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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을이 선물해 준 가장 빛나는 순간

+52일

by Remi

제주살이에서 가장 행복한 시간을 꼽으라면 나는 주저 없이 이호테우해변의 노을을 말한다. 하루가 저물어가는 바다 위에 붉고 은은한 빛이 드리울 때 그 풍경은 단순한 아름다움을 넘어 내 삶의 결을 환하게 밝혀준다.


지난번 남편이 제주에 왔을 때 꼭 보여주고 싶으면서도 결국 함께 가지 못한 아쉬움이 남아 있었다. 그래서 이번 휴가에는 마음속에서 오래 빚어온 바람을 꼭 이루고 싶었다. 마침내 남편과 나란히 앉아 이호테우의 노을을 바라보는 순간 나는 속으로 작은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오래 기다린 만큼 그 풍경은 더욱 찬란하게 다가왔다.


이호테우해변의 노을은 말로 표현하기가 쉽지 않다. 해가 천천히 수평선 너머로 내려앉을 때 바다는 붉은 비단처럼 부드럽게 반짝이며 하늘과 맞닿는다. 그 시간에는 아이들의 웃음소리도, 바람의 속삭임도, 파도의 출렁임마저 잠시 멈춘 듯하다. 모두가 같은 방향을 향해 고요히 서 있는 풍경 속에서 나도 그들과 함께 빛에 잠긴다.


노을 앞에서는 마음이 복잡하지 않다. 그리움도, 서글픔도, 감사도 잠시 스쳐가지만 결국 남는 것은 오직 행복이다. 남편의 어깨너머로 스며드는 붉은빛을 바라보며 함께 이 순간을 살아내고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큰 위로인지 새삼 느낀다. 제주살이의 하루하루가 때로는 낯설고 고단할 때도 있지만 이 노을이 있기에 나는 다시 단단해진다.


누군가 제주에 온다면 나는 망설임 없이 이 풍경을 선물하고 싶다. 말로 전하지 않아도 되는 위로, 눈빛 하나로 충분히 건네지는 감동. 이호테우해변의 노을은 단순한 해안 풍경이 아니라 삶을 버티게 하는 가장 순수한 빛이다. 그래서 나는 안다. 제주에서 가장 행복한 시간은 바로 이호테우해변 노을을 마주하는 순간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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