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 팥빙수와 블랙티, 그리고 아이들의 웃음이 머문 카페
제주 애월의 길을 따라가다 보면 하얀 건물이 소박하게 서 있는 작은 공간이 눈에 들어온다. 그곳의 이름은 꽃향유. 처음 방문했던 날의 따스한 여운이 남아
아이들과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두 번째라는 사실이 주는 안도감은 묘하게도 낯섦 속의 친근함을 불러왔다.
문 앞에서 바람에 흔들리던 드림캐처가 아이들의 시선을 잡았다. 반짝이는 조개껍질 조각들이 햇살에 부서지며 바람의 노래를 따라 춤추듯 흔들렸다. 그 앞에서 아이들은 잠시 발걸음을 멈췄고 나는 그 순간을 카메라 대신 마음속에 깊이 새겼다.
안으로 들어서자 익숙한 풍경이 눈에 스쳤다. 꽃무늬 쿠션이 놓인 소파, 드라이플라워와 작은 액자들, 그리고 은은하게 퍼지는 커피 향. 마치 오래전부터 알던 집에 다시 돌아온 듯한 느낌이었다.
아이들은 팥빙수를 주문했다. 첫 숟가락을 맛본 아들이 “먹어본 것 중에 제일 맛있다”라며 눈을 반짝였다. 고소한 팥과 부드러운 얼음이 어우러진 그릇 앞에서 아이들은 순식간에 행복해졌다. 나는 따뜻한 블랙티를 마시며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차의 은은한 향과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함께 어울려 한 장의 풍경처럼 마음에 남았다.
빙수를 다 먹은 딸은 매장 한쪽에 놓여 있던 색연필을 발견하더니 사장님께 도화지를 부탁했다. 잠시 후, 작은 손끝에서 그려지는 선들이 꽃향유의 오후를 물들였다. 놀라운 건 색연필조차 이곳의 감성을 닮아 있었다는 것이다. 단순한 그림 도구가 아니라 공간의 따뜻함을 이어주는 또 다른 매개체처럼 느껴졌다.
아이들은 매장 한쪽에 전시된 작은 엽서와 소품에도 큰 흥미를 보였다. 색감 고운 일러스트가 그려진 엽서를 하나씩 집어 들며 “엄마, 이건 꼭 우리 집에 두자” 하고 말하는 모습이 귀여웠다. 나 역시 고개를 끄덕이며 몇 장을 골랐다. 단순한 종이 한 장이지만 그 속에는 여행의 기억과 감정이 오래도록 남아 있을 것 같았다.
벽에 걸린 원피스들을 보며 딸아이는 “엄마, 이 옷 입으면 예쁠 것 같아” 하고 말했고 나는 웃으며 손끝으로 천을 스쳤다. 그 순간 카페가 단순히 차를 마시는 곳을 넘어 우리 가족에게 새로운 이야기를 건네고 있다는 걸 느꼈다.
꽃향유는 단순히 예쁜 소품을 파는 가게도 그저 커피를 파는 카페도 아니다. 이곳은 시간이 천천히 흐르는 법을 가르쳐주는 공간이다. 아이들과 함께 머무는 동안 우리는 대화를 나누고 서로의 눈빛을 마주하며 소소한 웃음을 주고받았다. 일상에서는 쉽게 놓쳐버리는 순간들이 이 작은 공간 안에서 차곡차곡 쌓였다.
제주 여행지에는 수많은 카페가 있지만 다시 찾고 싶은 곳은 많지 않다. 꽃향유는 그중 하나다. 아이들과 함께한 두 번째 방문은 첫 번째보다 더 따뜻했고 더 오래 기억에 남을 순간이 되었다.
문을 나서며 아이들이 말했다.
“엄마, 우리 다음에 또 팥빙수 먹으러 오자.”
나는 말 대신 미소를 남겼다. 꽃향유라는 이름처럼 이곳은 우리 가족의 하루를 향기로 물들이는 작은 그릇이자 오래도록 간직될 이야기의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