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여행>낮보다 밤이 아름다운 경주

달빛에 물든 동궁과 월지 야경

by Remi

경주를 몇 번을 와도 늘 아쉬움이 남는 건

밤이 아름다운 도시, 경주.

경주를 몇 번을 와도 늘 아쉬움이 남는 건

야경을 제대로 누려보지 못해서였다.
마음먹고 경주에서 이틀을 묵었다.
그리고 드디어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경주의 밤을 만났다.

저녁을 든든히 먹고 슬쩍 산책 삼아 걸음을 옮긴 곳,
그곳은 바로 동궁과 월지.


“이곳이 정말 옛날 궁궐이었을까?”
연못 위로 번지는 조명, 물속에 비친 건물의 실루엣, 그리고 천천히 가라앉는 해.
경주의 밤은 그렇게 낮보다 천천히 피어난다.



해 질 무렵, 나무 사이로 붉게 타오르던 노을은
하루를 아주 특별하게 만들어줄 것 같은 예감이었다.


예전엔 ‘안압지’라 불렸다는 이곳은
통일신라시대, 귀한 손님을 맞고 나라에

경사가 있을 때 연회를 열던 별궁이었다.
건물은 오래전에 사라졌지만 연못은 여전히

제자리에 남아 그때 그 영화를 조용히

기억하고 있었다.


왜 이름이 안압지라고 부르고
동궁과 월지라고 부를까?
나는 안압지가 더 입에 찰싹 붙는데..

조선시대에 건물이 모두 사라지고
연못만 남은 터에 기러기와 오리 무리가
살고 있어 안압지라고 부르던 것을
동궁과 월지로 바꿔 부른다고 한다.


이제는 동궁과 월지라 불리는 이 이름엔
달이 비치는 연못이라는 뜻이 담겨 있다.
이름부터가 이미 밤을 위한 장소.
그래서일까, 이곳은 낮보다 밤에 더 빛난다.

산책로를 따라 걸으며 해가 지기를 기다렸다.
점점 어두워지면서 하나둘씩 켜지는 조명.
빛은 물 위에 머물렀고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마저 풍경이 되었다.


어느 순간, 사람들이 하나 둘 몰리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삼각대를 세우고 누군가는 사랑하는

사람의 손을 꼭 잡고 다들 이 풍경을 오래도록

기억하고 싶은 듯했다.

연꽃은 아직 피지 않았지만
이 연못은 무엇이 없어도 충분히 아름다웠다.
조용히, 꾸밈없이, 그냥 그 자리에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마지막까지 발길이 떨어지지 않아
몇 번이고 뒤돌아보며 셔터를 눌렀다.
하늘은 분홍빛으로 물들었고 구름 사이로

새 한 마리가 스쳐 지나갔다.
그 장면은 마치 영화 속 한 장면 같았다.

"아름다운 것은, 쓸모 있는 것만큼이나 유익하다네.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할지도 모르지."
– 『레 미제라블』 중에서.


동궁과 월지.
그 이름처럼 달빛이 연못을 쓰다듬는 순간
나는 경주라는 도시를 다시 사랑하게 되었다.


연못을 뒤로하고 천천히 걷다 보니
밤하늘 아래 조용히 빛나는 첨성대가 보였다.

신라의 별을 관측하던 곳,
천 년 전에도 밤하늘을 올려다보던 이들이

있었다는 게 어쩐지 뭉클했다.


형태는 단순하지만 보는 방향마다

다른 분위기를 품고 있었다.
조명 아래 부드럽게 빛나는 모습은

마치 시간을 거슬러 온 듯했다.

낮에는 역사의 한 페이지 같았던 첨성대가
밤이 되자 살아 숨 쉬는 듯한 느낌.
아이들과 함께 와서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첨성대 앞 조용한 꽃길을 걷다가
무심히 하늘을 올려다봤다.
보름달이, 마치 우리를 따라오는 듯

영롱하게 떠 있었다.


"달님에게 소원 빌었어?"
"응. 근데 안 이뤄졌어."
장난스럽게 웃으며 말하는 아이 얼굴이

그렇게 귀여울 수가 없다.

그날 밤,
탕후루 가게는 문을 닫았고
소원은 아직 이뤄지지 않았지만
우리에겐 달빛에 적신 경주의 기억이 남았다.

다시 와도 좋겠다.
경주는 늘 다시 오고 싶은 밤을 품은 도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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