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아물감, 오감놀이가 선물한 몰입의 시간
물감 냄새가 코끝에 닿을 때면
그 시절, 작은 식탁 위에서 펼쳐졌던
우리만의 미술관이 떠오른다.
전문가는 아니었지만 엄마표 DIY 미술놀이에
혼신을 다하던 날들이 있었다.
오감놀이며 만들기, 물감놀이까지
재료를 손질하고 물감을 짜는 일마저도 즐거웠던 시간.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가장 큰 성과였다.
하지만 한때는 고민도 있었다.
미술 감각이라곤 하나 없는 엄마가
과연 아이에게 도움이 될까?
유명한 퍼포먼스 미술학원을 찾아 수업을 시켜봤다.
전문가의 손길이 닿으면 더 좋을 거라 믿었기에.
하지만 너무 완벽하게 짜인 수업 방식과 선생님의
손길이 많이 가서인지 아들은 흥미를 잃었고
결국 수업을 거부했던 기억이 있다.
결론은 집에서 엄마표가 최고였다.
돈 들여 학원에 보내느니
차라리 집을 미술관으로 만드는 편이 낫겠다는 생각.
마음껏 사용할 수 있는 도화지와 도구들,
엄마의 따뜻한 눈빛과 느슨한 시간 안에서
아이들은 훨씬 더 창의적이고 자유로웠다.
특히 기억에 남는 건,
크레파스와 물감을 함께 조심스럽게 시작했던 유아 물감놀이.
미술학원 살짝 다녀본 아들은
매일 물감 타령을 하며 욕실로 향했다.
화장실 바닥에 앉아 유아물감을 펴고
한참을 색으로 감정을 표현하던 작은 손.
그 시절 우리 집엔 작은 예술이 자라고 있었다.
오빠가 어린이집 간 사이,
혼자만의 시간이 생긴 딸랑구는
조용히 물감 놀이를 시작했다.
작은 손으로 생애 첫 매니큐어를 칠해보고,
스포이드를 꾹 눌러 색을 뿌려보며
세상 진지하게, 또 신나게
물감의 매력에 푹 빠진 하루.
그런데 이 아가, 예술혼 못지않게
지시력도 폭발 중이다.
“이거! 빼! 까! 줘!”
18개월 꼬마 악동의 명령이
엄마를 쉴 틈 없이 움직이게 한다.
물감은 좋지만 엄마는 벌써 세 번째 호출당한 상태.
미술놀이인가, 체력놀이인가.
이것이 바로 현실 육아,
그리고 사랑스러운 딸의 예술세계.
물감놀이 10분 만에 스케치북 초토화시키고
크레스 파로 엄마빠 그리는 아이들~
아들은 '엄마는 예쁘니까 핑크색으로 그렸어'라고 하는데
아들 눈에 엄마가 그냥 핑크 돼지지.
그래도 아들이 그린 우리 가족 첫 그림이니 소장하기
하원 후 밥 먹이고 같이 청소하고 본의 아니게
물감놀이가 일상이 되었네?
시작은 각자 좋아하는 캐릭터 색칠이었으나
결국 셀프 페이스페인팅까지 하는 개구쟁이들
예술투혼 끝나면 또 씻기고 로션 바르고
정말 하루를 24시간 이상으로 보냈는 같은 기분이었다.
왜 이렇게 부지런 떨고 일을 벌였는지~
엄마는 아이가 뱃속에 있을 때부터 모성애 폭발
한다고 했는데 나의 도치성격은 꽤 오래갔다고 한다.
이날도 그들의 미술공간에서 몇 시간을
불태운 남매. 셀프 페이스 페인팅도 하고 인형
물감목욕도 시키고 액체 괴물물감놀이 끝나고 목욕한 시간!
이 시기엔 유치원에서 낮잠을 안 재우기 때문에
하원 후 물감놀이로 영혼 탈탈 털어주면 꿀잠
자는 남매가 정말 기특했지.
예전에 살았던 집은 방마다 베란다가 있어서
활용하기 좋았다. 대형 스케치북만 갖다 붙이면
한 시간째 자기들만의 퍼포먼스세계에 빠진다.
엄마가 만든 미술공간 너무 좋다고 '우아우아'
연발하는 남매. 엄마는 물감과 크레스파스,
색연필을 제공하고 옆에서 "오구오구, 우쭈쭈,
세상에" 칭찬을 날려주면 끝.(물론 뒷정리는
번거롭지만 아이들이 좋아한다면
이 한 몸 받쳐 뭐든 해줬던 지난날들!
지금은 자다 깨어나도 난 못해)
분리수거하던 중, 빈 박스 하나가 눈에 띄었다.
딱 봐도 뭔가 만들고 싶은 욕구를 자극하는 크기.
“얘들아, 우리 자판기 만들어볼까?”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아이들은 눈을 반짝였다.
집 안 여기저기서 짜투리 재료들을 끌어모으고,
풀칠하고 테이프 붙이고, 단추 대신 뚜껑도 얹고.
허술하지만 정성 가득한 우리 집 자판기 완성!
조잡해도 아이들은 신기한 듯 줄 서서 뽑기 놀이에 푹 빠졌다.
무엇보다 둘 다 너무 좋아해줘서, 그걸로 오늘은 성공.
완벽하지 않아도 함께 만든 시간이 더 빛나는 법이니까.
미술학원 안 가도 미술 키즈카페가 있었다.
한두 시간 아이들과 수업해 주는 선생님도 계시고
남는 시간엔 모래놀이를 즐길 수 있는 곳 얼마나 좋아.
이게 바로 만원의 행복이 아닌가.
어릴 땐, 특히 취학 전엔 집에서 풍부한 스케치북과
미술도구를 제공하고 자기 맘대로 맘껏 놀게 하는 게
창의성의 최고봉이다! 미술학원은 엄마가 원해서
보내는 것보단 아이가 원해서, 재능이 보일 때 학원으로
보내주기로!
미술교육은 그 시작이 굳이 학원일 필요는
없다. 어릴 때 휴지를 한가닥한가닥 찢던 것도
손바닥에 물감을 묻혀 벽에다 찍던 것도
아이에게는 모두 신나고 훌륭한 미술 놀이다.
표현력과 창의력을 키우는 것이 미술의 본질이라면,
가장 좋은 시작은 바로 일상 속에서 찾을 수 있다.
종이를 오리고, 색을 칠하고, 클레이를 주물럭거리며
아이의 마음을 색으로, 손끝으로 펼치게 하는 시간.
그 모든 과정을 함께하며 즐기는 것,
그게 바로 우리 집에서 시작되는
엄마표 미술놀이다.
작고 서툴지만,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남매의 미술 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