게는 아주 긴 온기로
남기를 진심으로 바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