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도한 여왕을 만난 것 같았다. 인형인데도 눈동자가 초롱초롱 살아있는 듯해 한참을 응시하다 슬그머니 눈길을 돌린다. 부리부리하고 푸르스름한 눈의 기세가 만만치 않다. 가지런히 두 손을 모으고 있는데도 단숨에 나를 낚아챌 듯 매섭게 노려보고 있다.
위풍당당한 귀깃도 한몫을 담당한다. 눈 위에 뾰족하게 솟은 동굴 같은 귀깃이 소리를 감추고 있어서 언제 조용히 날아가 잽싸게 먹잇감을 덮칠지 아무도 모를 일이다.
얼굴은 양 볼이 움푹하게 들어간 듯 납작한 접시형이다. 납작한 뼈대에 빳빳한 깃털이 사방으로 바큇살처럼 뻗어나가며 빼곡히 붙어 있어 마치 둥근 안테나 같다는 생각도 든다. 그것이 사방을 돌아보며 움직이는 나를 따라오는 듯해 약간 섬뜩하기도 했다.
다행스러운 것은 예민한 몸을 가리는 반짝이는 것들이 훌륭한 가면으로 변신해 외형에서 무서움이 덜어졌다는 점이다. 나뭇잎 모양 보석으로 주렁주렁 치장된 속에 살아있는 부엉이보다 더 날카로운 비수가 숨어 있게 될지 그때는 몰랐다.
그것은 부엉이 몸체 안에 매달린, 발톱 밑에 있는 금빛 경종이 대신하고 있었다. 골드 색을 입힌 앙증맞은 경종이 부엉이의 눈과 귀가 되어 가슴에 걸린 말을 사정없이 들추어냈다.
이상한 점은 진짜 부엉이는 밤에 활동해 눈이 저리도 커졌나 싶은데 부엉이를 닮은 인형은 낯익은 실내에서 그것도 환한 시간에 활동하는데도 눈동자가 작아지지 않는다. 낮이든 밤이든 눈과 귀가 열려 있어 경계를 느슨히 할 수 없는 모양이다.
시시각각 누군가의 움직임을 따라다니며 모두에게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기만 기다리는 부엉이. 커다란 눈을 좌우로 굴리는 듯, 귀깃을 쫑긋 세우는 듯, 보석으로 포장된 자신을 뽐내며 무너뜨릴 기회를 호시탐탐 노린다.
부엉이를 사 온 사람은 남편이다. 뜬금없는 전화 한 통에 까르르 웃고 말았지만 이야기한 것을 곧바로 실행에 옮길 줄은 몰랐다. 짓궂은 성격에 장난기가 발동했나 싶었는데, 심각한 얼굴로 자기도 모르게 튀어나오는 냉랭한 말투를 고쳐보겠다며 두 아이와 나에게 한동안 부엉이가 되라고 한다.
부엉이가 되는 일은 쉬웠다. 시시때때로 부엉이가 되는 셋을 어떻게 감당하려고 겁도 없이 부엉이를 사 왔을까 싶었다. 남편의 사뭇 진지한 얼굴과 달리 밤낮으로 울리는 경종을 견디지 못해 부엉이를 사 온 것을 후회하게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웃음이 저절로 났다.
사실 부엉이를 만나기 전날도 샌드백이라도 달아놓고 강펀치를 날려야 되나 생각했다. 목구멍까지 차오르는 화를 꿀꺽 삼켜 망정이지 무슨 말을 그렇게 하냐고 맞받아쳤다면 십중팔구 집안에 서늘한 정적이 흐르고 남았을 것이다.
뼛속까지 경상도 남자인 남편은 경상도 여자인 내가 보기에도 할 말 다 하는 성격에다 공감 능력이 부족해 크고 작은 사건의 주범이라고 할 수 있다. 남편은 절대 아니라고 손사래를 치겠지만 긴 세월 속에 본인도 어느 정도 인정하는 점일 것이다.
샌드백이라도 달아놓고 싶었던 그날, 성난 가슴을 한소끔 가라앉히고 남편에게 말투로 인한 솔직한 마음을 털어놓았다. 그랬더니 자신도 의도치 않게 상처를 주는 게 싫다며 목에 걸리는 말을 들을 때 즉시 종을 울리는 것은 어떠냐고 제안한다.
처음엔 장난인 줄 알았다. 그러다 심각한 표정으로 말하는 남편을 보며 작심삼일은 아니겠구나 싶었다. 그래도 말이 그렇지, 진짜 경종을 사 올 줄은 몰랐다.
아들 녀석이 한창 사춘기인 중고등학교 시절엔 성향 다른 남편과 서걱거림이 많아 중간에서 애를 태우기도 했고, 나 또한 쉽게 목을 타고 내려가지 않는 말들로 인해 헤매기도 했다.
남편도 희끗희끗 흐르는 세월은 어쩔 수 없는지 아니면 계속되는 마누라 잔소리가 지겨운지 딱딱한 말투에서 벗어나 권유형이나 상냥한 말투로 고쳐보겠노라고 한다.
어느 책에선가 말투는 말을 담는 그릇이라고 했다. 물도 담긴 그릇에 따라 세숫물로도 보이고, 먹는 물로도 보이듯 말투도 마찬가지이다. 부리부리한 눈으로 지켜보는 부엉이 경종도 어울리는 그릇을 잘 고르라는 의미가 담겨 있을 것이다.
밤낮으로 부엉이가 된 셋이서 번갈아 울린 종소리 덕분인지, 남편 스스로 애쓴 덕분인지 당장 따뜻한 그릇에 담긴 말까진 아니라도 서늘한 그릇에 담겨 의도치 않게 상처를 주는 일은 줄어들었다.
‘해’와 ‘해라’가 ‘할래?’와 ‘하면 어떨까?’로 바뀌고, ‘그랬구나’와 ‘힘들었겠다, 좋았겠다’ 등으로 어투가 변하면서 분위기가 한결 가벼워졌음은 물론이다. 처음 할 때는 오글거려 어색했지만 애써주는 마음이 고마웠다.
한 달쯤 지났을까. 부리부리하고 푸르스름한 눈빛이 한풀 꺾였다 싶었는데 웬걸, 아침부터 요란스럽다. 남편이 출근 준비 늦다고 타박하는 내게 말투가 퉁명스럽다며 보란 듯 부엉이를 호출한 것이다.
소리에 놀라 고개를 돌리니 식탁 맞은편에 매달린 부엉이가 단숨에 나를 낚아챌 듯 매섭게 노려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