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의 기원 - 정유정

채쓰

by Poison After Feeling

인간의 본성은 악에서 비롯되는가 선에서 비롯되는가. 중학교 윤리시간에 배웠던 성악설과 성선설 같은 것들에서 시작된 소설이다. 인간이 악하면 어디까지 악할 수 있는가? 에 대한 대답을 ‘사이코패스’라는 매개체를 통해 풀어낸다. 단순히 악이 선천적이냐, 후천적이냐에 대한 질문뿐만 아니라 우리가 어떠한 행위를 결정하는 것에 있어서 환경과 자아가 얼마나 영향을 미치며, 선과 악의 경계는 어디 있는가에 대한 질문까지 던져준다. (정답은 안 줌. 정답이 없는 질문이긴 함.) 반전에 반전을 선사하는 이야기에 소름이 돋았고 책을 들었던 그 순간부터 내려놓는 순간까지 단 한숨도 쉬지 않고 읽어갔다. (이건 내가 할 일이 없어서 그런 거 기도함. 추석에 읽었기 때문.)


소설의 초반에는 주인공인 유진의 주변에 일어나는 일련의 사건들을 유진의 시선에서 풀어나간다. 피범벅이 된 자신의 몸, 끔찍하게 살해당한 어머니, 사라진 기억. 내가 유진의 상황이었다면 - 눈을 뜨자마자 나의 어머니가 잔혹하게 살해되었다면 - 내 몸이 피범벅인 것과는 관계없이 바로 경찰과 구급차를 불렀을 텐데, 유진은 왜 본인의 안위를 먼저 걱정하지? 자신이 그러지 않았다는 걸 왜 확신하지 못하지? 왜 자신의 사라진 기억을 의심하지?라는 생각을 계속했다. 물론 심각하게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저 이상하다고 생각을 했을 뿐이었다. 유진이 마침내 자신의 기억을 모두 찾고 여성을 살해하고 어머니를 살해했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까지 나는 그저 ‘조금 이상하다.’라고 생각했을 뿐이었다. 마침내 찾은 유진의 기억 혹은 어머니의 기억 속에서의 유진은 그러니까, 사이코패스다. 중에서도 가장 상위에 속한다는 프레데터. 그러한 유진의 성향을 알아본 유진의 어머니와 이모가 합작하여 유진은 어렸을 때부터 ‘감정을 억누르는 약’을 먹었다. 약은 유진을 무력하고 뿌옇게 만들었고, 단약을 하다 들킨 사건으로 인해 사랑하는 수영도 잃고 그저 어머니의 통제 밑에서 살아가게 된다. 하지만 다 큰 성인 남성을 물리적으로 통제하는 것은 쉽지 않다. 당연히 유진도 자신을 옥죄는 약과 어머니의 통제에서 몰래 도망친다. 그리고 밤늦게 귀가하는 여성들의 뒤를 쫓으며, 그들의 두려움을 즐거워한다. 약자를 놀라게 하고 두렵게 만드는 것이 유진의 기쁨이다.


결국 유진은 자신의 기쁨을 극대화하는 방법으로 살인을 택했고 그 사실을 알게 된 자신의 어머니와 실랑이를 하다 결국 어머니까지 죽음에 이르게 만들었다. 이 모든 이야기는 유진이 자신의 기억을 찾아가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그래서 유진은 어떻게 됐냐면, 자신의 살인을 형제처럼 자란 해진에게 뒤집어쓰게 만들고는 홀연히 사라졌다. 그리고 1년 후에 다시 살인을 계획하며 돌아온다. 유진의 기쁨은 아직 멈추지 않았다.


소설을 읽은 후에는 기분이 더럽다 못해 약간은 역겹다는 생각도 들었다. 유진이 너무 잔인해서? 혹은 사이코패스로 살아가는 유진의 변명이 도저히 납득이 안돼서? 아니다. 내가 가장 기분이 나빴던 것은 유진의 생각, 변명, 이유가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정유정 작가는 이 소설을 사이코패스의 자기 변론서라고 소개했다. 나는 그 사이코패스의 생각에 동화되어 유진과 함께 변명을 하고 있었다. 유진을 살인자로 만든 것은 그의 타고난 습성이 아니라 억압된 환경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물론 소설 말미에는 도저히 공감할 수 없는 유진의 생각과 행동에 경악을 금치 못했지만.


알쓸신잡이었나? 생각 없이 핸드폰을 죽죽 내리며 쇼츠를 보다가 이런 내용을 본 적이 있었다. 살인범은 자신이 저지른 살인의 원인을 피해자에게서 찾는다고. 유진도 마찬가지였다. 그가 어머니를 죽이고, 이모를 죽이고, 자신의 친구인 해진을 죽이고. 계속해서 누군가를 죽여나갈 때마다 그에게는 타당한 이유가 있었다. 엄마가 나를 죽이려고 해서, 이모가 집에 가만히 있지 않고 돌아다니며 자신이 저지른 살인의 증거를 찾아내서, 자신은 끝까지 해진을 사랑했으나 해진이 자신의 편을 들어주지 않고 배신하려고 해서.


누구든 타인에게 살의를 느낄 수 있다. 죽여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 만큼 누군가를 미워할 수도 있다. 다만 유진과 우리의 차이점은 이러한 생각을 드러내느냐 아니냐, 실행하느냐 아니냐에 있다. 우리는 누군갈 죽여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해서 그 사람을 죽이지 않는다. 다른 이는 동의하지 않을 수 있겠지만 나는 ‘죽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것 자체는 악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바람을 피우고 싶다.’ ‘마약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고 해서 그 사람이 악하다고 말할 수 있나? 난 그럴 수 없다고 생각한다. 반대로 위험에 처한 사람

을 ‘구해주고 싶다’는 생각만으로도 선하다고 할 수 있나? 이것 또한 아니라고 생각한다. 선과 악은 사람의 생각이 아니라 행위에서 드러난다. 내가 유진의 생각은 이해할 수 있었으나 유진이 살인을 저지른 그 행위는 이해할 수 없었던 이유도 이러한 맥락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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