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한 편의점 - 김호연

예쓰

by Poison After Feeling

위시리스트에 넣어 놓고 잊고 있었는데, 생일 선물로 받게 되어 읽게 된 책이다. 편의점이라는 배경답게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평범한 사람들이 나온다. 알바와 공부를 병행하는 20대 공시생,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써보고 실패하면 절필하겠다는 30대 작가, 성실하게 살아왔으나 직장에서 여기저기 치이는 40대 아저씨, 편견을 가지고 주변 시선을 신경 쓰는 아줌마 등등… 물건이 많지 않아 불편한 편의점에 이상한 아르바이트생이 들어오는데, 그로 인해 주변 인물들이 조금씩 변화해 가는 내용이다.


착한 오지랖


서울역에서 노숙자로 살아가던 남자가 70대 여성의 지갑을 주워 돌려주며 두 사람의 인연은 시작된다. 영숙은 지갑의 주인이냐며 확인하는 남자가 이상한 사람이 아닐까 걱정했지만, 자신의 지갑을 다른 노숙자들에게 맞으면서까지 지켜내는 것을 보고, 그가 괜찮은 사람이라 생각해 마침 공석으로 있던 야간 알바로 채용한다. 덩치가 곰 같은 남자는 알코올성 치매로 과거를 기억하지 못해 ‘독고’라는 이름으로 불러달라고 했다. 말도 어눌하고 행동도 굼떠 처음엔 사람을 답답하게 했지만, 점점 그의 말과 행동이 주변 사람들을 묘하게 사로잡는다.


편의점 낮 아르바이트생이자 공시생인 시현은 독고에게 편의점 일을 차근차근 알려준다. 덕분에 독고는 금방 일에 적응했고, 시현에게 자신과 같은 편의점 초보자들을 위한 유튜브를 해보라고 권한다. 호기심으로 시작한 시현의 유튜브는 생각보다 성공적이었고, 그 영상을 본 다른 편의점 주인이 시현을 스카우트했고, 시현은 편의점 매니저로 취업에 성공하게 된다. 독고 덕분에 오랜 숙제였던 취업에 성공하게 된 것이다. 좋은 대기업을 다니다가 갑자기 관둔 후에 방에서 게임만 하는 아들을 이해하지 못하던 선숙은 독고에게 하소연을 한다. 조용히 듣고 있던 독고는 아들의 말을 들어본 적 있느냐고 묻는다. 들어봤자 뻔할 거라고 대답하는 선숙에게 직접 물어보고 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라고 한다. 그렇게 선숙 모자는 오랜만에 터놓고 대화를 나누고, 서로를 조금씩 이해하게 된다.


편의점에서 매일 혼술을 하던 경만은 독고가 따라준 옥수수수염차를 술 대신 마시며 집을 일찍 들어가 가족들과의 시간을 더 보내게 되었고, 글이 안 써져서 고통받던 인경은 독고와 나눈 독고의 이야기로 대본을 써 연극을 올리게 되었다.


이 모든 일들은 영숙과 독고의 착한 오지랖이 아니었다면 결코 있을 수 없는 일들이었다. 아주 친한 사람이 아닌 이상 다른 사람의 인생에 크게 관심을 갖지 않는 나로서는 좀 신기한 부분이었다. 물론 받아들이는 입장에서도 잘 받아들여야 변화가 가능하겠지만..!



따뜻한 말 한마디

누군가에겐 사소한 말 한마디가 다른 누군가에겐 크나큰 위로로 다가올 때가 있다. 독고의 말 한마디가 손님들에겐 큰 위로로 다가왔고, 조금씩 그들을 변화시켰다. 나 역시 편의점 손님들처럼 많이 힘들었던 적이 있었는데 누군가의 "팀원들과 떨어져 있어서 외롭지 않아요?" 한마디에 눈물을 흘린 적이 있었더라지. 사실 그 당시에는 내가 왜 이렇게 힘든지 몰랐었는데, 그 한마디에 내가 외로워서 힘들다는 걸 깨달았다. 힘든 상황의 이유를 아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기도 한다는 걸 처음으로 알았다. 상대방은 별생각 없이 건넨 말이겠지만, 그 한마디에 크나큰 위로를 받은 느낌이었달까? 말 한마디가 주는 힘은 생각보다 크다. 피곤한 출근길 버스 기사님의 "좋은 하루 보내세요" 인사 한마디에 괜히 기분이 좋아지고, 지친 퇴근길 "고생 많았다"는 가족들의 한마디에 기분이 좋아지니까. 그러니까 말을 예쁘게 해야지 다짐하는데… 왜 험한 말을 아직까지 쓰는 걸까요…? 30대가 되면 이제 욕 같은 건 안 할 줄 알았는데… 방에서 혼자 일해서 그런 걸까요…? 아니면 야구를 보기 때문인 걸까요…? 요즘엔 그래도 의식적으로 험한 말을 덜하려고 노력하고 있으니 조금씩 나아지도록 하겠습니다..!


역지사지


알코올성 치매를 가지고 있던 독고는 알고 보니 성형외과 의사였다. "사람을 살리기 위해 의사가 되어야겠어!!" 따위의 커다란 포부는 없었다. 그는 너무나 가난했고, 지긋지긋한 가난에서 벗어나고 싶었고, 다행히 머리는 제법 똑똑했고, 그렇게 의대에 갔고, 돈을 많이 벌기 위해 성형외과 의사가 되었다. 먹고살기 위한 직업으로 의사를 택하는 것? 개인의 직업적 자유니까 상관없다. 하지만, 그는 더 많은 돈을 벌고 싶었고, 이를 위해 병원이 '그림자 의사'를 고용해 대리수술을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묵인했다. 이로 인해 꿈 많던 대학생이 죽었고, 병원은 이 사건을 묻었다. 그는 가족들을 자신처럼 가난하게 살게 하고 싶지 않았다고, 모든 것은 가족을 위해서였다고 자기 합리화를 했지만, 의료사고의 진실을 숨기기에만 급급한 그에게서 아내와 딸은 떠났다. 소중한 것을 지키고자 했던 그의 선택이 결국 모든 것을 잃게 만들었다. 그는 술로 매일을 지새웠고, 서울역에서 정신을 잃은 뒤 그렇게 노숙자로 살아가게 되었다.


"가족한테도 손님한테 하듯 하세요."


독고는 다른 사람들에게 건네는 말에서 본인이 깨달음을 얻었다. 역시 제삼자의 눈으로 바라봐야 객관적인 시선을 유지할 수가 있고, 처지를 바꿔 생각해 봐야 이해할 수 있나 보다. 기억을 잃기 전 독고는 자기 하고 싶은 대로, 일방통행만 하던 사람이었다. 남의 감정보단 본인의 감정이 우선이었고, 받아들이지 않으면 내치는 게 일상이었다. 굳이 노력하지 않아도 사람들은 또 다가왔으니까. 하지만 모든 걸 잃고 나서야 그는 깨달았다. 삶은 혼자 살아갈 수 없고, 관계와 소통 속에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그는 다시 가족들을 만나 사과하고, 그가 가

진 의료기술로 사람들을 살리기 위해 애쓸 것을 다짐한다.


나 역시 독고가 다른 사람에게 건넨 말에서 깨달음을 얻었다. 아니, 사실 알고 있으면서도 행하지 않는 게 가장 큰 문제다. 이런 류의 책을 읽고 나면, 드라마나 영화를 본 후에 항상 결심한다. '엄마에게 잘해야지!' 하지만 그 마음은 몇 시간을 채 가지 못하고, 다시 짜증 많은 못된 딸로 돌변한다. 왜 항상 화살이 향하는 쪽은 엄마인지… 엄마, 미안… 이걸 쓰면서 난 또 다짐한다. ‘엄마에게 오늘은 짜증을 내지 않으리라!’ 하지만 이게 몇 시간을 갈지는 나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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