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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학기의 문 앞에서

+54, 응원해

by Remi

오늘은 아이들이 그렇게 기다리던 개학 첫날이다.
제주에 발을 내디딘 지 벌써 두 달, 이 낯설고도 특별한 땅에서 새로운 학기가 열린다. 지난 학기는 단지 전학생이라는 이름표를 달고 조심스레 교실 문턱을 넘어야 했던 시간이었다. 방학을 한 달 남짓 앞두고 전학을 왔기에 친구들과 마음을 트기도 전에 짧은 시간이 흘러가 버렸다. 그 어색함은 아이들의 마음에 작은 주름처럼 남아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번 학기는 다르다.
책도 모두 새로 장만했고 노트의 첫 장처럼 하얗고 설레는 출발선 위에 서 있다. 무엇보다 아이들 스스로 선택한 방과 후 수업들이 기다리고 있다. 제주 지역의 일부 학교에서는 방과 후 프로그램을 무료로 제공하기도 하는데 부모의 부담을 덜어주면서 아이들에게는 더 많은 배움의 기회를 열어준다. 승마, 미술, 농구, 건축 같은 활동들이 교과서 너머의 세계를 보여주고 아이들에겐 친구들과 어울려 웃음 짓는 시간이 되어줄 것이다. 수업이 끝나자마자 이어지는 다채로운 활동의 흐름은 단조롭던 하루에 리듬을 불어넣는다.

아침, 두 아이의 발걸음은 유난히 가볍고 경쾌했다. 아직 낯설기도 한 학교 담장을 지나며 아이들의 눈빛은 묘하게 반짝였다. 마치 새로운 항해를 앞둔 선원들처럼 기대와 두려움이 뒤섞인 빛이었다. 그 모습이 내겐 한 편의 풍경화처럼 다가왔다. 구름 사이로 스며드는 햇살처럼 투명하고 부드러운 바람처럼 순수했다.

나는 문득 생각한다.
낯설었던 지난 시간을 밀어내고 이제는 이곳에서 진짜 아이들의 이야기가 시작되는구나. 새 학기라는 이름 아래 책 속에서 배우는 지식과 교실 안에서의 웃음 그리고 운동장에서의 뜀박질이 차곡차곡 쌓일 것이다. 그것은 곧 제주살이의 새로운 문장이 되어 앞으로의 날들을 빛나게 채워나갈 것이다.

이제는 불안보다는 설렘으로 어색함보다는 환한 웃음으로, 주저함보다는 용기로 살아가기를. 아이들의 작은 발걸음이 언젠가 큰 날갯짓이 될 그날을 기다리며 나는 오늘도 묵묵히 그 뒷모습을 지켜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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