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음표 속으로

by 따뜻한 다경씨

방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다 허공 속으로 양손을 펼친다. 공중에 무안히 뜬 손가락을 향해 희고 검은 음표들이 탕탕거리며 건너와 내 앞에 마주 서 있다.


피아노를 배우고 싶었다. 스와니 강, 로렐라이 언덕, 메기의 추억이 건반 너머 내 귀로 날아들면 나도 모르게 잠자리 날갯짓하듯 손끝이 서로 스치곤 했다. 로렐라이는 가슴저렸고, 아드린느를 위한 발라드는 솜사탕처럼 부드러웠다. 뻐꾹 왈츠가 선율을 타고 지저귈 땐 나도 뻐꾸기가 되어 포근한 둥지로 날아들었다.


어린 시절 피아노가 있는 집이 부러웠다. 집집마다 피아노 있는 시절이 아니다 보니 빠듯한 우리 집에 피아노가 있을 리 만무했다. 먼지 하나 없이 반짝거리는, 흑진주처럼 빛났던 검정색 피아노. 그 위로 은구슬 굴리듯 튕기는 옆집 언니의 가느다란 열 손가락이 창으로 비켜 들어온 잔광보다도 눈부셨다.


중학교 2학년 때 처음으로 피아노를 배울 기회가 생겼다. 피아노에 대한 짝사랑을 일기장한테만 털어놓았는데 짓궂은 오빠가 몰래 읽은 후 엄마에게 이야기했고 덕분에 집으로부터 삼십 여 분 떨어진 교습소를 다니게 되었다.


알사탕을 녹이듯 달콤하고 부드러운 건반 위의 시간, 그것은 채 석 달을 가지 못했다. 체육시간에 친구들과 배구 연습을 하다 오른손 넷째 손가락이 공과 세게 부딪치면서 시퍼렇게 멍들고 퉁퉁 부어오른 것이다. 그때 바로 병원으로 가야 했는데 낫겠지 하며 내버려 둔 게 잘못이었다. 손가락 마디 윗부분이 볼록 솟은 채 펴지지 않았고 병원에 갔을 땐 이미 굳어 도리가 없다고 했다.


울퉁불퉁 못난이가 되어 버린 넷째 손가락. 그 손가락으로 건반을 누르는 게 창피했다. 피아노 앞에 앉으면 넷째 손가락만 도드라져 오므라들기만 했다. 손가락이 가늘고 섬세해 건반 위가 잘 어울린다고 했던 선생님도, 언덕 위에 앉아 고운 머리 빗으며 마술처럼 부르는 로렐라이 선율도, 가슴 속으로 수없이 퉁탕거렸던 아드린느를 위한 발라드도 모두 동산 수풀 우거진, 메기의 추억 속으로 가라앉아 간곳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그렇게 스무 해 동안 잊힌 피아노, 그러다 벼르고 별러서 중고로 산 피아노가 거실 한 쪽에 자리를 잡던 날, 바이엘 상권을 펴고 도레미 연습을 하는, 여덟 살 아들의 건반 위로 사라져버린 스와니 강과 메기의 추억이 겹친다. 하지만 이미 나는 달리는 열차와 함께 지나쳐 와 버렸다고 생각했다.


아들은 음악을 좋아해 고등학교 1학년 겨울방학 때까지 피아노를 배웠다. 십 여 년 흐른 지금도 틈틈이 피아노를 치는데, 그런 것들이 줄곧 나의 내부를 향해 끊임없이 물을 주고 있었는지 모를 일이다.


딸은 초등학교 6학년 때 체르니 30번을 끝으로 피아노 배우는 것을 멈추었다. 레슨 선생님이 도저히 못 가르치겠다고 고개를 절래 흔들고서야 알았다. 흥미도 재능도 없다는 것을. 피아노만큼은 가르치고 싶었던 맘이 내 부질없는 욕심임을 깨달았다.


그렇게 아이들은 성인이 되었고 피아노도 늙어버렸다. 더러 나도 피아노 의자에 앉을 때도 있었다. 치기를 작심하고 앉은 적은 없고 건반 위에 내려앉은 먼지를 닦는 게 전부였다. 그러면 반색이라도 하듯 퉁탕 또로롱 소리가 나기도 하는데 무심한 손가락에 이내 문이 닫히고 만다.


어느 날 책장 아래에서 발견한 낡은 바이엘 교본. 재미삼아 그 책을 펼쳐놓고 건반을 꾹꾹 눌러보고 있는데 그 모습을 의미심장하게 바라보던 아들이 대뜸 피아노를 가르쳐 주겠다고 한다. 악보도 볼 줄 모르고 손마디도 딱딱하게 굳은 나이에 무슨 피아노냐며 웃고 말았지만 한편으론 녀석 말을 붙잡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것을 눈치 챘는지 이튿날 성인 바이엘 2권과 재미있는 가요집 하나를 사 갖고 온 녀석.


등살에 못 이기는 척 피아노 앞에 앉아 양손을 올리고 건반놀이를 해 보는데 처음 배울 때처럼 가슴이 쿵쾅거린다. 손가락을 교대로 누를 때마다 마술 피리처럼 음이 울렸던 피아노. 아리랑, 젓가락 행진곡을 뚱땅뚱땅 흉내 내던 그때가 주마등처럼 스치면서 손가락이 음표 속으로 차츰 물들기 시작한다.


넷째 손가락이 못난이가 된 뒤로 마른 나뭇잎처럼 푸석푸석 말라보였던 피아노. 건반이 선율을 타고 사르륵 움직일 때마다 마른나무 둥지에 물을 준 것처럼 넷째 손가락도 건반 위를 둥둥 떠다닌다. 어쩌면 그 손가락도 흐르는 세월 속에 높낮이 없는, 잔잔한 마음이 되어 돌아와 준 것인지도 모르겠다.


더러 박자를 헤아리지 않는다고 아들에게 혼날 때도 있지만 늦바람이 용마름을 벗긴다는 속담처럼 하루에도 몇 번씩 피아노 앞에 앉아 연습한 덕에 막 1권을 끝내고 2권으로 들어가는 중이다. 꿈속의 고향, 별 하나 나 하나, 즐거운 나의 집을 손이 닳도록 치고 있으면 수십 년 간 가라앉았던, 장미꽃 만발한 메기의 추억 속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만 같다.


새로운 것을 배운다는 것은 세월에 밀려 지내는 동안 까맣게 잊고 살았던 뭔가가 가슴 벽을 흔들어 대는 일이 아닐까. 설령 그것이 하나의 선으로 희미하게 남아있을지라도 어느 추운 겨울, 따뜻한 햇살이나 싱싱한 빗방울이 되어 오래토록 내 곁에 머물 수도 있을 것이다.


캄캄한 어둠 속으로 종종걸음 치듯 건너오는 피아노, 허공에 떠 있는 열손가락이 오늘 밤도 마술 피리 같은 희고 까만 음표 속으로 낱낱이 물들어간다.


커버사진 출처: https://blog.naver.com/yeonhuiiii/2233629086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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