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 시간이 만든 또 다른 풍경
일요일 오후, 우리는 성이시돌목장을 찾았다.
참 오래된 이름. 내 마음 어딘가에는 늘 고요히 자리하고 있었지만 막상 다시 발걸음을 옮기기까지는 긴 시간이 흘렀다.
6년 전, 그곳에는 남편과 아이들이 함께 있었다. 두 손 꼭 잡고 언덕을 오르던 작은 발자국, 말의 움직임 하나에도 눈을 반짝이며 감탄하던 아이들의 목소리. 그때의 장면이 아련하게 떠올라 발걸음마다 겹쳐졌다.
이번에는 코코도 함께 갔다. 낯선 냄새와 풀 내음을 맡으며 작은 발로 초원을 뛰어다니는 모습이 이곳 풍경에 새로운 색을 더했다. 남편의 빈자리는 묘하게 공허했지만 동시에 지금의 우리 셋과 한 마리의 강아지가 만들어내는 시간은 다른 결로 깊었다. 마치 삶이 우리에게 또 다른 조각을 내어준 듯.
목장 한쪽은 공사 중이었다. 그 탓에 6년 전처럼 넓게 걸어 다니며 풍경을 온전히 누리지는 못했다. 그 사실이 조금은 아쉬웠다. 그때는 돌담길 따라 걷는 모든 순간이 탐험 같았는데 이번에는 울타리와 차단선이 그 길을 막았다. 그래도 여전히 바람은 부드럽게 불었고 초원 위 말들은 천천히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아이들은 말 앞에 서서 한참을 바라보다가 6년 전처럼 호들갑을 떨며 신기해하지는 않았다. 나지막이 “말 크다”라고 말하곤 금세 다른 데로 시선을 돌렸다. 나는 그 모습이 조금은 서운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아이들이 이렇게 자랐구나 실감하게 되었다. 예전엔 모든 것이 놀라움이었고 세상은 끝없는 질문으로 가득했는데 이제는 어쩐지 마음의 여유 속에서 풍경을 담는 듯했다.
그 변화를 바라보며 문득 나 자신도 돌아보았다. 6년 전 나는 무얼 보았을까. 아이들과 함께 있다는 사실만으로 벅찼고 사진으로 그 순간을 붙잡으려 애썼던 것 같다. 지금은 조금 다르다. 사진보다 마음으로 남기려 하고 소유보다는 흘러가도록 두는 법을 배워가고 있다.
성이시돌목장은 이번에도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시간이 흘러도 이곳은 여전히 너를 품는다’고. 다만 내가 달라졌을 뿐이다. 아이들이 커가듯 나도 함께 변해가고 있음을 이 목장이 조용히 일깨워주었다.
돌아오는 길에 아이들은 금세 다른 얘기를 나누며 웃고 떠들었다. 코코는 피곤했는지 차 뒷자리에서 고개를 푹 떨구고 잠들었다. 나는 창밖으로 스쳐가는 초록빛 풍경을 바라보며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이 시간도 언젠가 또다시 오래된 기억 속에서 꺼내보게 되겠지. 그때의 나는 또 어떤 마음으로 오늘을 떠올릴까.
지나온 6년, 그리고 앞으로의 6년이 이 풍경 안에서 천천히 이어져 가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