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이라는 가장 매력적인 콘텐츠

'부활'이 등장하는 세계관이 매력적이지 않은 이유

by Renaissance

마블이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성공하면서 여기저기서 세계관 만들기 열풍이다. 시나리오 공모전에 세계관 항목이 신설된다던가, 아예 세계관 기획서만 제출하는 공모전도 생겼다. 매력적인 세계관을 하나 만들면 그 세계관 하나로 웹툰, 소설, 영화, 시리즈, 게임 등 수익성을 극대화할 수 있으니 어찌 구미가 안 당길 것인가. 하지만 세계관이 아무리 매력적인 들 새로운 이야기를 무한정 만들어내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그래서 무리수를 두기 시작하는데 그 대표적인 예가 '부활'이다.


우리가 흥미롭다고 생각하는 이야기에는 공통점이 있다. 대표적인 것이 '어리석은 인간'이 등장한다는 것이다. 인간은 완벽하지 않으니 불완전한 인간이 이상에 도전하다가 좌절하기도 하고, 완전하게 보이는 인간이 사소한 일을 계기로 완전히 무너지기도 한다. 그리고 그것을 극복하면 희극이 되고 처절하게 패배하면 비극이 된다. 따라서 이야기에는 주인공을 방해하는 장애물이 필수적으로 등장하는데 대표적인 장애물은 악당(안타고니스트, 빌런)이다. 악당이 있든 없든 표면적으로 드러나지 않은 장애물이 존재하는데 바로 생의 유한성, '죽음'이다. 테러리스트에게 점령당한 건물에 갇힌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혼자 힘으로 맞서야 하는 주인공은 본인의 죽음을 각오해야만 한다. 테러리스트라는 악당 장애물에 더해 본인의 생명이 유한하다는 장애물이 존재하는 것이다. 총을 맞고 죽더라도 다시 살아날 수 있는 사람이면 무슨 고민이 필요할까. 아무 고민 없이 혈혈단신으로 건물에 뛰어들 것이다. 그런 이야기는 매력이 없다.


현재는 세계관이라고 통칭되는 것을 우리는 어려서부터 접했다. 바로 무협지와 판타지 소설이다. 무협지에서는 전설의 무공, 비기를 통해 사람을 살려내는 경우가 허다하게 등장하고 판타지 소설에서는 부활 스킬을 가진 성직자나 아무개가 등장한다. 중학교 시절 갑자기 친구들 사이에서 무협지와 판타지 소설이 유행했는데 이 책들의 특징은 한 권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거다. 등장인물이 워낙 많기 때문에 적어도 다섯 권, 많게는 스무 권을 넘는 경우도 있다. 나는 첫 권을 넘기가 힘들었다. 그놈의 '부활'때문이다. '부활'이 존재하는 세계관에는 서스펜스가 존재할 수 없다. 주인공이 죽을 위기에 처했을 때 손에 땀이 나는 서스펜스가 느껴져야 하는데 '부활'이 한 번이라도 등장한 이야기라면 그 서스펜스가 일어날 수가 없다. 어차피 죽어도 다시 살아날 수 있는데 그런 이야기에 어떤 긴장감이 존재할 수 있겠는가? '죽음'이라는 가장 강력하고 매력적인 요소를 없애버린 이야기가 재밌을 리가 만무하다.


요즘 마블 영화가 한국에서 전혀 흥행을 못하고 있다. 북미에서는 여전히 스코어가 잘 나오기 때문에 계속 만들어질 테지만 한국 관객은 이미 등을 돌린 지 오래다. 영웅들의 세대교체가 실패했다는 둥, 디즈니의 PC 정책 때문이라는 둥 여러 가지 이유를 들지만 나는 세계관에 무리수를 뒀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어벤저스 엔드게임이라는 초대형 블록버스터를 만들기 위해 마블은 '부활'이라는 무리수를 뒀다. 역시나 뒤이어 나오는 마블 영화들은 이 '부활'이라는 세계관의 연장선상에 있었다. 멀티버스라고 표현하지만 그게 부활이지 뭐야. 우리가 사랑하는 주인공이 죽어도 멀티버스에서 다른 주인공을 데려오면 되잖아. 아니면 우리 주인공이 살아있는 멀티버스의 영화를 찍으면 되는 거잖아. 영화에서 사람이 죽는 것이 더 이상 별 의미가 아닌 게 되어버리면 영화를 보는 어느 누구도 긴장감을 갖지 않는다. 이순신 장군이 부활할 수 있는 존재였다면 [명량]이 천칠백만 관객을 동원할 수 있었을까? '죽음'을 무릅쓰고 배 한 척을 지휘하여 300척의 적진으로 뛰어드는 스펙터클은 '죽음'이라는 전제가 없으면 하찮게 느껴질 뿐이다.


제임스 건이라는 걸출한 천재 감독이 디씨 유니버스의 수장을 맡게 되었는데 그 후 개봉하는 첫 영화가 아이러니하게도 [플래시]이다. 초광속 스피드를 활용해 시간을 역행하여 멀티버스의 문을 열게 된다고 한다. 제임스 건 감독이 제작에 참여한 영화는 아니지만 새로운 체제가 들어서고 개봉하는 첫 영화인데 멀티버스가 등장한다고 하니 속이 타들어가지 않을까. 보지는 않았지만 [저스티스 리그]의 감독판(잭 스나이더)에 이미 플래시의 시간역행 능력이 등장한다고 한다. 극장판에서 이 컷은 빠졌는데 그 이유는 너무 명백하지 않나. 시간을 되돌릴 수 있는 능력은 '부활'이나 마찬가지 개념이다. 죽을 위기가 처할 때마다 시간을 되돌릴 수 있으면 '죽음'이라는 매력적인 요소가 없어지는 거니까. 시작부터 잘못된 디씨 유니버스를 다시 일으켜 세우기 위해 영입된 제임스 건 감독은 본인의 영화에서 주요 캐릭터를 죽여버리는 것으로 유명하다. 디씨에서 '부활'이라는 무리수를 두지 않길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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