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는 수도 없이 다녀온 도시다.
그럼에도 늘 새롭고, 익숙한 듯 낯선
매력을 품고 있다. 이번에 찾은 읍천항과 양남 주상절리는 그런 경주의 또 다른 얼굴이었다.
느리게 걷는 이들에게 주는 경주의 특별한 선물이다.
바다 냄새가 불어오는 읍천항
여행은 읍천항 무료 주차장에서 시작됐다.
주차장 뒤로 펼쳐진 공원과 몽돌해변
그리고 눈부시게 파란 바다. 숨을 크게
들이마시자 코끝에 염분 섞인 시원한
바람이 밀려왔다.
반려견과 함께 걷기에도 좋은 곳이었다.
잔잔한 바람, 졸졸대는 파도,
그리고 발밑의 자갈길.
그중에서도 유독 인상 깊었던 건 맨발 산책로였다.
"엄마! 신발 벗어도 되?"
말릴 새도 없이 아이들이 먼저 자갈길 위에 올라섰고
나도 따라 신발을 벗었다.
자갈이 발바닥을 콕콕 자극하는 느낌이
시원하면서도 짜릿해서 아이들이 깔깔 웃으며
"발이 살아나는 기분이야!" 라고 감탄했다.
신발을 벗고 자갈 위를 걷자 온몸으로 전해지는 자극에
괜히 오장육부가 정화되는 듯한 기분마저 들었다.
내 발이 이렇게 소중하게 느껴진 건 참 오랜만이었다.
맨발걷기, 작은 체험이지만 온몸으로 자연을 느끼는 시간이었다.
벤치에 앉아 쉬기도 좋고, 정자 그늘 아래 잠시 숨을 고르기에도 딱 좋은 곳.
전날의 폭우가 무색하게 맑게 갠 하늘과 반짝이는 바다는 여행의 시작을 반짝이게 만들어줬다.
읍천항 곳곳엔 작고 귀여운 포토존이 있었다.
특히 ‘읍천항’ 초성 조형물은 지나칠 수 없는 귀여움.
초성 앞에 하나씩 서서 인생샷을 남기기에 딱이었다.
등대를 배경으로 셔터를 누를 때마다
오늘은 하늘이 우리 편이구나 싶었다.
읍천항에서 오른쪽으로 난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주상절리군’을 향한 파도소리길이 펼쳐진다.
걸어서 30분쯤 걸리는 길인데 풍경이 너무 아름다워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 모를 정도였다.
길 양옆으로는 시원한 소나무 그늘이 펼쳐져 있고
중간중간 쉴 수 있는 벤치도 있어 더위 속에서도
무리 없이 걸을 수 있다.
그리고 중간에 만난 출렁다리.
이름처럼 약간 출렁이긴 했지만
그 흔들림마저 재미로 느껴졌다.
아이들에겐 짜릿한 경험, 어른들에겐 사진 한 장 남기기 좋은 포인트.
부채꼴 주상절리, 자연이 만든 기적
출렁다리를 지나자 드디어 나타난
이번 여행의 하이라이트, 부채꼴 주상절리.
동글게 펼쳐진 주상절리의 자태는
한참을 멍하니 바라보게 만들 만큼 압도적이었다.
지질학자들이 왜 이 풍경에 감탄했는지
단번에 알 수 있었다. 마치 잘 짜인 조각 작품처럼, 자연이 만든 질서와 아름다움은 감탄이 절로 나왔다.
아이들과 함께 걸어간 주상절리길은
그 자체로 지질학 자연학습장이었다.
“엄마, 이 돌은 왜 이렇게 생겼어?”
“이건 부채 모양이야! 저건 삐뚤빼뚤한데?”
설명서 없이도 아이들은 눈으로 보고 몸으로 느끼며
각기 다른 주상절리 모양들을 관찰했다.
특히 부채꼴 주상절리 앞에선
저절로 "우와" 하는 감탄이 터져 나왔다.
자연의 조형물이 아이들의 눈에도 얼마나
경이롭게 보였을까.
마지막으로 오른 주상절리 전망대.
엘리베이터를 타거나 계단을 통해 올라갈 수 있는데
무더운 날씨엔 엘리베이터가 은혜처럼 느껴졌다.
전망대 1층엔 시원한 에어컨 바람이 반겨주는
미디어 아트 전시관도 있어 아이들이 특히 좋아했다.
4층 전망대에 오르면 바다가 내려다보이고
주상절리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내려오는 길에 계단 벽면을 따라 전시된
주상절리 사진 작품들도 빼놓지 말고 꼭 구경하길.
작은 전시지만, 산책의 끝자락에 딱 어울리는 여운이다.
낯설지 않은 경주에서
이렇게 색다른 감동을 만날 줄 몰랐다.
읍천항의 고요한 바다와 주상절리의 장엄한 풍경.
그리고 걸음마다 마음을 정화시켜준 길 위의 순간들.
아이들과, 반려견과 함께 걷기에도
혼자 사색하며 걷기에도 너무 좋았던
경주 읍천항 주상절리 산책코스.
특별한 놀이기구 없이도 큰 테마파크 없이도
아이들이 오감으로 체험하고 온몸으로 걸으며
즐거워했던 시시간이ㄷㅏ.
맨발로 자갈길을 걷고 흔들리는 다리를 건너고
파도 소리 들으며 자연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아이들의 얼굴엔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