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엄마 마음에도 꽃이 피었다

+40일, 아무 데도 안 간다던 엄마가 꽃 앞에서 한 말

by Remi

“그냥 집에 있을게.”
엄마는 제주에 오시기 전부터 반복해서

이 말을 입에 올리셨다.
화려한 풍경도, 낯선 장소도
이젠 마음을 두드리지 않는다고.
세상에 오래 몸을 기대고 살아온 사람의

말투였다. 조용했고 그러나 분명했다.


한때 그렇게 반짝이던 것들이
이제는 보이지 않는다고 말할 때 나는 엄마

마음 안에서 어디쯤 빛이 꺼졌는지를 헤아리고 싶어졌다. 나는 조용히 엄마를 위한 마음의 목록을 펼쳤다.

그 가운데 제일 처음 적힌 이름, 카멜리아힐.


엄마가 꽃을 사랑한다는 것을 나는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어린 시절, 식탁 위에 무심히 꽂힌

들꽃 한 송이만으로도 엄마는 하루의 리듬을 바꾸곤 했다. 그래서 이번엔 내가 엄마를 꽃 속으로 데려가 보기로 했다.



습도가 높은 여름날 제주의 숲은 상상보다 한결 서늘했다. 잎들이 내는 숨결이 공기 속에 맴돌았다.
코코는 풀숲을 누비며 바람을 쫓았고 아이들은 나무 아래에서 비밀스러운 무언가를 공유했다.


엄마는 말없이 걸었다.

마치 마음을 먼저 걷히게 하려는 사람처럼.

그러다 동백나무 앞에 멈추셨다.
나무를 가만히 들여다보던 엄마는
오랜 침묵 끝에 한마디를 건넸다.


“참 곱다. 이 나무… 잎이 아주 곱구나.

꽃이 너무 예뻐”


그 짧은 문장에서 나는 시간에 침잠되어

있던 감정의 잔류들을 보았다. 엄마에게

곱다는 말이 어떤 기억을 끌어올린 듯
엄마의 목소리는 사뭇 부드러웠다.


나는 그 순간 엄마 마음 어딘가에 아직
세상의 결을 감각할 수 있는 여백이 남아

있다는 것을 알아챘다.

바로 그 장면이 오늘 하루의 정점이었다.


엄마는 우리의 사진을 연신 찍으셨다.
화면 속엔 나와 아이들이 꽃을 배경 삼아 웃고

있는 얼굴들. 하지만 그 프레임 속에 담긴 것은
단지 표정이 아니었다. 그건 엄마가 딸을 바라보는 마음이었고 아이들이 빛으로 번져가는 생의 풍경이었다.


엄마의 손끝에서 셔터가 눌릴 때,
그건 한순간의 기록이 아니라
삶의 한 토막이 조용히 봉인되는 일이었다.

바라보다, 기억하다 그리고 마침내 사진이라는

언어로 남겨둔다는 것. 그 사진을 나중에 다시 들여다보았을 때 나는 보았다.


그 장면 안에는 엄마가 말하지 못한 사사이 다 담겨 있었다. 나는 엄마가 꽃을 바라보는 동안

엄마를 바라보았다.
말없이 그러나 한없이 다정하게.

눈빛으로 마음으로
그동안 꺼내지 못했던 말들을 쓰다듬듯.

그리고 얼마 후 엄마는 다시 말씀하셨다.


“안 데리고 왔으면 어쩔 뻔했냐.”


그 말은 단순한 감탄이 아니었다.
그것은 내가 엄마의 굳어있던 마음에
조심스레 건넨 손길이 온기 있게 도달했다는

은밀한 증표였다.






나는 알고 있었다.
엄마는 여행을 원하지 않았다.
세상과의 접촉을 잠시 멈추고
단지 숨 쉴 틈을 원했을 뿐이다.
그러나 때때로 인간은 진심을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도
소극적으로 말하는 법이다.


사실 나는 엄마와 함께 가고 싶은 장소가
마음속에 너무 많았다. 그러나 사흘이라는

시간은 우리가 붙잡기엔 너무 짧았고
그래서 더 간절했다.


오늘 엄마가 웃었다.
꽃 앞에서, 숲 속에서, 그리고 딸의 곁에서.

그걸로 충분하다.
아니 그 이상은 바라지 않기로 했다.

카멜리아힐의 꽃들은.
오늘따라 유난히 고요히 피어 있었다.
마치 그들도 알고 있었던 것처럼.
누군가의 마음에 다시, 아주 작게
한 송이의 빛이 피어나고 있다는 것을.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