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9시

by 따뜻한 다경씨

커튼 자락이 바람에 부푼다. 마치 하얀 돛폭처럼 부드럽게 솟아 있다. 아무도 없는 고요한 바다에 또 다른 돛폭 하나도 출렁이는 물결 향해 저 멀리 달음박질치고 있다.


망망대해다. 따끈한 커피 한 잔 싣고 이음새 없이 펼쳐진 바다를 보고 있으면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처럼 알 수 없는 무언가가 밀려올 때 있다.


어디서 닻을 내릴지, 무엇을 할지 정해진 것은 없다. 마음 닿는 항구에 내려발길 가는 데로 걷다 보면 멈춰 서게 될 곳이 생길지 모른다. 머무를 곳이 생기지 않아도 바다에 괸 고요를 할퀼 사람이 없는데 아무려면 어떨까.


남편과 딸이 나가고, 아들 녀석도 일상으로 돌아간 월요일 아침 야무진 삐리릭 소리가 현관문도 세상도 닫아버렸다.


고즈넉한 바람이 창문을 흔들고 지나간다. 가벼운 바람에 풍덩 빠져도 좋을 월요일 아침, 하얀 김이 모락모락 나는 따뜻한 커피에 입술을 담그고 초록이 울창한 창밖을 바라보고 있으면 그제야 빗장에 걸어두었던 마음이 하나둘 문을 열고 나오기 시작한다. 기다렸다는 듯이.


가족과 수다를 떨고 게임을 하고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도 좋지만 혼자 맞이하는 아침도 그에 못지않게 설렌다. 달리 정해놓은 것은 없어도 오전 9시라는 숫자는 잔잔한 수면에 풍덩 조약돌을 튀기는 것처럼 두근거린다. 그런 날이면 햇살에 바싹 마른 옷으로 말끔히 갈아입은 듯 공기마저 새롭고 가볍다.


9시를 맞이하려면 서둘러야 한다. 재바르지 않은 손도 그때는 마법에라도 걸린 듯 빨라진다. 미리 돌려놓은 빨래도 햇볕에 널고, 부산하게 널려진 것도 제자리에 담고, 쌓여 있는 그릇도 후다닥 치우고 나면 분침이 거의 9시를 향한다.


나만의 9시는 따뜻한 커피 한잔, 앉기만 하면 언제든 반겨 줄 노트북, 아무렇게나 긁적여놓은 수첩 한 권이면 족하다. 그들만 있으면 캄캄한 밤도 지새울 용기가 생긴다. 게다가 창으로 들어오는 계절까지 덤으로 모이면 몇 시간이고 수다를 떨어도 지겹지 않다. 다만 그런 아홉 시를 자주 만나지 못하는 게 아쉬울 뿐이다.


일을 하기 전에는 내게 주어진 9시가 소중한 줄 몰랐다, 그때는 종일 혼자인 시간이 많았기 때문이다. 오후에 일을 시작하면서 9시부터 정오까지 3시간 정도 나만의 오전을 가질 수 있는데 그마저도 연로한 친정 부모님이 곁으로 이사 오면서 일주일에 한두 번으로 줄어들었다.


뒤돌아보면 혼자 있는 시간이 넘칠 때도 넘친다는 생각을 못했다. 간혹 지루하거나 외로움이 느껴질 때도 있지만 그보다는 혼자인 시간이 즐거울 때가 더 많았다. 창으로 비켜 들어오는 잔광들도 마주하고, 바람에 몸을 휘는 나뭇가지도 구경하고, 먼 하늘 속으로 달아나는 옛이야기도 추억하며 그 안에 옷을 입히고 색을 덧칠하며 보냈다.


그러다 아이들이 자란 후 수필을 배우게 되었고 그것은 나만의 아침 9시를 기다리는 큰 이유가 되었다. 넘치는 시간에 배웠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지만 그 시간을 자주 만나지 못해 소중한지도 모른다.


아홉 시를 만나면 기다리던 쉼이 생긴 느낌이다. 나무로 우거진 초록 숲길을 천천히 걷고 있다는 생각도 들고, 푸른 바다 한가운데 잔잔히 흐르는 돛단배 한 척을 보는 것처럼 고요한 느낌도 든다.


혼자 있는 것을 왜 좋아할까에 대해 생각해 본 적 있다. 혼자 있는 시간을 좋아하는 나를 보며 성격적으로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닐까 고민하기도 했다. 잘 어울리는 사람을 보면 부러워했고, 어떻게 하면 다른 사람과 잘 어울릴 수 있을지 궁리하기도 했다.


아침 9시를 좋아하는 이유는 나와 이러한 통념 사이에서 갈등할 필요 없기 때문이다. 커피 한 잔과 노트북, 오래된 수첩 한 권에는 사람들 사이에서 부딪치는 긴장이나 애씀을 가지지 않아도 된다.


친구들을 만나거나 모임에 있다 돌아설 때 안개 걷힌 듯 선명해지는 것도 이런 이유이다. 누구를 만나든 긴장과 애씀은 내 몫이기에 바이바이를 외치고 돌아서는 순간 긴장이 사라지며 생기가 차오른다.


언젠가 아이들과 성격검사(MBTI)를 해본 적 있다. 에너지를 얻는 방향을 기준으로 외향과 내향으로 나누는데 나는 내향으로 완전히 치우쳐져 있었다. 저울로 따지면 한쪽이 바닥에 닿을 듯 심하게 기울어진 모습이다. 이런 검사가 모든 것을 말해주는 것은 아니나 성향과 편견 사이에서 고민했던 나를 조금이라도 이해받는 느낌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붐비는 장소보다 조용한 곳을, 많은 사람을 만나기보다 성향 비슷한 한두 명과 조곤조곤 이야기 나누는 것을 좋아했다. 그러다 보니 목소리가 크거나 말이 많은 사람을 대하면 나도 모르게 에너지를 뺏기게 되고, 만나고 싶지 않다는 내면 소리를 듣게 된다.


일도 함께하는 것보다 혼자가, 밖에 나가는 것보다 집에 머무는 것이 편했다. 마음이 불편하면 몸도 쉽게 지치기 때문이다.


다행스러운 것은 남편과 아이들 성향이 나와 크게 다르지 않고 또 세월 속에 크고 작은 부딪침을 겪으며 서로가 가진 성향을 존중하고 이해할 수 있게 된 점이다.


혼자인 아침 9시. 그 시간은 메말랐던 마음이 열리는 신호일지도 모른다. 누구에게나 그런 시간은 있을 것이다. 마음을 열어주는 시간이 언제인지만 다를 뿐.


커튼 자락이 바람에 부푼다. 고요한 바다에 아침을 매단 돛폭 하나가 잔잔한 물결을 헤치며 걸어가고 있다.


커버사진출처 : https://blog.naver.com/pa1048/2216730540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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