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때문에 맛이 감해졌을까. 먹기도 전에 맛이 반으로 줄었다고 투덜거리는 남편 보면서 무조건 맛있다고 할 것을 그랬나 싶다.
이틀 전 처음으로 고등어국을 끓여 보았다. 친정엄마가 추어탕보다 맛있게 끓여 준 게 떠올라 통째 삶아 가시를 발라낸 고등어살에 우거지, 토란 등을 넣어 된장으로 버무린 후 끓였는데 생각했던 그 맛은 간곳없고 비린내만 진동한다. 말이 달지 못한 것인지, 손이 달지 못한 것인지 아무튼 그날 고등어국은 나로 인해 먹기도 전에 빛을 반쯤 잃고 말았다.
말이 약이 될 수도, 독이 될 수도 있는데 나는 독이 되는 말을 달고 산다. 달콤한 양념 넣듯 맛없어도 맛있다고 하면 비린내 대신 얼큰하고 시원한 고등어국이 될 수 있었을 것을. 그토록 말로 나를 빛내겠다고 약속했건만 며칠도 못 가 빛은커녕 쌓인 빚에 빚만 더 늘어났다.
딱 한 달만이라도 찬밥 같은 말 대신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따끈따끈한 말을 하자고 다짐했건만 아랑곳없이 툭툭 튀어나오는 겨울날 사각 도시락에 담긴 찬밥 같은 말들.
돌이켜보면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뱉은 숱한 말들 중 나를 향해 꽃 튀밥 터지듯 함함하게 이야기한 적 몇 번이나 있었을까. 그대 앞에만 서면 작아지는 게 아닌, 내 앞에만 서도 작아져 일찌감치 전의를 상실한 나머지 누구를 대하든 뒤로 물러서기만 했다.
동화 <백설 공주>에는 종일 거울만 들여다보며 세상에서 누가 가장 예쁘냐고 묻는 왕비가 나온다. 왕비는 이미 대답을 알고 있다. 어느 날 거울은 살결도 하얗고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검은 머리를 가진 백설공주를 가장 예쁘다고 말하는데 이때도 왕비는 공주가 자신보다 예쁘다는 것을 알고 있다. 왕비의 심리를 거울이 모를 리 없다.
나도 왕비와 똑같다. 거울도 이런 내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니 맘에 드는 구석이 있을 리 없다. 오히려 눈 코 입 심지어 이마까지 모든 게 흠투성이라며 꼬집는 거울.
그날도 여느때와 마찬가지로 거울 앞에 서서 ‘엄만, 화장해도 똑같아. 대체 왜 이렇게 못생긴 걸까.’라고 딸에게 넋두리를 늘어놓았다. 평소라면 딸이 엄마처럼 예쁜 아줌마도 없다고 북돋워 주었는데 그날은 아니었다. 반쯤 체념한 얼굴로 이 세상에서 제일 못생긴 아줌마에 어떤 새 옷을 입어도 이상하고, 아무리 정성을 다해 차려놓아도 맛없으며, 잘하는 게 하나도 없는 사람이니 자신한테 묻지 말고 거울에게 푸념이나 하라고 한다.
뜨끔했다. 언제나 ‘나 예쁘지?’ 보다는 ‘못생겼지?’, ‘이것 맛있지?’ 보다는 ‘맛없지?’, ‘옷 잘 어울리지?’ 보다는 ‘이상하지?’라는 말이 먼저 튀어나온다. 내가 그렇게 물을 때마다 남편은 이상하고 맛없고 못생겼다고 거울처럼 말하는데 딸도 앞으로는 내가 물어보는 대로 메아리치듯 응답할 것이라고 한다. 가족 모두 못난이 거울이 되기로 작정해버렸다.
나는 어려서부터 몸도 약하고 무엇이든 다른 사람보다 서너 발 더디게 깨우쳤다. 성향도 소심해 장난스런 말도 상처로 받아들이거나 상대가 안 되는 존재에 대한 두려움도 컸다. 다섯 살 많은 오빠가 있는데 툭하면 토라지는 여동생이 재미있어 별 뜻 없이 던진 말도 곧이곧대로 받아들였다.
글쓰기를 좋아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글에서만큼은 알고 있는, 눈부시고 반짝이는 언어들을 모조리 끌어다 나를 빛나게 하고 싶었다.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글도 거울이었다. 글은 나만 담는 게 아니라 바라볼 때 시간과 서 있는 장소, 함께 머문 크고 작은 배경까지 다 담아냈다. 내가 바뀌지 않으면 새 거울을 아무리 달아도, 어떤 꾸밈을 해도 소용없다는 것을 알았다.
맛있는 말을 하겠다고 다짐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내 방에 걸려 있는 무겁고 낡은 거울을 떼려면 움츠러들고 작아지는 말을 하지 않아야겠구나 싶었다. 그런데 아직 오랜 습관이 빚어낸 말투를 못 버려 빚을 덜지 못하는 중이다.
언젠가 딸아이가 ‘이상하고 시들하고 맛없는 말만 하는 엄마를 가진 나는 어쩌면 좋을까.’라고 반문한 적 있다. 어이없는 물음에 웃고 말았지만 그 한 마디엔 스스로를 향한 따뜻한 말이 얼마나 힘이 되는지 알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을 것이다.
햇살 가득한 방 안에 거울이 있다. 웃는 얼굴로 환하게 품어주면 ‘네가 최고’라고 끝도 없이 나를 지지해 줄 것 같다. 시들하고 이상하고 맛없는 말보다 달콤하고 눈부시고 맛있는 말로 한껏 나를 폼나게 해 주는 일, 그게 내가 들어 있는 거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