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일,세 시간의 여정이 남긴 울림
내일이면 아이들이 다시 교실로 돌아간다. 길었던 여름방학이 끝나간다는 사실에 아이들도 아쉬워했고 나 역시 마음 한편이 묘하게 허전했다. 그래서 방학의 마지막 날만큼은 기억의 서랍 속에 오래 남을 특별한 하루를 선물해주고 싶었다. 선택한 곳은 집에서 멀지 않은 제주 항공우주박물관. 비행기와 별자리를 유난히 좋아하는 아이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선물이 될 터였다. 예상은 적중했고 그 선택은 대성공이었다. 아이들의 눈동자는 반짝였고 나 또한 오랜만에 과학과 우주의 광활한 세계 속으로 잠시 빠져드는 기분을 만끽할 수 있었다.
실내 전시는 크게 항공관과 우주관으로 나뉘어 있었다. 거대한 비행기 엔진, 태양계 행성 모형, 로켓 발사 원리를 체험할 수 있는 전시물이 아이들의 호기심을 단숨에 사로잡았다. 교과서 속 문장으로만 만났던 개념들이 생생한 실물로 다가오자 아이들은 연신 “엄마, 이거 봐!” 하며 나를 불렀다.
특히 360도 돔 스크린 영상관은 압권이었다. 은하를 가로지르는 듯한 영상이 눈앞에 펼쳐지자 마치 우리가 우주선을 타고 여행을 떠난 듯한 몰입감이 밀려왔다. 영상이 끝나자 아이들은 “한 번만 더 보면 안 돼?” 하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하지만 오늘의 절정은 아직 남아 있었다.
전시를 거닐다 발견한 상설 체험관. 이곳에서 우리 가족은 별자리 무드등 만들기를 선택했다. 아이들은 먼저 별자리 도안을 고른 뒤 작은 전등 키트를 받았다. 전구와 전선을 연결하고 도안을 종이컵 모양의 틀에 붙이는 과정은 쉽지 않았지만 아이들은 금세 집중하며 스스로의 작품을 완성해갔다. 불빛을 켜는 순간, 종이에 뚫린 작은 구멍 사이로 별빛이 방 안 가득 흩어졌다.
“와, 진짜 방에서 별 보는 것 같아!”
둘째의 탄성이 공기 속에 퍼졌고 첫째는 자신이 만든 무드등을 들고 사진을 찍으며 뿌듯한 미소를 지었다. 단순한 결과물이 아니라 별자리에 대한 지식을 배우고 손끝으로 만들어낸 성취가 고스란히 아이들의 마음에 스며드는 순간이었다.
전시와 체험을 이어가다 보니 어느새 두 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다. 지친 기색이 역력한 아이들과 함께 1층 카페테리아로 내려가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사주었다. 사실 내가 먼저 제안한 건 아이들이 낯선 공간 속에서도 열심히 집중하는 모습이 너무 기특했기 때문이다.
달콤한 아이스크림을 손에 쥔 채 창밖으로 비행기 전시장을 바라보는 짧은 휴식. 그 몇 분의 여유 속에서 아이들은 다시 에너지를 충전했고 금세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엄마, 이제 또 어디 가?” 그 순간, 작은 간식 하나가 오늘의 추억에 온기를 더해주고 있었다.
모든 관람을 마치고 나서도 아이들은 발걸음을 떼지 못했다. 그 눈길을 붙든 건 중력가속도 체험 기구였다. 원형 기구 안에 들어가 빠른 회전을 통해 원심력을 온몸으로 체감하는 장치였다.
첫째는 조금 겁이 났는지 망설이다 결국 포기했지만 둘째는 용기 있게 도전했다. 회전이 시작되자 “우와!” 하며 웃음을 터뜨렸고, 끝나자마자 “한 번 더 탈래!”라며 두 번이나 연속으로 탑승했다. 그러나 즐거움은 잠시였다. 차에 오르기 전, 얼굴이 창백해진 아이는 “엄마, 나 어지러워…” 하며 괴로워했다. 결국 물을 마시고 한참을 쉬어야 했다. 순간적으로는 안쓰러웠지만 스스로 경험해보고 얻은 깨달음이기에 그것 또한 값진 추억으로 남으리라 믿는다.
오늘 우리가 박물관에서 보낸 시간은 정확히 세 시간. 전시와 영상관, 상설 체험, 마지막 체험 기구까지 알차게 채운 일정이었다. 아이들은 개학 전날 이렇게 특별한 하루를 보낸 게 좋았다며 “학교 가기 싫다”는 말 대신 “다음에 또 오고 싶다”는 말을 남겼다. 그 한마디가 오늘의 모든 수고를 보상해주었다.
나 역시 평소 접하기 어려운 항공과 우주의 세계를 아이들과 함께 마주하며 배우고 성장하는 시간을 가졌다. 방학의 마지막을 따뜻하게 마무리할 수 있었다는 사실만으로도 마음이 충만했다.
제주살이 중 아이들과 함께할 만한 곳을 찾는다면 나는 주저 없이 이곳을 추천한다. 날씨에 구애받지 않는 실내 공간, 직접 만들고 체험하는 즐거움 그리고 집으로 가져와 일상의 밤을 밝혀줄 무드등 같은 기념품까지.
오늘 하루가 내게 가르쳐준 건 단순했다.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은 언제나 특별하며 그 순간을 어떻게 채우느냐에 따라 평범한 하루가 오래도록 반짝이는 별빛이 된다는 것. 언젠가 다시 이곳을 찾게 된다면 또 다른 체험을 통해 새로운 추억을 마음속에 새기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