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 이방인의 생각
제주살이를 시작하기 전, 나는 여러 온라인 카페와 유튜브를 통해 제주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접한 적이 있었다. 외지인에겐 다소 냉담하다거나 진정한 친분을 쌓기까지 긴 시간이 필요하다는 의견들이 그것이었다.
실제로 제주 사회에는 오랫동안 형성된 공동체 의식이 존재한다. 섬이라는 지리적 특성상 외부의 출입이 제한적이었던 시절이 길었기에 사람들 사이의 신뢰와 유대가 무엇보다 중요했다. 그로 인해 외지인에게 처음부터 마음을 활짝 열기보다는 시간을 두고 그 사람이 어떤 태도로 살아가는지를 지켜본 후 관계를 맺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그것이 결코 배타성만을 뜻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진심이 전해지면 깊이 있는 환대와 도움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나는 이곳에서 몸소 경험하고 있다.
제주에 온 지 64일째 되는 오늘, 내가 가장 크게 느끼는 것은 고마운 사람들의 존재다. 나는 육지에 있을 때에도 늘 감사의 마음을 전하려 노력했다. 매일 아침 핸드드립 커피를 내리며 고마운 이웃이나 지인들에게 한 병씩 담아 선물하는 것이 내 작은 습관이었다. 제주에서도 이 습관을 이어가 알바하는 곳에 두 차례 커피를 전했는데 그 사소한 정성에 뜻밖의 보답이 돌아왔다.
어느 날, 새벽부터 우리 집 마당에 들어와 제초를 해주신 분이 계셨다.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는 따뜻함이 느껴졌다.
또 한 번은 집주인에 대해 오해가 생겨 마음이 무거웠던 날이 있었다. 마당에 벌레가 많다고 말씀드렸을 때 문자로는 다소 시니컬한 반응을 보여 서운했지만 이른 아침 출근길에 일부러 들러 살충제를 뿌려주셨고 집안에서 커피를 마시면서 처음으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어봤다. 주인분의 모습에서 나는 무심한 듯 세심한 제주 사람들의 정을 읽을 수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웃으로 지내는 한 분은 내게 큰 울림을 주셨다. 낯선 땅에서 만난 그는 내게 주택살이의 현실과 집 관리법, 이웃과 더불어 살아가는 길을 진심으로 알려주셨다. 지금 우리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의 장점과 이 동네의 정취까지도 일러주셨다. “밤늦게라도 힘들면 괜찮으니,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연락하라”는 말 한마디가 이방인인 나에게는 커다란 용기가 되었다. 그분은 마치 아버지처럼 따뜻했고 그래서 오히려 마음이 더 깊이 끌렸다.
알바하는 곳의 사장님과 매니저님 또한 큰 은혜를 베풀어주셨다. 아이들을 유난히 예뻐해 주시며 아이들과 관련된 일이라면 두 발 벗고 나서 도와주셨다. 육지에서조차 쉽게 얻기 힘든 배려와 따뜻함을 이곳에서 느낄 수 있다는 것은 내게 큰 위로가 되었다.
사람과의 인연은 억지로 맺으려 애쓴다고 이어지는 것이 아니다. 다만 진심을 담아 하루하루를 살아가다 보면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손 내밀어주는 이들이 곁에 있다. 제주살이 두 달째, 나는 그것을 온전히 체험하고 있다. 고마운 사람들이 곁에 있다는 사실이야말로 낯선 땅에서의 생활을 가장 든든하게 지탱해 주는 힘임을 새삼 깨닫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