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일, 해녀의 집으로 향하는 초대장
공항으로 향하기 전, 우리는 오래된 약속처럼
그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엄마가 제주에 오실
때마다 꼭 들르는 집. 10년 전에도, 5년 전에도
그리고 오늘도.
“여기 해산물은 진짜 다르다.”
음식을 안다는 사람의 눈빛으로 엄마는 늘 그렇게 단언하셨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통유리창 너머로 바다가 한 폭 그림처럼 밀려왔다. 파도의 결이 창문 가득 부서지고 수평선은 끝을 알 수 없는 깊은 청색으로 뻗어 있었다. 그 풍경을 마주 앉아 바라보는 순간 음식이 나오기 전의 기다림마저 여행의 한 장면이 되었다.
해녀의 집 내부는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다. 약간 빛바랜 색감이 오히려 바다 마을의 숨결을 더했다. 아이들은 창밖을 가리키며 연신 감탄했다.
“와, 진짜 바다 바로 앞이네!” 이곳의 창가 자리는 누가 뭐래도 특등석이다. 파도 소리를 들으며 식사를 하고 식사 뒤엔 해안길을 산책하는 여유까지 덤처럼 주는 자리.
우리가 주문한 건 모둠 해산물. 한 상 가득 놓인 바다는 말없이도 존재감을 뽐냈다. 전복, 뿔소라, 해삼, 돌멍게, 문어숙회… 모두 살아 있는 듯한 색과 결을 품고 있었다.
첫 젓가락은 멍게였다. 탱글한 살이 톡 터지며 바다 특유의 단짠 한 향이 입안 가득 번졌다. 싱싱하지 않으면 절대 나올 수 없는 맛이었다. 결국 한 접시를 더 주문했다. 해삼은 쫄깃함과 부드러움 사이를 오가며 은근한 단맛을 남겼다. 해삼을 사랑하게 된 건 우리 아들이 세 살 무렵부터였는데 열두 살이 된 지금도 여전히 해삼 킬러다. 평소 해산물을 잘 먹지 않는
딸도 기름장에 찍어가며 폭풍 흡입했다.
문어숙회의 두툼한 다리, 전복의 은은한 고소함, 소라의 바다 향… 그 모든 것이 싱싱함이라는 한 단어로 수렴되었다. 접시 위에 놓인 해산물들은 그 자체로 하나의 정물화였다. 칼날에 베인 단면조차 살아 숨 쉬는 듯 반짝였다.
살얼음이 둥둥 뜬 물회는 또 다른 세계였다. 아삭한 채소와 쫄깃한 해산물, 시원한 육수가 한데 어우러져 입안에서 바람이 이는 듯 청량했다. 매콤 달콤한 양념은 절제되어 있어 재료 본연의 맛을 조금도 가리지 않았다.
그리고 전복죽. 첫 숟가락을 뜨신 엄마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건 집에서 못 내.”
전복 내장까지 듬뿍 넣어 바다의 풍요로움을 한
그릇에 담았다. 아이들은 맛있다는 말도 잊은 채
금세 그릇을 비웠다.
애월 해녀의 집의 진짜 매력은 단순했다. 신선함이 기본이자 전부. 멍게, 해삼, 전복이 비릿함 없이 바다
향 그대로를 품고 있는 곳. 싱싱함이 이토록 정직하게 전해지는 집은 흔치 않다.
아무리 제주에 맛집이 많아도 10년 넘게 변치 않고 찾게 되는 집은 드물다. 엄마가 그 시절을 떠올리며 웃는 모습을 바라보다 문득 생각했다. 이곳은 단순한 식당이 아니라 세대를 건너 이어지는 우리의 제주 앨범 속 한 페이지라는 것을. 그리고 그 페이지를 오늘 나와 아이들이 다시 채웠다는 사실이 감사했다.
공항으로 가는 길, 차창 밖으로 바다가 멀어졌다. 엄마의 여행 가방 속에는 오늘 먹은 맛이 오래도록 남아 있을까. 아니면 함께 웃던 창가 자리의 풍경이 먼저 떠오를까. 나는 알 것 같았다. 바다는 늘 멀리 있지만
그 맛과 그날의 온도는 평생 곁에 머문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